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방백을 한다면

산문

by 희원이

[목차: 에어픽션-방백의 놀이]

♬ 독백과 대화 사이

♬ 대화, 독백, 방백은 연극의 요소다

♬ 일상생활에서 방백의 양상

♬ 이것도 방백이다

♬ 연예인이 방백을 한다면

♬ 지인끼리 온라인에서 쓰는 암호

♬ 복화술

♬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방백의 기초적 유형

♬ 오프라인 방백의 예1

♬ 오프라인 방백의 예2

♬ 온라인 방백

♬ 개인 간의 온라인 방백

♬ 방백의 존재를 깨닫다

♬ 미친 우연

♬ 놀랍도록 기막힌 우연

♬ 방백의 덫

♬ 방백의 놀이

♬ 방백의 유통을 엄밀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소개글]
- 이 내용은 사실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을 분류하던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14년 전쯤으로 실제로 핵심적으로 짧은 내용은 <웹 시대의 지성>에 덧글처럼 넣었는데, (생략) 이제 이런 유형의 소통은 트위터와 같은 데서는 일상이 되었고, (생략) 기대와는 달리, 이 소통 유형을 정교하게 서술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고, 미신적으로, 부정확하게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생략) 그 과정에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것도 있었고, 거쳤기 때문에 배운 것도 있었다. (더보기)





♬ 연예인이 방백을 한다면

연예인들은 TV에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에게 방백한다. 그들은 브라운관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면서 대화를 하거나 독백하지만 기실 연극 무대에서처럼 무대 밖 관객석을 상정한다. 그래서 그들이 TV에서 누군가와 독백하거나 대화하더라도 온전한 독백이나 대화가 될 수 없다. 일상의 의미로 보면 분명 방백이다.

물론 방백의 유형은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연예인이 있고 그 연예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연예인이 애인에게 사랑한다는 표시로 “방송에서 하트 모양을 그리겠다”고 약속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실제로 토크 프로에서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을 그린다. 애인은 이것을 시청하고 기뻐할 것이다. 이때 연예인은 시청자에게 방백을 했다. 동시에 애인과 약속된 대화를 한 셈이다. 이것은 ‘대화 기능을 일정 부분 수행하는’ 방백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애인과 헤어진 후 한 연예인이 애인 앞에서 A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을 떠올린다고 해보자. 그 노래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연예인은 애인을 그리워한다. 언젠가 그 노래를 방송에서 불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미처 지키지 못한 사실을 떠올린다. 그래서 방송에서 A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는 뒤늦게나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우연히 이 방송을 본 애인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눈물 흘린다. 그들은 대화를 한 셈이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그 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이라 부른 건지, 아니면 그녀와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의미로 부른 건지 그 애인으로서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은 자신을 향해 부른 노래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애인은 방백을 수용한 셈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팬 서비스 차원의 노래를 수용자 중 한 명으로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대화에서 완전한 소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 묘한 대화가 지니는 따뜻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만일 애인이 추측한 게 옳다면, 그 연예인은 단순히 A라는 노래를 부른 게 아니다. 그는 3분여의 시간동안 이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나는 너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혹은 “나는 지금 너를 생각하고 있다”라고 소리 없이 외친 셈이다. 이것은 ‘암시적으로 대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백이면서 A라는 노래를 통해 옛 추억을 지시하는 방백이다. 이때 노래 전체가 대화이면서 방백으로 기능한다.

또한 이러한 암호와 같은 소통을 우의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그 연예인은 애인에게 토끼라고 자주 불렀다. 그렇다고 그것을 별명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토끼를 주인공으로 하여 애인과 함께 했던 둘만의 추억을 연상시킬 만한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구성한다. 혹은 사랑 고백을 할 때 했던 결정적인 행동을 그 퍼포먼스에 삽입한다. 이를 시청한 옛 애인은 여러 요소가 겹치는 걸 보고 자기의 일과 닮았다고 눈치 챌 수도 있다. 둘만이 아는 은유가 많을수록 그렇다. 이 역시 방백이면서 퍼포먼스 전체가 대화 그 자체다.

이때 대화의 기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만일 그 연예인이 그 퍼포먼스를 하기 전에 몇 가지의 초식동물 퍼포먼스를 했다면 그것은 연예기획의 논리적 과정에서 단순히 토끼 퍼포먼스를 했다고 파악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퍼포먼스를 잘 하지 않던 연예인이 느닷없이 퍼포먼스를 했다면, 그 소재가 토끼라는 것이 도드라진다.

물론 이때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퍼포먼스를 갑자기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사를 쓸 수 있다. “어제 연예인 R이 이색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라고. 그리고 방점은 ‘토끼’보다는 ‘퍼포먼스’에 찍힌다.

반면 애인은 토끼 퍼포먼스에서 ‘토끼’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소재들 중 자기와 관련된 것들이 도드라져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가 그 연예인에게서 “나는 지금 너를 생각하고 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여기고 잠시 그 추억에 잠길 수도 있겠다.

다만 이는 언제나 불완전한 대화일 뿐이다. 때로는 그것에서 소통의 암시만을 원하는 경우도 있기에, 달성되지 못하는 소통의 형식도 요긴할 때가 있다. 또 때로는 이러한 애매한 시도로 촉발된 진짜 소통이 물꼬를 트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게 부족한 소통도 그들을 단단하게 이어줄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긍정적인 가능성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방백은 독백이나 대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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