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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의 나새이 국

나새이-냉이의 방언

by 별바라기 Feb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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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국 끓이지? 나 이거 무슨 향인지 알아. 내가 맞춰볼게"


냉이의 푸른빛이 죽을까 냄비 뚜껑을 열고 주방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 내게 거실에 있던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엄마 냉잇국이지?"


"~ 똥콘줄 알았더니 개코네"


"아까 대박집서 냉이 산 거야? 처음엔 된장국 같았는데 냉이 향이 나길래"


"설날에 할머니가 캐서 주신 거. 그러니 향이 이렇게 진하지. 재배 냉이는 잎만 무성하지 맛도 향도 덜해"


보글보글 냉이 국보글보글 냉이 국


"할머이 추운데 어델 갈라고?"


"지녘에 나새이 국 끓이 묵게 나새이 캐러 갈라 그라지"


"에? 밭에 눈이 허연데 나새이를 우뜨케 캐?"


"우찌 캐긴. 눈을 걷어 내고 캐지"


"그니까 눈때매 나새이가 어데 있는지 모르는데 우뜨케 캐냐고?"


"다 나는 델 아니 나스지"


할머니는 호미와 작은 플라스틱 다라를 들고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근처로 가셨다.


"눈밭 짓쌂아노믄 매하니 나서 걷지 말고 내 뒤로만 따라 온나"


할머니는 반쯤 눈이 녹아있는 곳부터 호미로 눈을 긁어내셨고, 나는 암만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할머니는 신기하게 촉촉하고 시커먼 땅에서 파랗고 보랏빛을 내는 나새이를 캐기 시작하셨다.


"여 보래이. 이래 뿌렁지가 기운이 좋잖나. 이 나새이가 산삼보다 더 좋은 약이여. 국을 끼리 놔도 달구무리한기 을매나 맛이 좋다고"


마치 눈 밑 세상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이 할머니가 호미로 눈을 긁어낼 때마다 땅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나새이는 마치 자석처럼 할머니 호미에 찰싹찰싹 들러붙었다. 

그렇게 금방 수북해진 작은 다라를 들고 큰 도랑 빨래터 하우스에 가니 하우스 안에서 놀던 송사리 떼들이 놀라 허겁지겁 숨었고, 할머니와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나새이를  다듬고 깨끗하게 씻었다.




"할머이 나새이 국은 우뜨케 끓이?"


"뭐 끼리고 자시고 할 게 있어. 된장 풀고 벌벌 끓믄 나새이랑 콩칼이랑 주물주물해서 느코 마늘이나 느주고 파는 있음 느코 없음 말고. 근데 잘 드다비야 한대이. 딴전 치믄 후루룩 넘치 뿔고 뚜껑을 씨게 닫음 나새이 색이 죽이 삐리"


나는 할머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어른들이 맛있다고 하는 나새이 국이 어디가 맛이 좋은지 당췌 알 수 없었고, 차라리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것이 훨훨 맛있었다.




"엄마 왜 뚜껑 안 닫고 있어?"


"뚜껑을 닫으면 파란 냉이 색이 죽어"


"이 하얀 거품은 뭐야? 표고가루?"


"아니 콩가루. 콩가루로 끓이면 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


"엄마는 요리비법을 누구한테 배운 거야?"


"주로 외할머니랑 야나할머니. 근데 또 보은 할머니댁 가면 할머니 스타일 대로 요리해"


"나도 나중에 엄마처럼 요리를 고 살까?"


"그거야 네 선택이지"


"그냥 엄마가 맨날 해주면 되겠네"


"내가 너랑 평생 같이 산다고?"


"엄만 나랑 같이 안 살 거야?"


"어머 이 언니 좀 보소. 내가 너랑 살아. 너는 독립해야지. 자고로 우리는 독립 민족의 후예, 독립군인 거 몰라"


"와 냉잇국 끓여주기 싫다고 독립을 하라니 엄마 나빠"


"똥을 쌉소사. 누가 나쁜지 모르겠네"


작은 아인 저녁을 먹는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게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냈다.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의 요리법이 엄마에게로

엄마의 요리법이 나에게로

그리고 다음은 어떻게 될까?

아이가 손수 밥을 해서 먹고사는 그 시절에 부디 걱정 없이 냉이를 캐서 먹을 수 있는 세상이길 기도해 본다. 이미 지금도 비료와 농약, 산책하는 강아지들 응가로 맘 놓고 냉이를 캘 수 없다 아쉬워하시는 귀촌 지인의 얘기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은 이 싸한 느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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