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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와 마가자

빨강의 매력 마가목

by 별바라기 Ja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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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하고 싶은 마가자서리하고 싶은 마가자

푸른 잎이 사방을 채우고 있을 땐 꽁꽁 숨어 보이지 않던 열매들이 떨어지는 낙엽들 속 수줍게 나타났다. 그중엔 빨간 산우유가 있었고 울퉁불퉁 못 생긴 데다 벌레까지 먹은 반쯤 썩은 모과도 있었는데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도드라지게 붉어지는 마가주도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산초와 마가주가 그렇게나 헷갈렸다. 꽃이 지고 파란 열매가 맺힐 때 내 눈에는 산초 같이 보여 꼭 이파리를 따서 냄새를 맡고서야 구분할 수 있었  이름도 잘 외워지지 않아 나는 그냥 빨간 산초라고 불렀다. 할머니가 부르시던 이름은 마가주였다.




"니 다리깨이 들고 내 따라나설래?"


"할머이 뭐 따러 갈라고?"


"마가주 따러 가지"


"그거 맛이 없던데"


"맛이 읍긴. 마가주를 따리 무믄 무릎고베이가 안 아파지잖나"


나는 할머니가 어제도 무릎에 손수 침을 놓고 유리병 부황을 붙여 피를 닦아내던 모습을 궁금해하면서도 질겁을 하며 봤기에 후딱 다리끼를 어깨에 메고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할머이 이 빨간 거를 다 잡아 따?"


"지금 야지리 잡아 띠믄 알개이 달아나니 나뭇가재이를 뚝뚝 꺾어 집에 가가꼬 따야지"


나는 할머니 말대로 가지를 뚝뚝 꺾었다.


"요맨하믄 약할 맨큼 되겠잖나?고매 가재이"


"할머이 여기 아직도 많은데 더 안 따?"


빨간 열매에 영혼을 홀딱 팔아먹은 나는 아쉬움을 남긴 채 산을 내려왔다.


"알개이에 꼽재기 드가지 않게 야지리 따서 바가지에 담으래이"


나와 동생들은 작은 손을 놀려 열심히 마가주를 땄다.




빨간 구슬 같던 마가주를 따던 때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났다. 나의 살던 고향엔 귀하디 귀하던 마가주가 서울 장충공원 앞에 갔더니 가로수 대신 심어져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엔 감탄하다 충격을 받았다. 귀하고 예쁜 것들이 자동차 매연에 찌들어 어찌나 시커멓고 꼬질꼬질하던지...




할머니의 신경통과 관절염을 달래주던 마가주 차 대신 이제는 한의원의 침과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와 통증의학과의 주사가 익숙한 에 어쩌면 하얀 겨울을 빨갛게 밝혀주는 도로가의 작은 반짝임은 매연이 아니어도 쉽게 묻혔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유독 많이 하게 된다. 해가 바뀜도 있었겠지만 새해 들어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세 번의 이별 인사를 했다. 점점 연로해지시고 소천하시는 지인들의 소식들이 마냥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붙잡고 싶을수록 달아나는 것들이 아쉽고 아쉽다. 


할머니 무릎 통증을 달래주던 마가주의 작은 반짝임이 내 마음엔 반딧불이 불처럼 작게 반짝이는 유난히 춥고 추운 겨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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