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피하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며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남쪽나라의 겨울은 기대와는 달랐다.
출발 전부터 불안한 일이 있었다. 무안에서 비극적인 항공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된 데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도 같은 저가항공기였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바꾸거나 여행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의 매서운 추위에 두툼한 옷을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 가방에는 티셔츠와 바람막이처럼 가벼운 옷을 챙겼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기대했던 따뜻함 대신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바닷바람은 더욱 매서웠고, 4일 내내 가벼운 옷을 입을 기회는 없었다.
가이드는 오키나와의 날씨에 대해 말해주었다. "12월에서 2월은 겨울 같고, 6월에서 8월은 너무 더워요. 오키나와는 일 년의 절반은 여행하기 좋은 때가 아니죠." 겨울 피한지로는 그다지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과거 류큐 왕국의 왕궁이었던 슈리성이었다. 류큐는 수백 년 동안 독립 국가로 존재했으며,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신라 시대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고려 시대의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다. 고려 장인이 만든 기와에는 "고려와장조(高麗瓦匠造)"라는 글씨와 제작연도(1273년)가 새겨져 있다.
몽골의 침략에 저항하던 삼별초 일부가 제주도를 떠나 류큐로 이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류큐국은 자주 등장한다. 태조 때부터 줄곧 사신이 찾아왔고, 고종 때는 표류한 선원을 선박을 제공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류큐가 일본에 병합된 시기는 불과 150여 년 전. 우리보다 30년 먼저 국권을 잃었다. 그들은 이차대전에서 일본 패망 후 왜 독립을 되찾지 못했을까? 독립을 바라는 열망이 우리와 달라서 그랬을까. 궁금한 일이다.
차탄의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스페인 해산물 요리 빠에야를 먹었다. 여행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아내는 이곳 바닷가 호텔에서 며칠 더 머물고 싶어 했다. 다음 기회에.
공항 근처 무인도 우미카지는 하얀 건물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오키나와의 산토리니라 불린다. 활주로에서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동경에서 즐겨 먹던 '시아와세 팬케이크'를 로열 밀크티와 함께 맛봤다. '시아와세'는 일본어로 행복이라는 뜻. 이름처럼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여행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강추위가 우리를 덮쳤다. 남쪽나라의 따뜻함을 기대했건만, 현실은 혹독했다. 오키나와에서도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씨였는데, 돌아오자마자 더 매서운 한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피할 수 없던 온도 차이에 무너졌고, 감기는 한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