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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ug 08. 2023

방에 있다(3)

삼행시 콜라주

[목차: 방에 있다]

1

2

3

4

5


[소개글]
- 개인적으로는 삼행시 콜라주라고 부릅니다. (생략)
- 번호글을 읽으면서 아래 배치된 삼행시의 어떤 표현이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생략)

-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작중 인물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그런 것도 일상에서만 가능하다. 사는 공간을 떠난 감정과 사건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좁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에서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보낸다. 보내지 않을 수 없으므로. 





[3]

꿈을 꾸었는지 긴 시간이 흐르는 건지 다음날인지 헷갈린 채로 볕드는 창가를 보며 눈을 떴다. 창가 너머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공 차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그 소리가 어찌나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던지 그건 마치 서러운 기쁨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아무 이유 없었다. 괜찮다가도 잊을 만할 때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간질이는 자극이 있었다. 이를테면 햇살을 뚫고 흐르는 바람 같은 것. 누군가의 영혼이 내뱉은 숨결 같은 것. 필사적으로 내뱉는 숨이라지만 우리에겐 그저 산들거리는 미풍 같았다. 그것을 느낄 때면 생기 넘치는 한낮이라도, 그냥, 갑자기 허전해졌다. 자다가 깰 때 먹먹한 느낌으로 눈물이 흘러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밝고 한가롭고 생기 있는 순간에 머무르면 그나마 조금 나았다. 

눈을 뜨고는 버티컬을 젖히고 창문 너머로 피어있는 꽃송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꽃가지를 따라 벽으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보였다. 저녁으로 달려가는 햇살을 따라 그림자도 길어졌고, 지나가던 여자가 꽃을 보다가 삼다수 패트병을 열어 꽃 쪽으로 물을 뿌렸다. 그 김에 물통을 다 비우고 찌그러뜨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휴지통을 찾는 듯했다. 길거리에서 휴지통을 찾기 어려워진 건 이미 꽤 된 일이었다.

목이 말랐고, 허기가 졌다. 찬장을 열어 두 개 남은 햇반 중 하나를 꺼내어 비닐을 살짝 개봉한 뒤 전자레인지에 넣어 2분을 데웠다. 유난히 바닥에 먼지뭉치까지 보여서 결국 참지 못하고 물티슈를 꺼내 바닥을 훔쳤다. 끈적이는 바닥에 알코올을 뿌리고 박박 문지르다, 문득 눈물이 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TV를 크게 틀어놓아서 사람이 있는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깜빡 잊고 아무것도 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때 뜬금없이 창가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소나기 같았다. 급격히 빠르게 굵어진 빗줄기가 창문을 쉴 새 없이 때렸다. 그럴 때면 물을 한 잔 마시고 눈에 걸리는 책을 한 권 골라서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었다. 소리 내서 읽는 것도 좋았다. 때로는 냄비 받침처럼 쓰던 시집이 인연이 되기도 했다. 한때는 호들갑스럽게 싫어하던 시집이어서 냄비 받침대로 전락하였지만, 그 순간에 뜻하지 않게 책상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도 있었다. 때론 운명적 상황이란 필연적인 구석 하나 없이 그저 즉흥적이기도 했다. 

책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기도 했다. 좁은 방 안에서 만용을 부리던 때를 생각하며 문장을 곱씹거나 음악을 듣다 보면, 방이 조금은 넓어져 한 사람쯤은 더 들어와 있어도 될 만해졌다. 문장이나 음악에는 그 정도의 힘쯤은 아직 남아 있었다. 네온사인이 들어왔고, 빗방울에 반사되어 번지는 빛으로 바깥이 물들었다. 

그때 그리운 이름 하나를 창문에 적어두었다. 햇반이 아직 전자레인지에 있다는 것도 깜빡 잊은 채.         


 

♬ 볕드는 창가에 놓인 꿈

 볕- 이 들었다.     


 드- 나드는 사람들의

 는- 그림자만이 볕의 지루함만큼이나 길어졌다.  

   

 창- 밖으로 길고양이가 보였다. 고양이는 실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가- 엾은 것, 따뜻한 봄볕의 그날 길고양이는 나를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누가 들으면 내가 고양이에게 말한 것으로 착각할 만한 문구였다.

 에- 처롭게도 사실이었다. 그건 내게 어울릴 만한 문구였다. ‘가엾은 것.’    

 

 놓- 지 못할 것투성이면 가엾어진다는 걸 그때

 인- 정해야 했다.     


 꿈- 은 단순명료했다.           



♬ 잊을 만하면 이쪽부터 저쪽까지 간질이는

 봄- 날의 꽃가루 때문인지, 잊을 만하면

 이- 쪽부터 저쪽까지 간질이는 자극 다음에, 아  

   

 오- 겠구나 싶을 때 어김없이 온다. 잔기침을 하면서

 면- 역력이 떨어졌나 싶다가도 잠잠해지면 곧 잊는다.  

   

 김- 이 밀려올라와 냄비 뚜껑과 부딪치며 들썩이듯, 기관지가 들썩이는 것을 간신히 참아낼 때면

 윤- 전기가 돌아가기도 전에 모두들 구조되었다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 다행이다. 별일 아니구나.     


 디- 게 큰일인 줄 알았네. 하기야 배에서 사고가 났는데

 어- 디로라도 탈출할 수 있었겠지. 비행기완 다르잖아.   

  

 강- 줄기의 잔잔함만을 생각하던 때였다.

 아- 직 아무도 죽지 않았었다. 배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솔- 직히, 죽어가는 모습을 멀뚱거리며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 화단의 꽃송이를 바라보며

 꽃- 을 화단에 심고

 을- 의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을이다. 물을 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라고 생각한다.


 보- 편적인 생각이라 여기면서도 소중한 꽃님이

 듯- 일(드실) 물 떠와서는 화단에 물을 준다.


 너- 는 무척 예쁘구나. 향기도

 를- (늘) 변함없을 것처럼 진하고 아련해.


 본- 래 없었던 것처럼, 분명 있는 채로.

 다- 복한 사람이다, 난. 없었던 복을 많이도 받은 듯이. 


         

♬ 오렌지동산엔 해바라기와 튤립이 있고 

 오- 뚜기 햇반을

 렌- 지에 2분 돌렸다.

 지- 에스25시에서 샀는데, 사실 예전엔 엘지25시였던 지에스25시에서 씨제이 햇반을 사려고 했는데 하필

 동- 이 났다고 했다. 포켓몬 빵도 아니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엔- 간해서는 밥을 먹어야 했다. 오뚜기를 집어든 여자는     


 해- 물탕을 해먹고 싶었지만 해물탕을 해먹기 귀찮아 해물탕 1인분 포장 제품을 샀다.

 바- 블 먹을 때는 얼큰한 국물이 들어와야 했고,

 라- 면 국물은 너무 자주 먹었다.

 기- 빨리는 일을 하고 난 뒤에는 밥 대신 간단한 요깃거리를 차려놓곤

 와- 인을 한 잔 하면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또는


 튤- 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란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놓고 눈에 걸린 문장을 중얼거리듯 읽어보곤 하였다.

 립- 술엔 와인 향이 묻어 있고

 이- 슬 맺힌 문장이

     

 있- 지도 않은

 고- 리움에 젖어들게 했다. 마치 오래도록 사랑하였던 사람처럼.          



♬ 빗방울을 흩다

 빗- 질을 한 뒤

 방- 울 달린 끈으로 머리를 묶고

 울- 었다. 잠깐,

 을- 고 나니  

   

 흩- 어진 표정으로

 다- 마네기에 적응했다. 어차피 흩어졌으니,    


      

♬ 내 방은 너무 좁았다

 마- 뇽을 부렸다.

 음- 지는 축축하고 몸을 처지게 하였지만

 의- 연한 척하였다.


 짐- 노페디를 좋아하지만, 짐노페디를 오래 듣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 작품을

 을- 마나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내- 용이 분명 충실하였는데

 려- 백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빈 내용의 순간이 무엇이 중요할까 싶었지만

 놓- 친 것을 마저 끼워넣을 때는 공간이 넓을수록 좋았다. 공간이 넓으면 그 넓은 공간을 다 채워야 한다는 압박의

 고- 충이 있었으므로, 꼭 공간이 넓은 게 최적의 정답은 아니었지만,


 나- 에겐

 니- 가 들어와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내 방은 너무 좁았다.          



♬ 창틀 유리창에 적힌 글씨에 대하여

 창- 틀에 끼인 투명한 유리가 틀 안으로 뻗어 어디가 중심인지 알 수 없을 투명함으로 유리창이 된다. 분명 단 한 번의 타격으로 가장 큰 손상이 일어날 중심점이 있기는 할 텐데, 나는 그저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치는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세- 차게 내리 붓는 빗줄기가 창을 때린다. 밤을 타고 번지는 네온사인의 불빛이 물방울과 섞인 채로 희미해질 때

 기- 록한다, 뿌연 창 위로 비친 얼굴에 생채기를 획 그으며 어떤 기억에 대하여





- 김윤아, <봄이 오면> 제목 인용 / 강아솔, <디어> 제목 인용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 제목 인용 

- 박태일, <빗방울을 흩다>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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