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찌던 김이 그리운 날
"할머이 저 방티에 있는 거 뭐 해 먹을라고?"
"안 갈차주지. 재주 있음 마치 보래이"
"나 알았다. 찐빵 할라 그러지?"
"찐빵 해 물라믄 고물이 있시야지?"
"어 그러네. 팥이 읍네"
"뭐가 맹그러지는 보믄 알지. 니 저 수돗가에 씨 둔 맨주라미 바굼치 좀 들고 온네이"
나는 수돗가 옆 장독대에 걸쳐둔 맨드라미가 든 소쿠리를 들고 할머니한테 가면서 마당에 여름 내내 서 있다 요즘 더 고와졌던 맨드라미 한 송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에? 할머이 이거 마당에 있던 맨드라미잖아? 이 징그러운 걸로 뭘 할라고?"
"뭘 하긴 떡 하는데 느치"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맨드라미 꽃은 마치 닭 볏 같다. 신기하게는 생겼지만 만지고 싶지는 않은 묘한 느낌이 나게 생긴 꽃. 희한하게도 맨드라미는 일부러 심지 않아도 봄이 올 때마다 그 자리에 나고 또 났다.
"맨주라미 물끼가 싹 삣나?"
"다 삣어"
"그라믄 한 움큼만 쪼매나게 찢어노래이"
나는 물이 끓는 가마솥 앞에서 맨드라미 꽃을 작게 찢고 있었다.
"다 됐나? 그라믄 저 스댕 바굼치 좀 다오"
할머니는 가마솥 속에 삼발이를 깔고 그 위에 스댕 쟁반 위에 면포를 깔고 다라에 개어놓은 반죽을 이불 깔 듯 살살 펼쳐 놓았다. 그리고 장터에서 사 온 노랑, 초록, 분홍 색깔 옷을 입은 참깨를 술술 뿌리고 맨드라미 꽃비도 내리게 하고 가마솥 뚜껑을 닫았다.
어떤 떡이 나올까? 기대하며 기다림의 결과. 눈물을 한참 흘린 가마솥 뚜껑을 부윽하고 밀자 하얀 속살에 알록달록 물이 든 부푼 떡이 있었다.
"잘 익윽네. 뜸만 마치마께 들믄 되겠어"
젓가락으로 떡을 쿡 쿡 찌르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할머이 이건 무슨 떡이여?"
"맨주라미 떡이지"
나는 맨드라미보다는 색깔 옷을 입은 깨 맛이 더 궁금했다.
"할머이 근데 이 떡은 왜 했어?"
"왜 하긴? 느 애비 귀빠진 날이 오니 했지. 느 애비가 잘 묵자네"
뜨거운 김이 도망간 떡을 칼로 써는 할머니는 가운데 잘 생긴 부분만 접시에 담아 놓으셨고, 맨드라미 떡은 찐빵 냄새가 났지만 찐빵보다는 물렁했다. 내 입맛엔 엄청 맛있는 떡은 아니었지만 굳은 떡을 먹으려 식용유를 두르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깨와 맨드라미 꽃이 까맣게 타는 게 흠이긴 했어도 그냥 먹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맛이 좋았다.
할머니의 맨주라미꽃 떡 이름은 기정 떡이었다.
내내 네모난 떡만 먹고살았는데 작고 앙증맞은 동그란 떡도 나오더니 요샌 팥소가 들어간 쑥 맛, 호박 맛, 흑미 맛 떡도 생겼다. 그리고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부지는 여전히 기정 떡을 좋아하시고, 이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아이들까지 즐긴다는 것이다. 입맛도 대대손손 이어지는 걸까?
맨드라미 꽃을 보니 가마솥에 불 때서 떡을 찌던 할머니 모습과 잔뜩 인상 쓰고 꽃을 찢던 나의 모습과 함께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솨르르 소리를 내며 기정 떡 찌던 뜨거운 김 냄새가, 쉴 새 없이 흘러 내리던 가마솥 눈물이 그립다. 추석이 지나고 또 뜨는 보름달. 곧 다가올 아부지 생신상에 쫜득쫜득 맛있는 푸짐한 기정으로 축하해 드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