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심보
*2025. 11. 27. [라라쿠루 목요일에 만난 자연] 뒤틀린 심보
며칠 전 시어머니의 일신상으로 이른 새벽 남편과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분명 계절은 늦가을인데 바람은 한겨울이었고, 차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을 덮은 어둠과 몰아치는 낙엽 때문에 자동차 안에 있었지만 마치 재난 영화 속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가기 바쁜 출연자 같았습니다. 그리고 계절을 잊고, 잃은 듯한 빗줄기.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이퍼를 바라보고 있자니 밤새 텅텅 비어 버린 위장이 더 울렁거렸습니다.
"비 진짜 무섭게 온다. 죄지은 사람 오금 떨리게 천둥 번개는 왜 자꾸 치는겨?"
"그러니 착하게 살아. 맨날 나 괴롭힐 궁리만 하지 말고"
"이러다 기온 떨어져서 눈 오는 건 아니겠지? 작년처럼 푹 쏟아지면 난감한데"
"기온이 낮지 않아서 눈까진 안 올 거야"
"빗줄기도 계절도 뒤틀렸어. 꼭 내 심뽀처럼"
"뒤틀린 걸 알면 노력해서 피면 되지"
"그게 그렇게 쉽지 않으니 문제지"
고속도로 위 한가득 쌓여 있다 이 자동차에 저 자동차에 부딪혀 뒹구는 낙엽을 보니 측은하기 그지없습니다. 봄에는 여린 잎으로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을에는 고운 단풍으로 길을 지키고 있던 낙엽은 이제는 비바람에 떨어져 차갑게 식은 까만 고속도로를 덮는 양탄자가 되어 있습니다.
낙엽을 보며 어쩌면 인생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꿈 많은 어린 잎, 단단한 푸른 잎, 이런저런 색의 단풍, 그리고 낙엽. 이왕이면 떨어져도 누군가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고운 낙엽이면 더없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뒤틀린 계절 앞에 뒤틀린 심보를 갖고 살고 있는 저는 낙엽 말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와이퍼가 아닐까?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린 시절 이맘때면 늘 낙엽 타는 냄새가 오랜 시간 머물렀었는데 그 냄새도 그리운 오늘, 독자님과 작가님들께 여쭙니다. 가을의 끝자락이자 겨울의 초입에 어떤 생각들로 지내고 계시나요? 뜨끈한 김 솔솔 나는 맛있는 얘기도 좋고, 새로이 장만하신 따뜻한 겨울 용품 얘기도 좋고, 설렘을 갖고 시작한 만남 얘기도 좋습니다.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