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다 (9)

정치를 잘하여 고을 백성들이 어버이처럼 따릅니다

by 두류산

9장


지리산과 함양 일대에 큰 눈이 내렸다. 굵은 송이의 눈이 하늘에서 퍼붓듯이 쏟아졌다.

김종직은 그칠 줄 모르고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함양읍성 누각의 지붕이 폭설에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함양읍성 누각은 성 둘레를 따라 줄지어 지어져 있었다. 누각의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거나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손상을 많이 입었고, 그때마다 복구를 해야 했다.


눈이 그치자, 김종직은 아전들을 거느리고 무릎까지 발이 빠지는 눈길을 뚫고 관내 읍성을 점검하러 나섰다. 김종직은 읍성으로 가면서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물었다.

"함양읍성은 애당초 언제 지어졌는가?”

아전 중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이 답했다.

"고려 말에 왜구가 기승을 부렸는데, 내륙 깊숙한 이곳까지 쳐들어와 읍성이 무너지고 관아마저 불탄 일이 있었습니다.”


김종직은 왜구가 바다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함양까지 침입했다는 말에 놀랐다. 경상 병마평사 시절에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세밀한 경상도 지도를 만든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읍성을 가리키며 호장이 설명했다.

"왜구의 침입으로 관아가 불타자 저기 뒤에 보이는 문필봉(文筆峰) 아래로 관아를 옮기고 흙을 쌓아 다시 성을 쌓은 것이 오늘날의 함양읍성입니다. 성의 길이는 735척이고, 성 둘레를 따라 지은 누각은 243칸입니다.”


김종직이 읍성 가까이 당도하니, 성 둘레를 따라 줄지어 있는 초가로 된 누각의 지붕이 엄청나게 쌓인 눈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과연 크게 파손되어 있었다. 김종직은 200여 칸 거의 모든 누각의 초가가 피해를 입은 것을 보고 정신이 아득하였다. 지난여름에 강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내렸을 때 심하게 파손되어 장정들을 긴급하게 동원하여 대대적인 수리를 했었다. 이번 폭설로 수리했던 초가지붕이 다시 내려앉은 것이었다.

호장이 김종직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며 말했다.

"누각의 초가가 여름의 강한 비바람에 버티기도 어렵지만, 겨우 버텼다고 해도 큰 눈에 내려앉아버리니 지붕의 볏짚을 새로 덮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김종직은 파손된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백성들이 어떻게 부담을 해야 하겠는지 물었다. 호장이 답했다.

"파손된 규모를 볼 때, 한 칸마다 세 집이 책임을 지고 수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 집마다 사는 형편이 다르고 성인 남자와 노복의 수가 다른데, 어떻게 징발 기준을 가호(家戶)로 하겠소?”

이방이 호장을 거들었다.

"예로부터 인력 징발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김종직은 아전들이 자주 말하는 ‘예로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말이 어느샌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 말은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새로운 변화나 개혁을 귀찮게 여겨 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김종직은 관아로 돌아오면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어떻게 해결할 까 궁리하였다. 누각의 지붕을 고치기 위해 비록 농사철이라 할지라도 소를 논밭에 사용하지 못하고 볏짚과 목재를 실어 나르는데 투입해야 했다. 겨울의 눈바람에도 자주 내려앉아 농사가 한창 바쁜 봄철에도 수리를 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김종직이 호장에게 물었다.

"초가지붕을 아예 기와지붕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면 고을 사람들이 매년 고생하는 것을 덜어 줄 수 있지 않겠소?”


호장은 펄쩍 뛰며 반대하였다.

"읍성과 누각을 만든 지 백 년이 지났고, 이런 일이 해마다 계속되는 데 왜 기와로 못 바꾸었겠습니까? 당장 기와 비용 부담을 꺼려, 굳이 왜 지금 공사를 벌이냐고 원망만 사게 될 것입니다.”

김종직은 호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기와로 지붕을 하면 해마다 지붕을 손질하는 수고는 면하고 편안히 농사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기와에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아전들도 호장의 말을 거들었다.

"기와 비용은 또 다른 세금이 되어 백성들의 불평이 될 것입니다.”


김종직은 고을 사람들이 철마다 고생하는 것이 눈에 어른거려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김종직은 신망 있는 고을의 어른들을 초청하여 의견을 두루 들었다. 어른들은 차 공납 문제를 해결하여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등 애민정신을 가지고 고을 일을 보는 원님의 열의에 호의적이었다.

"기와가 비싸기는 하지만 잘 사는 집이 고을을 위해 좀 더 부담하고, 형편이 어려운 집은 노동력으로 보태면 될 것입니다.”

김종직은 고을 어른들의 호응에 크게 기뻐하며, 243칸 누각의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대체하기로 결단하였다.


김종직은 어른들의 의견을 모아, 함양 주민들의 빈부(貧富)를 살펴 기와와 인력 징발의 기준을 가호(家戶)로 하지 않고 토지보유와 성인 남자의 수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기와가 순식간에 걷히고 고을 장정들이 적극 나서, 공사가 예정보다 빨리 완공되었다.

기와 누각으로 바꾸니 해마다 백성들을 동원해서 누각을 수리해야 하는 불편과, 농사철을 앞두고 부역에 나서야 하는 고을 사람들의 부담이 사라져 버렸다. 김종직은 공사가 완공되자, 감격하여 붓을 들어 시로 남겼다.


'이백 사십여 칸 누각 건물을 비바람과 폭설에 해마다 수선해야 하니/ 어려운 형편에 백성들의 동원을 염려하였네./ 새로운 공사가 삼월이나 되어야 마칠 것을/ 힘을 합해 일찌감치 공사를 마치니/ 기와지붕이 비늘처럼 새롭구나./ 앞으로는 백성들이 편안히 농사만 지을 것이니/ 백성들은 왜 굳이 공사를 벌인 이유를 체감하리라.'


이와 같은 김종직의 적극적인 민생대책은 함양의 거주민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경상도 관찰사도 탄복하여 김종직의 선정을 칭찬하는 장계(狀啓)를 조정에 올렸다.

"함양군수 김종직이 정치를 잘하여 고을 백성들이 어버이처럼 따르고, 유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성종은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를 펼쳐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임금은 김종직이 고을 수령으로 부임하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포부를 아뢴 말이 생각났다.

‘어진 정치를 베풀어 도(道)가 행해지고, 노약자와 병자들이 부양을 받으며, 길에 재물이 떨어져도 줍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이 없다는 대동사회(大同社會)를 만들겠습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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