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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27. 2023

방에 있다(2)

삼행시 콜라주

[목차: 방에 있다]

1

2

3

4

5


[소개글]
- 개인적으로는 삼행시 콜라주라고 부릅니다. (생략)
- 번호글을 읽으면서 아래 배치된 삼행시의 어떤 표현이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생략)

- 서른 살의 화자는 장례식을 다녀왔다. 이제 막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 그저 생각하고 있을 뿐.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를 생각하고 있을 뿐.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언제나 태평하여서, 좋았다.





[2]

일어나자마자 새벽까지 보다가 접어두었던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블루>를 마저 보았다. 하나의 예술영화를 어렵사리 다 보고 나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교양이 늘었다고 여길 때였고, 그런 때에는 몸이 반응하는 상업영화나 팝음악을 몰래 들으면서도, 애써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몸은 비비꼬이기 마련이었는데, <블루>는 제법 슬프게 다가왔다. 스무 살 때부터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대략 열한 번쯤 본 영화였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종종 그 영화를 보곤 하였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어쩐지 그날따라 정말로 영화 속 이야기가 삶처럼 느껴졌다. 

이른 아침에 고양이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영화가 끝나는 것을 보고는 노트북을 덮고, 방 청소를 시작했다. 강아지는 청소 시간인 것을 아는지 창틈으로 올라가 밖을 쳐다보며 하품을 한다. 방 청소를 끝내고 나자, 오랫동안 방을 닦지 않아서 그런지 끈적이는 느낌이 발에 남았다. 방바닥에 들러붙은 찐득한 이물질이 무엇인지 되짚다가 못내 찜찜하여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발부터 씻는다. 발을 박박 문지르며 물로 씻는다. 이도 닦는다. 박박 닦는다. 입 냄새가 사라지는 대신 치아 한두 개가 툭 떨어져 발등에 꽂히는 상상을 했다. 핏줄기가 천장까지 치솟는 상상.

귀리를 환풍구에 뿌려두고, 마당으로 나가 자반고등어를 놓아두었다. 길짐승이라도 있으면 먹고 가라는 뜻이기도 하였지만, 얼마 전 동네에서 누군가 놓아둔 독이 든 사료를 먹고 죽은 길고양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의 영혼은 돌고 돌아서 고양이도 되었다가 사람도 되었다가 하는 것이라면, 살아있는 길고양이도 언젠가 우리 곁을 스치고 갔던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그런 믿음도 있었다. 지금 집에 사는 고양이도 어느 겨울 아침에 굳이 우리 집을 점찍었는지 문이 열렸을 때 너무도 태연스럽게 들어와 버렸다. 어린 새끼가 겁도 없이 그러는가 싶었으면서도, 또 인연이었던 누군가를 생각하기도 하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찮은 슬픔이었다. 사라져버린 사람에 관해서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어떤 한 사람이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뿐. 그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다는 것뿐. 그거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사람은 오래 전부터 어린 시절에 관한 따뜻한 기억과 연결되곤 했다. 하필 장례를 치르고 온 날이었음에도 집에 와서 부랴부랴 눈사람을 하나 만들었다. 시린 손을 비비며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인 뒤에는, 고양이와 함께 깜빡 낮잠에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녀석이 당당하고 태평하여서 좋았다. 있어도 좋을 순간이었다.          



♬ 그냥

 그- 르렁대는 코 

 냥- 이는 집사가 좋아서, 부비부비          



♬ 방 청소

 방- 을 대청소할 때면 이미 많은 것이 쌓여 있다. 나도 모르게.


 청- 명한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연다. 고양이는 멀뚱거리며 사람이 하는 짓을 무심히 보고, 때로는 하품을 한다.

 소- 란과 난장을 허용한 뒤에야 비로소 질서를 찾는, 내 방.           



♬ 창문 틈 사이에 끼인 백구 한 마리

 창- 문 틈 사이에 끼인

 백- 구

 한- 마리.     


 불- 광동

 꽃- 돌이가 밖을 본다.          



♬ 발톱

 발- 을 씻었다. 발은 더러웠으므로 발을 물 없이 만진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었다.

 톱- 으로 발을 잘랐다. 발 위에 떨어진 발, 등을 다쳤다.           



♬ 냄새

 아- 침에     


 입- 을 벌려

 이- 를 닦는다.  

   

 없- 던 냄새는 늘 생기고

 는- 냄새를 늘 지운다.


 것- 참, 신기하다.

 들- 고양이가 물어다 주었나?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며 먹이를 찾던 냄새는


 이- 사이에 낀 찌꺼기를 물어가려다 입에 갇혔나 보다. 내가 잠든 사이에.

 성- 질 참 고약하다. 내가 가둔 것도 아닌데,

 복- 어처럼 독을 터뜨리곤 제풀에 지쳐 침샘에 몸을 뉘고 녹아버린 냄새.           



♬ 귀리와 자반고등어

 귀- 리를

 환- 풍구 앞에 뿌려두었다.

 자- 반고등어를

 들- 판에 놓아두었다.

 의- 저께 죽은 것들은     


 명- 계(저승)로 들기 전에

 단- 출한 가죽 안으로 먹이를 집어넣었다. 먹지 못하는 처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아직 잊지 못한 삶의 버릇을 성실하게 달랬다.          



♬ 무슨 말이 필요할까

 므- 슨 말이 필요할까?

 비- 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보- 배로운 당신은

 셋- 을 세더니

 에- 도의 주문을 외웠다.

 게- 보를 읊었다.     


 친- 구의 친구가 죽고, 그 죽은 친구의 친구가 애도한 뒤 죽었다.

 절- 간에 숨어있던

 을- 적한 귀신이 여전히   

  

 보- 란 듯이 살아보겠다며

 이- 생의 습관을 말한다.

 는- 물은 헛되이 그리워하는 자의 몫.     


 다- 들 그렇게 산다며

 윗- 세대의 꿈을 대신 꾼다.          



♬ 하찮은 슬픔이여

 두- 사람의 사이에

 려- 운이 감돌았습니다.

 운- 때가 잘 맞았다고 여겼던 것일까요?     


 마- 을 사람들은 사라지고

 음- 지의 사고는 그렇게 아무도 발설하지 않는 것으로 말없이 관례대로 합의되었습니다.

 으- 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로- 뎀나무에서 앉아 쉬어가던     


 섬- 마을 여자는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기- 록으로만 있게 된 여자,

 고- 정된 불운


 찬- 기운 서린 어딘가에 누워있을 사람

 양- 의 눈물

 하- 찮은 슬픔이여!

 라- 르고, 묻히고. 사, 무치고.          



♬ 눈사람을 만들던 날

 눈- 사람을

 이- 틀 동안 만들었다. 만든 뒤 부수고 다시 만든 뒤 부수었다. 그러고는 하나를 그냥 놓아두었다.     


 가- 장자리에 자리 잡은 눈사람은 마당과 집 모두를 차지한 채로 여유롭게 마당 가장자리에 서서 자기의 전 재산을 구경하는, 이를테면 창조주를 관망하는 진짜 주인 같았다.

 장- 독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오랜 관록마저 묻어난다. 겨우 세 시간밖에 안된 녀석의 눈빛 치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먼- 지를 책장에서 닦아내며, 검어진 물티슈를 보다가, 밖의 눈사람을 보았다.

 저- 눈사람, 언젠가 본 적이 있었을까? 문득 우리는 이미 만난 사이였고, 그걸 모른 채로, 아직 만나지도 못한 우리를 만난 사이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그를 쌓아올렸을 때, 비로소 우리의 운명을 완성하게 될 것이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붓- 다는 기억에서조차 아련할 만큼 먼 곳으로 밀려나 있고,

 는- 개가 어울리는 계절도 아니다.

 다- 미는 거실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졸린 표정으로 하품하며, 발바닥을 핥으며.          



♬ 사랑한다습관처럼

 오- 수를 즐긴다.

 늘- 낮에 잠 들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고


 날- 붙들던 고민도 그리 대단치 않다.

 씨- 만 남기고 과육은 알차게 먹자.


 조- 용히 살자.

 오- 래 살다 죽게 되면

 타- 국으로부터 오는 소식도 그리 궁금하지 않다. 사랑한다, 습관처럼.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창백한 불꽃> 제목 인용

- 박준, <발톱> 제목 인용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제목 인용

- 현대인의성경, <느헤미야 7장> 소제목 인용: "귀환자들의 명단"

- 현대인의성경, <왕국 건설2, 20장 24~30절> 소제목 인용: "므비보셋에서 친절을 보이는 다윗"

- 현대인의성경, <시편 115편 13절·18절> 참조: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찬양하라"

- 박준, <눈이 가장 먼저 붓는다>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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