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은 참으로 억울하게 죽었을까? (4)

조선왕조실록은 역사를 사실(史實)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게 하는 보물이다

by 두류산

실록은 남이장군이 반역으로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이는 유자광을 가깝게 여겼다.

남이와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과 변방의 야인들을 토벌하고 전쟁터를 누비며 고락(苦樂)을 함께하여 특별한 정이 들었다. 더구나 유자광은 할아버지 때부터 가까운 친족 간이었다. 남이의 조부인 개국공신 남재(南在)와 유자광의 조부인 유두명(柳斗明)은 처남 매부 관계였다.


남이는 거사를 성공하려면 사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구를 거사에 가담시킬 것인지 여러 무장들을 떠올렸다. 남이는 거사를 치르는 날 병조의 군사를 얻으려면 정 3품 병조참지인 유자광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남이가 유자광을 포섭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겸사복장으로 궁궐에서 숙직할 때였다. 남이는 궁궐 내 병조의 출장소인 내병조(內兵曹)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 유자광을 방문했다.


남이는 그날 밤 유자광에 처음으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

"나라에 큰 상사(喪事)를 당하니, 인심이 위태롭고 시절이 의심스러워. 이런 때, 간신이 난(亂)이라도 일으키면 나는 물론 너도 개죽음을 당할 것이야. 마땅히 너는 나와 함께 충성을 다해 선왕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야.”

유자광은 남이가 하는 뜻밖의 말에 놀라 물었다.

"어떤 간사한 사람이 있어, 난(亂)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남이는 유자광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조정에 간사한 사람으로 가득 찬 것이 보이지 않느냐? 구 공신들을 보아라! 한명회는 욕심 많은 추한 구 공신의 우두머리이고, 노사신은 매우 어리석은 자이다. 김국광은 정사를 전횡하여 재물을 탐하니 이 같은 무리는 죽이는 것이 옳다. 한명회와 친한 한계희와 김국광, 노사신 등이 주상께 나에 대해 없는 말을 꾸미어, 내가 병조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강등되었다.”

그날 남이는 유자광에게 이 정도로 이야기하고 내병조를 떠났다.


그 후 남이는 유자광의 집을 밤중에 방문하였다.

실록은 이날 밤 남이가 한 말을 유자광이 임금에게 고한 말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늘 밤에 남이가 신의 집에 와서 말하기를, ‘혜성(彗星)이 이제까지 없어지지 아니하는데, 너도 보았느냐?’ 하기에 신이 보지 못하였다고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이제 혜성이 은하수 가운데에 있는데 빛의 줄기가 희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하기에 신이《강목(綱目)》을 가져와서 혜성이 나타나 설명한 곳을 찾아 보이니, 그 주(註)에 이르기를, ‘빛의 줄기가 희면 장군이 반역하고 두 해에 큰 병란(兵亂)이 있다.’고 하였는데, 남이가 탄식하기를, ‘이것 역시 반드시 응(應)함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남이는 역사책에서 말하는 대로 혜성의 출현으로 반드시 장군이 반역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바로 자신이 거사(擧事)하려고 한다고 실토했다. 유자광은 이 같은 사실을 임금에게 고했다.

“남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거사하고자 하는데, 수강궁은 허술하여 거사할 수 없고 반드시 경복궁이라야 가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 같은 큰일을 우리들이 어찌 능히 홀로 하겠는가? 또 어떤 사람과 더불어 모의하였느냐? 또한 주상이 반드시 창덕궁에 머물 것이다.’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내가 장차 경복궁으로 옮기게 할 것이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남이가, ‘이는 어렵지 않다.’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이런 말을 내가 홀로 오직 너와 더불어 말하였으니, 네가 비록 고할지라도 내가 숨기면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고, 내가 비록 고할지라도 네가 숨기면 내가 죽을 것이므로, 이 같은 말은 세 사람이 모여도 말할 수 없다. 또 세조가 전국의 장정(壯丁)을 다 뽑아서 군사로 삼았으므로 백성의 원망이 지극히 깊으니 기회를 잃을 수 없다. 나는 호걸(豪傑)이다.’ 하였는데, 신이 술을 대접하려고 하자 이미 취했다고 말하며 마시지 아니하고 갔습니다.”


왜 유자광은 남이의 거사에 가담하지 않고 이러한 사실을 곧바로 임금에게 고발하였을까?

유자광으로서는 남이에게 들은 말을 제외하고는 남이의 역모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남이의 말대로 유자광이 비록 고할지라도 남이가 부인하면 오히려 유자광이 무고죄로 죽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조정에서 유일하게 천출인 자신을 믿고 지지하던 세조는 이미 돌아가지 않았는가.


당시 유자광의 입장에서 보면 남이의 거사에 선뜻 참여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이는 단순히 신 공신들을 위협하는 구 공신들을 미리 치겠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새로 즉위한 임금까지 위험에 빠트릴 역모였기 때문이었다.


실록에 기록된 남이의 반역에 동조한 겸사복 문효량의 진술이다.

"남이가 말하기를, 산릉에 나아갈 때 중간에 먼저 두목 격인 한명회 등을 없애고, 다음으로 영순군과 귀성군을 처리하고, 그리고 임금의 가마를 덮쳐서,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유자광은 일찍이 세조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세조는 천한 출신으로 경복궁 문지기에 불과했던 자신을 발탁하여 병조정랑에 임명하였다.

병조정랑은 오늘날 국방부의 인사국장급 정도가 된다.

실록에 의하면 당시 사헌부와 사간원은 크게 반발하였다.

"병조의 정랑 자리는 나라와 군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고 무인의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입니다. 이러한 관직에 오를 자는 고르고 고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과거 급제자 출신으로 직책을 맡게 하고, 가문과 재주와 행실을 세세히 살펴 고르는 것이 나라의 법입니다. 유자광의 출신은 첩의 아들로서 재주와 행실이 천박하고 용렬하니 병조정랑 자리는 아니 되옵니다.”


세조는 유자광을 적극 지지하며, 단호하게 사헌부와 사간원의 반발을 잠재웠다.

"어찌해서 신분이 미천한 출신이면 재주와 행실을 당연히 천박하고 용렬하다고 보느냐? 너희들 가운데 유자광 같은 자가 몇 사람이나 있느냐? 과인은 절세의 인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세조는 유자광을 과거에 장원급제를 시켜 정 3품 병조참지까지 승진시켰다. 병조참지는 지금의 국방부 차관보급이다


남이는 세조에 대한 백성의 원망이 지극히 깊으니 기회를 잃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세조에 대한 은혜가 깊은 유자광은 남이가 세조를 비난하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유자광은 오히려 세조의 극진한 총애를 받은 남이가 배은망덕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조는 삼십도 되지 않은 남이를 병조판서의 지위에 올리지 않았는가.


새로 즉위한 임금이 구 공신들의 말을 듣고 곧바로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물러나게 했으니, 남이는 구 공신들은 물론 주상에게도 원한이 있는 것이라고 유자광은 생각했다.

유자광은 남이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거사계획을 털어놓은 그날 밤, 즉시 말을 몰아 궁으로 달려 남이의 역모를 막았다.


유자광은 세조의 유일한 계승자인 임금을 지킴으로서 세조가 베풀어준 은혜를 갚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유자광은 또한 이것이 자신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남이의 죽음은 무고나 모함이 아닌 실패한 역모에 의한 것임을 사실(史實)이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유자광을 증오한 사림이 지배한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남이가 유자광의 무고로 죽었다고 하여 복권을 요청한 일이 없었다. 남이의 복권은 순조 18년, 죽은 지 350년 만에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강순과 함께 비로소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가 무고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전문 역사학자들이 학술논문에서 유자광에 대해 언급할 때 남이를 거짓으로 고변하여 억울하게 죽게 한 사람이라고 서술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은 물론 역사학자들에게까지 남이의 역모 사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은 후세 사람들이 역사를 사실(史實)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게 하는 기록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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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sskn1324.tistory.com/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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