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때 묵은 호텔에 들려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온 가족이 휴가여행을 다녀왔다.
큰 아이는 공군 중위로 복무 중이고, 둘째 아이는 대학교 4학년이다.
2박 3일 일정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출발 당일, 공항으로 가는 택시기사가 덕담을 건넸다
부모를 따라 여행에 나선 '착한 아들’이라고 칭찬했다.
제주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타고,
섭지코지에 있는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에 체크인했다.
그리고 서귀포 성산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향했다.
두모악(頭毛岳)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갤러리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재탄생시켜서 만든 것이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들은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와서 자연을 느껴보라고, 마음을 고요히 하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이 있다고, 여기에 흠뻑 빠져보라고 속삭였다.
찰나의 깨달음을 가슴에 품고 갤러리를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은은한 감동을 경험하였다.
갤러리에서 본 구름사진의 영향인지,
제주에서 보낸 3일 내내
자주 하늘로 머리를 들어 구름을 보았다.
섭지코지 등대에 올랐다.
그곳에 위치한 레스토랑 ‘민트’에 들렀다.
글라스 하우스로 불리는 이 레스토랑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이다.
모든 창의 전망이 바다로 향한 아름다운 레스토랑이었다.
가까이 보이는 일출봉 옆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아이들과 아내는 탄성을 터뜨렸다.
둘째 날 여행의 주제는 제주의 건축물 보기였다.
우선 제주도의 서남부지역에 모여 있는 재일동포인 이타미 준이
설계한 건물들을 보러 나섰다.
제주 방주교회, 핀크스 포도호텔, 그리고 비오토피아가 그것이다.
방주교회는 감동적이었다.
런던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절 구경을 하듯 유럽의 많은 교회를 보았지만
방주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 하나였다
교회 자체는 이름처럼 물 위에 떠있는 노아의 방주처럼 세워져 있었다.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대상 사이로 제주의 자연이 뒤로 보이고,
예배실 자리 옆의 창 너머로 잔잔한 수면이 보여 교회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세상에 쏟아붓는 큰 비와 홍수를 피해 방주 속으로 피신을 한 듯한 감동이 몰려왔다.
근처의 제주 핀크스 포도호텔은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건축되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송이 포도와 같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비오토피아는 주거단지여서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은 휘닉스 아일랜드 내에 있는 ‘지니어스 로사이’에 들렀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고, 명상과 영성을 깨우치게 하는 건축물이었다.
문경원 작가의 미디어 아트인 다이어리와 어제의 하늘, 그리고 오늘이 전시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공유하며 하늘과 땅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건축물과 전시였다.
제주의 해산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성산일출봉 등정에 나섰다.
더운 날씨를 피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시간을 잡아 산을 올랐다.
등산을 싫어하는 아내가 중턱쯤에 발을 멈추고 그곳에서 쉬면서 기다릴 터이니 우리 보고 다녀오라고 했다. 두 아들의 격려로 아내도 끝까지 정상에 올라 아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일출봉 정상에 오르니 밤이 되어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는 월출봉이 되었다
달빛을 받은 일출봉과 그 아래 어촌마을, 그리고 먼바다에 불을 환히 밝힌 오징어 배를 바라보는 정취가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아름다운 제주의 밤이었다.
다음날은 마음먹고 새벽 5시에 기상하였다.
잠이 더 좋은 아내와 작은 아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깨우지 않고,
큰아들과 함께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봉우리를 오르며 군인 아들의 강한 체력을 목격하였다.
평지를 걷듯이 올라가는 아들과 보조를 맞추니 숨이 찼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숨을 고르며 기다리니, 드디어 바다 위로 장엄하게 해가 솟아올랐다.
성산일출봉 입구에 찍혀 홍보하는 일출 사진과 거의 똑같은 광경이었다.
가슴에 웅장한 기운이 밀려왔다.
지난 가족 휴가 때 한국에서 최고의 낙조지라는 신안 증도에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장엄한 일몰을 보았다.
그때 넘어간 해를 성산일출봉에서 다시 보게 되니 감동이었다.
아침을 먹고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생활을 한 자취를 찾았다.
세한도를 그린 그곳이었다.
김정희는 8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통하여 큰 흔적을 남겼다.
그 시기가 그를 역사적인 인물로 만든 담금질 역할을 한 것이다.
추사관을 둘러보니, 지난 휴가 때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에 들렀을 때 느꼈던 감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김정희는 제주 유배지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3천 명의 제자를 길렀다.
3천 명이라면 당시 제주의 젊은 선비는 거의 모두 추사에게 배우고자 했던 게 아닌가.
아마 김정희는 공부하고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제자로 받아들이는 데 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희는 유배의 아픔에 더하여 풍토병과 소화불량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다.
추사는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가 제주에 인편으로 보내준 차를 마시며 심신의 병을 달랬다.
뜨거운 햇살로 인해 만장굴이 최고의 피서공간이 되었다.
만장굴에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더워진 몸을 식혔다.
나올 때는 춥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름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아이들 형제는 앞서고 아내와 나는 천천히 걸으며
태곳적에 만들어진 신비한 동굴 분위기를 즐겼다.
만장굴을 나와 정방폭포로 향했다.
서귀포의 바닷가에 있는 정방폭포는 거대한 물기둥을 세워 놓은 듯했다.
수직 절벽에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장관이었다.
이러한 폭포는 동양권에서 단 하나뿐인 절경이라고 한다.
중국 진나라 사람 서복은 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남동녀 500여 명과 함께 이곳에 왔으나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
서복은 떠나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 서복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새겨 흔적을 남겼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서귀포도 ‘서복이 돌아간 항구’라는 뜻으로 나온 이름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엄마 아빠가 신혼여행 때 묵은 호텔에 들려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제주도 동해안을 따라 해안도로를 돌면서 함덕 해수욕장에 들러
슬리퍼로 갈아 신고 차가운 바닷물을 몸으로 느꼈다.
멀리 모터보트를 따라 바나나 보트가 신나게 공중을 회전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바나나 보트에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나나 보트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때마침 타는 사람이 없어 아이들 두 명만 바나나 보트의 처음과 끝에 넉넉하게 자리를 잡았다.
바나나 보트가 꽤 먼바다로 나가고 더 크게 회전하였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들이 탄 바나나 보트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이들의 타는 자세가 좋아서 모터보트를 더 빨리, 더 멀리 운전했다고 한다.
몸이 파도로 흠뻑 젖은 아이들은 내친김에 한바탕 바다 수영을 즐겼다.
제주공항에 가면서 근처에 있는 제주도의 랜드 마크인 용두암에 들리는 것으로 제주여행을 마감했다.
즐거운 먹을거리 경험으로
성산일출봉 근처 백록 회관의 고등어회와 고등어 찜.
두툼하게 썬 회인데 맛이 넉넉하고 고소했다.
저녁으로 먹은 제주 흑돼지 오겹살 구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인기였다.
핀토스 포도호텔에서 먹은 전복 물회와 성게비빔밥, 왕새우 우동, 흑돼지 김치찌개.
섭지 해녀의 집에서 해삼, 소라, 전복 모둠회, 전복죽, 겡이 죽, 성게칼국수, 쑥전.
레스토랑 민트에서 커피와 민트아이스크림, 파인애플 주스.
성산일출봉을 내려와서 롯데리아에 들러 먹은 팥빙수
주행 중에 패밀리마트에서 사서 즐긴 빙수 설레임.
공항 오는 길에 먹은 제주도 순대
공항 식당에서 시도해본 그동안 못 먹어 본 제주의 토속음식.
말고기 철판구이, 메밀빙떡과 오메기떡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감귤 초콜릿과 오메기떡을 더 사 가지고 왔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기억에 남을 가족여행이었다.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일러스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