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이 Sep 05. 2023

파이오니아 저작권 저인망 시대는 오발탄일까

산문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 거장 AI, 너의 이름 파이오니아 

♬ AI 발달의 다섯 시기와 일곱 단계

♬ 파이오니아의 여명, 티핑포인트 전반기까지

♬ 인간 문명에 AI가 존재감 있게 등장한 순간

♬ 파이오니아의 출현

♬ 파이오니아의 후폭풍, 저작권 저인망

♬ 파이오니아 저작권 저인망 시대는 오발탄일까

♬ 파이오니아와 인간 예술가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생략)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AI로 저작권 저인망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란 몽상은 그저 몽상일 뿐이다. 여기서는 그것을 확증하는 것보다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몽상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작권 저인망을 가속화하려는 기업의 의지가 어느 정도 먹혔을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 예술가의 반발로 사회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채, AI에 대한 제한을 받아들이고는 기업이 다른 활로를 찾는 경우다. 그리고 그 어느 경우든 인간 예술가의 위상이 하락하는 결론으로 엇비슷하게 예상한다. 






“저작권 저인망 시대에 대한 걱정은 과도한 것 아닐까요? 인간 예술가의 생업이 달린 문제라, 처음부터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듯해요. 그렇다면 기업으로서도 한발 물러서야 할 것이고요. 소리바다 때나 스트리밍 업체의 수익 배분 문제 때도 예술계 종사자들이 강력하게 항의해서 불법 다운로드라든지 불공정한 배분 문제가 제법 해소되었듯이요.”

“더구나 기업에서 AI를 저작권의 주체로 만들거나 최소한 그런 효과를 지니게 하겠다는 거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AI의 결과물을 기업에 안정적으로 귀속하는 효과를 노리겠죠. 현재 없는 새로운 관행을요. 더 힘들죠. 기업이 착취를 위해 많은 것을 해냈다지만, 한계선이 있다고 보죠.”





→ 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개인적으로도 저작권 저인망 시대가 필연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기업을 압박하여 그러한 저작권 패권 다툼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작권 제국주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요. 저작권 개척 시대라 해도 되겠네요. 

설령 그런 시대가 오지 않더라도, 여전히 기업은 비슷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AI 때문에 프로 예술가의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죠. 






저작권 저인망 시대가 함의하는 위력이 말 그대로 불발탄이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누군가 잘못 맞는 오발탄이 될 수는 있겠지만요. AI가 예술 창작에 있어서 예측했던 것에 한참 못 미쳐서 장난감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능력이 발달하는 가운데 예술 창작 능력 역시 병행 발전할 수 있다고 봐요. 


[신예 감독, 케이]
“여기서 잠깐, 기업이 시민의 반발에 반응하며 AI의 시대를 맞이할 두 가지 가능성을 몽상해보죠. 어, 그런데 이건 제가 해야 할 말이 맞나요?” 






아차, 그건 제 말이죠. (웃음) 케이를 생각하다가 말이 엉켰네요. 

어쨌든 기업이 시민의 반발에 반응하며 AI의 시대를 맞이할 두 가지 가능성을 몽상해보죠. 우선 한 경우는 정도의 차이를 두고 타협점을 찾으면서 저작권 저인망 시대에 기대하는 효과를 우회적으로 획득하려는 움직임일 거예요. 


다른 한 경우는 예술가 집단이 사회적 승리를 거두면서, AI가 저작권 주체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기업의 우회적인 노림수조차 차단하는 경우겠죠.






먼저 기업이 어느 정도 타협에 성공하는 경우를 몽상해보죠.

AI가 완전한 저작권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조건부로, 저작권 주체가 되는 효과를 누리면서 법인에 저작권을 부분적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이겠죠. 또는 특허권처럼 기간을 ‘예컨대’ 20~30년 정도로 짧게 두어 AI 저작권을 약화하는 방식이고요. 

기업이 시민과 예술가 집단의 요구를 의식했다는 것은 분명하겠죠. 정부의 조율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이 자식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되게 귀찮게 구네. 아! 장사는 나만 하나?”






어차피 AI로 예술 창작을 하겠다는 건 그것으로 장사를 해보겠다는 건데, 소비자의 마음을 거스를 필요도 없겠죠. 오히려 현업에 계시는 분들과 상생할 방안을 수립해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기업이라면 그런 모양새라도 취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설령 위선이라 해도요.


“우리 기업은 원래부터 고객 여러분과 상생하고자, 콜록콜록.”






저작권 기간을 짧게 하는 방식 말고도, 저작권의 주체로 AI를 조건부로 인정하는 경우를 더 말해보죠. 간단히 보면 저작물 연구개발팀의 형식을 적용할 수도 있어요. 기업에서 예술가들을 대거 채용하고는 이들과 AI의 협업을 통해서 규정에 따라 회사로 저작권을 귀속하는 것과 엇비슷한 효과를 얻죠. 


“명화라면 벌써 엇비슷한 효과를 내지요. 제 작품 중 일부는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저는 잠깐, 빈센트 반 고흐였습니다.”






투자자의 대자본이 끼면 영화에서 저작권자가 영화감독이라고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넷플릭스가 100% 투자한 작품의 저작권은 넷플릭스에 귀속되듯이요. 저작 재산권이 창작자에게 영구 귀속되는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실 특허를 위해 연구진에게 충분한 보상도 하지만, 핵심적 권한은 투자를 감당한 기업이 확보하듯이요.


이런 계약을 맺으면 예술가들로선 생계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까요? 어쩌면 애초에 상업적인 감각의 미진을 이유로 비인기 예술가들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분들이 생계 문제가 절박할 가능성이 높은데 선택권 없이 소외되는 거죠. 결국 인기 예술가 입장에서만 이런 고민이 유의미할 거예요. AI와 협업하는 게 나은지 따져보는 것이요.






그런데 만일 정부에서 의지를 지닌다면, 와해된 저작권 체계를 능동적으로 고쳐나갈 수도 있겠죠. AI가 창작한 압도적 생산물을 사실상 기업이 우회적으로 관리하면서 저작권 저인망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누리려 한다면, 아예 저작권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거죠.


“저는 정부 관료입니다. 관여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민감한 사안이라.”






예를 들어 ‘AI 예술 공단’을 설립하고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채용하여 협업하게 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저작권을 등록하고, 해외의 다른 집단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게 하는 거예요. 그 인세의 일정 배당을 AI와 협업한 예술가에게 주거나, 그에게 연봉을 지급하면서요.


아니면 ‘AI 예술 국립연구소’를 두고 연구소 소속 AI만을 AI예술의 저작권 주체로 인정하는 건 어떨까요? 국가 차원에서 AI 예술 저작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공익을 증진하고 국익을 도모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예술가로선 국립 연구소에서 사익 추구를 극대화하지 않고, 그것의 권리 행사로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저해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생길 거고요.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의 이익을 누리진 못하지만, 적어도 다른 기업에서 저작권을 쓸어가지 않고, 정부에서 다양한 저작권을 확보하고는 그것을 콘텐츠 발전을 위한 합리적 수준에서 이용하도록 해줄 것이기에, 예술세를 낸다는 개념으로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 이미지를 유지할 수도 있을 거예요.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예술을 위하여 이런 공단을 배치할지 궁금하죠. 그 부담을 민영화를 통해 기업에 전가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죠. 아니면 공단 운영을 위탁하려고 할까요? 

만일 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운영이 가능해진다면 확실히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해지는 거겠죠. 






[다큐 연출부원, 다중우주론 마니아]
“저 사실 미래의 공산화 가능한 지역을 몽상하다가, 남미에 건국되는 공산주의 국가인 코롤린트 공화국을 몽상한 적이 있어요. AI 저작권 관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공화국 사정이랑 연결되네요.
이 공화국에 공산주의 혁명이 생긴 건, 마약 카르텔 때문이었어요. 그 전에는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 국가였는데, 거대 기업이 사실 마약으로 일어선 범죄 집단이었거든요. 전 국민이 마약 생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AI와 로봇 자동화 시스템으로, 국민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고 빈민층으로 전락하죠. 기업이 국민을 생각할 만큼 현명하지도 않았고, 정부도 부패했으니까요. 
국민들은 기존에도 열악한 처지였는데 더 심각해진 거죠. 심지어 소수 부족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지죠. 결국 반군이 활동하기 좋은 지역이 되죠. 정부에선 공산화를 우려한 나머지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이지만, 결과적으로 코롤린트 인민 공화국이 세워져요.”

“기업의 횡포를 통제할 수 없다 보니 결국 자본주의가 무너지죠. 여기서 코롤린트 공화국의 AI 예술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공산 국가다 보니 저작 재산권에 관해선 무의미할 듯하죠. 
AI 오작동으로 핵 미사일 사고 발생 가능성이 중요할 뿐, AI 기능으로 예술을 진흥한다는 건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나겠죠.”

“저로서도 정치와 군사 영역의 AI 기술에 더 관심이 많았고요. 예컨대 AI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감시 기술로 활용되거나, 선진국에선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 의견 청취와 수집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겠죠. 
그러다 보니 AI예술 관련 묘사는 좀 싱거운 느낌도 주었죠. 특히 공산주의 국가에선 선전 예술 정도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AI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몇몇 사례로서요.”

“예술은 인간의 고결한 의지를 강조하는 분야다 보니, AI예술보단 인간 예술가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할 것 같고요.
오히려 AI는 불온 세력의 예술 작품을 단속하는 역할을 맡지 않을까요? 또는 저작권 저인망 시대를 대비해서 타국에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도랄까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에서 저작권 저인망 사냥에 참여하려 할 것이고, 자본주의 진영에선 이를 막으려 하겠죠. (웃음)”






[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코롤린트 공화국 몽상은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더 해보았으면 해요.  
일단 여기선 본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이제 예술가가 기업의 시도를 무산시키고, 사회적 압력을 통하여 이기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기업의 절충안 시도조차 무위로 돌아간 거죠. 또는 정부의 중재안조차 예술가의 자존심을 세워주진 못한 거고요. 

결국 AI가 저작권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관철되죠. 예술가의 기존 관행을 보장받고요. 이건 국제적 합의가 있어야 더 좋겠죠.


마음고생 이제 끝나려나?






“이는 앞서 말한 정부의 중재안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요. 즉 AI를 저작권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국가 주도로 AI의 아이디어를 추출할 필요는 있어요. AI 저작권 영역을 이원화해 AI 예술 국립연구소 소속 AI의 예술에만 저작권을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대응 때만 활용하니까요. 해외의 가열찬 움직임을 외면할 수 없을 테니, 안전 장치의 의미로요.”

“그리고 가급적, 일상의 민간 영역에서 국립연구소 소속 AI의 실질적 성과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거죠. 예외적으로 방어적 행사를 할 때는 인간 예술가를 보호하려는 목적에 부합해야겠고요. 당연히 기업 소속 AI들의 창작물도 저작권 대상물로 인정하지 않겠죠.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요?”






그러면 아마도 기업에서는 AI의 남아도는 능력으로 대외비의 시나리오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만 최고 성능의 AI를 활용하겠죠. 상용화된 AI는 예술 창작 보조 도구로 소비자에게 팔겠죠. 그것으로 주요 수익을 창출하고요. 


소비자 입장에선 이 AI의 창작물로는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없겠지만, 상당히 뛰어난 성능의 AI를 통해서 아마추어와 프로 예술가의 실력 차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한 사람이 저작권 주체가 되려고 할 테고요. 사실 AI의 도움을 받았는지 판단하기가 애매하겠죠. 지금은 AI 예술을 구분하기 수월하겠지만 그때는 어려울 거예요. 

예술가의 권위가 조금 무너진다고 해야 할까요? 






시민 예술가의 설득력 있는 등장으로 프로 예술가의 권위가 약해지니까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건 예술로 밥 벌어먹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로 기업에서는 산업적으로 특화되면서 예술성도 인정받는 최고 성능의 AI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문화 예술 산업의 우위를 가져가려 하겠죠.


마음 고생이 끝나지를 않아.






대중들은 ‘AI를 기반으로 하되 인간이 제작한’ 문화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인간 예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부채감도 느낄 거예요. 

그런 가운데 늘 그렇듯 엇비슷한 처지끼리도 균열이 생길 수 있죠. 예를 들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계층을 나누기는 애매한 상황을 맞았음에도, 프로 예술가들이 AI의 보조 도구화를 저급한 것으로 치부하며 하대하려고만 하면, 프로 예술가에 대해 반감도 생기겠죠. 


“와, 이거 인간 정신 영역의 수호가 아니라, 밥그릇 쟁탈전인 거야?”






모두가 창작을 하지만 인간의 작품을 점점 향유하지 않게 되죠. 마치 독립예술까지 아우르다가 점점 대중 친화적인 예술 문법에만 익숙해지듯이요. 지금도 대중 예술의 힘이 강력한데, 그때는 AI가 대중성뿐 아니라 예술성으로도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론적으로는 100만 편의 흥행 후보작이 발표되는 시대일까요?

대개 AI가 빅데이터에 기반해서 만들어낸 웰메이드 작품인 거죠.


AI의 위력을 피할 길이 없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