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나무만 아는 사라진 오솔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이야, 잘 댕기온네이. 오늘이 반공일 맞제?"
"히히 할머이 또 반공일이래. 반공일 아니고 토요일 이래니"
"그래 토요일. 니 이따 핵교 댕기 와서 니시 되게 가마솥에 물 좀 끼리논네이"
"할머이 물은 을맨큼?"
"한 시 빠께스믄 될 끼여. 야나"
나는 할머니가 계약금처럼 하사하신 백 원을 쥐고 신나게 학교에 갔다.
추석 명절을 보내러 시댁부터 들렀다. 아직도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시댁이나 몇 년 전부터 동그랑땡도 직접 만들지 않고, 송편도 직접 빚지 않고 방앗간서 사다 먹는 덕분에 추석 차례 음식은 그야말로 껌,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보세요"
친정에 건 전화를 받은 당첨자는 반가운 큰 조카였다.
"산이 벌써 왔나?"
"고모 안녕하세요"
나는 간단히 가족들의 안부를 묻다 해는 진즉에 저물었건만 낮에 산에 버섯 따러 가신 아부지가 귀가 전 이란 소리를 듣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산아 이따가 할아버지 오시는 대로 고모한테 톡 좀 남겨줘"
그리고 도착한 카카오톡
[고모 할아버지 오셨어요]
추석날 친정에 도착하니 마당 한가득 버섯 위로 지겹도록 내린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아빠, 다시는 산에 가시지 마. 휴대폰도 안 갖고 그래 가셨다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우쨀라 그러셔. 그리고 버섯 저래 냅두믄 녹는 거 아녀?"
"인자 니들 왔으니 밥 묵고 데치야지"
점심을 먹는데 슬그머니 아부지가 사라지시기에 얼른 상을 치우고 따라나섰다.
"아빠가 시범을 보여 주시 봐. 내가 따라 할게. 근데 여기 독버섯이 섞여 있는 건 아니지?"
"뭐 따듬고 자시고 할 것도 음써. 이래 밑에 짜르고 솔잎 털고. 그리고 독버섯 없는걸 뭐. 잡버섯 하고 싸리버섯만 땄어. 산에 버섯이 을매나 많이 폈는지 겁나 다 따도 못해"
"근데 버섯이 왜 이케 다 뽀사졌대. 비를 맞아 그래?"
나의 질문에 아버지가 흠칫하시더니 웃으시며
"내가 버섯 짐은 지고 푸대 끌고 오다 비가 와 그런가 길도 읍고 풀이 을매나 미끄런지 한 번 뒹굴었두만 짊어진 버섯이 다 깨졌어"
"아니 아빠. 내가 미촤 증말. 다치시면 우쨀라고 그라시. 인제 다신 산엔 가지 마. 버섯이 먹고 싶음 뒤안에 표고 따 잡숫고, 다른 버섯은 마트서 사다 드시. 아님 내가 버섯 택배로 부치 드리?"
"가지 말긴. 그래서 송이도 따고 잡버섯도 이렇게 많이 땄잖아. 재미로 따는 기지. 니들도 찌개 끼리 묵고"
"난 송이도 잡버섯도 안 먹을 거여"
"그래도 예전엔 큰재 너매에 할머이도 당기고 사람들도 당기서 산에 길이 나 있었는데 이젠 길이 싹 사라지고 풀이 덮으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드라. 길 잃기 딱이여"
"그러다 멧돼지 부대라도 만나믄 우쨀라 그래?"
"살곰살곰 댕기지 누가 돼지한테 들키게 당긴대. 그리고 돼지가 먼저 도망가. 가들이 을매나 약삭빠른데"
"그래서 산에 또 가신다고?길이라도 내시게?"
"시간 나믄 및번 더 가야지. 비가 왔으니 버섯이 더 필지 누가 알어"
"가지 마셔. 그러다 진짜 길 잃어. 쫌 휴대폰도 갖고 댕기시고"
"누가 길 잃을 때까정 깊게 들어간대. 다 표시해 놓고 댕기지"
"나도 어제 길 잃었었잖아. 이서방이랑 셋째 시고모님네 인사 갔는데 동네 입구에 큰 나무가 없어지고 축사가 들어서서 집을 못 찾아 남의 동네를 뺑뺑 돌았어"
"을매나 안 찾아갔음 고모네 집도 못 찾아?"
"그르게 말이여. 반성했지. 근데 뵙고 와도 맘이 안 좋아. 오래 못 사실 거 같아. 꼭 할머이 돌아가시기 전 같았어"
"정신은 있으시고?"
"형님 말로는 왔다 갔다 하신다는데 나는 알아보시대. 나이 먹어도 여전히 곱다 하셔서 울컥했어"
"돌아가시기 전에 부지러이 디다 봐"
이맘때면 산에서 사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거운 짐과 아픈 다리로 비료포대를 끌고 오시던 그 절룩이던 걸음도.
부서질 새라 날아갈 새라 고이고이 모셔오던 동그란 모자 쓴 귀한 송이와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던 싸리버섯. 그리고 우리들에게 보너스로 주시던 떡갈잎에 쌓여 있던 깨금과 으름. 그리고 할머니가 끓여 놓으라 했던 가마솥의 물이 보글보글 끓던 네시에 정확히 도착하셨던 할머니의 걸음 시계.
아부지를 대신해 버섯을 데치는데 비바람 때문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더뎠지만 꽃향기도 아닌 것이 익숙한 버섯향도 아닌 것이 바람이 불 때마다 전해지는 향긋한 향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할머니처럼 아부지도 덤으로 으름을 주셨는데 으름씨가 꽤 쓴맛이 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전에는 다 삼키거나 뱉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씨를 씹었던 걸까?
이젠 할머니의 작은 발로 만들어지고 다져졌던 오솔길은 하늘과 나무만 기억하는 숲이 되었다.
뽀도독뽀도독, 뿅, 슝, 으라차차 오늘도 버섯은 피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