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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ug 13. 2023

방에 있다(5)

삼행시 콜라주

[목차: 방에 있다]

1

2

3

4

5


[소개글]
- 개인적으로는 삼행시 콜라주라고 부릅니다. (생략)
- 번호글을 읽으면서 아래 배치된 삼행시의 어떤 표현이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생략)

- 지인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얽힌 친구일 수도 있을 어떤 이의 죽음이 있었더라도, 흔히 자기 삶을 살기 마련이다. 때로는 오래도록 그 사람들의 흔적이 남기도 하고, 드물게 영영 기억에 남기도 한다. 희미해지더라도.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현실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만큼 무심하게 행복할 때도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것일지 모른다. 보관실에 꽂힌 책, 마지막 대출 날짜를 찾기도 어려운, 오래된 책처럼 조용히, 먼지를 묻힌 채.





[5]

일에만 집중했다. 일을 할 때는 온전히 일에만 몰입해야 해서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연말을 막 지나고 조금 여유로워지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쉬는 날에는 오전 늦게까지 잠들어 있다가 정오쯤에야 일어났다. 때로는 이른 오후까지도 무료하게 뒤구르다가 밖으로 산책을 나섰다. 신도시는 깨끗하고, 나는 대출금 갚을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어쩐지 그런 것보다는 휴일에 산책을 하면서 보는 그럭저럭 보기 좋은 조경 덕분에 살 만하다는 작은 착각쯤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감동을 받아서 대출 원금을 제하여 준다든지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음날이면 팍팍한 일상을 견뎌야 했다. 모든 것은 슬프게도 정직했고 기적의 행운이란 어느 방송에서나 들려오는 미담 같은 것이었다. 

그저 약간이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내 삶의 불운이 항상 그 상태로 머물지만은 않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살다 보니, 조금은 평범하게 사는 편이 되었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젖어들고 당신은 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 바다를 본 지도 몇 해가 넘었다. 그런 순간을 상상하며 한숨을 짓기도 하였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때로는 괄호로 남겨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보면 착각은 미담처럼 오역되기도 하여서, 아름답고 오래도록 아름다웠던 순간처럼 이 순간의 호수공원 고니가 수면 위로 미끄러지는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수도 있었다. 1월의 겨울 풍경이 도시에선 특별날 것이 없었지만, 빛이 수면을 타고 흐르다 반사되는 것을 보면서, 고니가 움직이며 퍼트리는 잔잔한 물결을 지켜보았다. 빛이 너울대는 것 같았다.

일상은 조금은 윤기가 흐를 것이고, 집으로 돌아오면 로맨틱하지 않은 일상으로 다시금 엉망이 되겠지만, 그런 소란과 약간의 무질서함으로 모든 상황을 방치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자신과 놀아주지 않고 어딘가를 다녀온 듯한 집사에게 심통이 났는지, 고양이는 한동안 슬리퍼를 때리면서 현관에 앉아 있었다. 우리 착하고 예쁜 고양이는 며칠 전 귀가하며 보았던 눈사람 같이 앉아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이젠 나가지 말라는 듯이 현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출출해서 햇반을 전자레인지 돌려 꺼낸 뒤, 차돌박이 된장찌개 1인분짜리 제품을 꺼내어서는 대접에 담았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다놓은 반찬도 냉장고에 충분히 있었다. 혼자 사는 것도 번거롭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한 뒤 둥글레차를 한 잔 마시며 넷플릭스를 틀었다. 마땅한 드라마를 찾을 수 없어 결국에 책을 뒤적였다. <툴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란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었는데, 이젠 <우주적인 안녕>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해설이 없어 무슨 의미인지 누군가의 해석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으로도 찾진 않았다. 그건 아마도 찾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어서, 그냥 우주적으로 안녕을 해야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우주적이란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우주는 하늘 위에 있었지만, 있다는 것을 배웠을 뿐 직접 본다면 죽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도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겨울바람 탓에 날선 입김처럼. 

욕조에 물을 담그고 금방 식을 물에 몸을 반만 담근 채, 더운 아래와 서늘한 윗 공기를 동시에 느끼며, 욕조에서 달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쓸데없이 생각해보았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선율이 콧노래처럼 나왔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의미 없이 반복되었다.   


        

♬ 밤하늘은 밤바다로 젖어들고 당신은 그 앞에 앉아

 밤- 마다 잠이 잘 오질 않아

 하- 품이 나오면서도

 늘- 뒤척였다.

 은- 은한 노래라도 들어보면 잠이 올까 하여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밤- 기차를 탄 적은 거의 없다.

 바- 스도 야간 운행 버스를 탄 적이 없다.

 다- 들 늦은 시각까지 놀 때

 로- 데오거리를 유튜브로 본다. 사실 유튜브로 보기에는


 젖- 절하지 않은 콘텐츠다. 야밤에 행인들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풍경은

 어- 디서든 쉽게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들- 리는 소음은

 고- 성의 주정과 욕을 섞어 싸우는 말.


 당- 연히 그런 콘텐츠보단

 신- 에 관해서라든지

 은- 바페에 관한 것이라든지


 그- 도 아니면


 앞- 치마를 두르고 요리할 메뉴에 관해서 찾는다.

 에- 매한 일상을 벗하며     


 앉- 았다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는 강한 믿음을 선택하지만,

 아- 침나절은 자꾸만 잃어버린 시간대로 남는다.     


     

♬ 김포한강신도시 호수공원의 고니

 김- 포한강신도시 호수공원에는

 고- 니가 차가운 수면 위로 고요히 떠있을 때가 있는지 없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은- 쟁반처럼 살얼음 언 수면 위로 잔잔히 미끄러지는 햇살이 머릿속에서 고요히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맑았습니다.    


      

♬ 아름답고오래도록 꿈꾸듯 아름답고

 고- 니 두

 마- 리는 어제 분명, 어느

 워- 먼의 마음속에 있었다.

 요- 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아- 주 먼 옛날의 농담은

 르- 르, 평온한 수면 위로 졸 듯이 미끄러지는 백조처럼 고요해지고

 제- 모습 그대로 단정하다.

 니- 는 여전히

 아- 름답고, 오래도록 꿈꾸듯 아름답고     


     

♬ 나의 고양이 너의 고양이어쨌든 고양이

 뾰- 루지가 이마에 났다. 아, 이건

 로- 맨틱하지 않잖아.

 퉁- 명스럽게 굴었지만,

 한- 가롭게 있을 때도 아니었다.


 고- 름이 발간 뾰루지 위로 노랗게 잡혔다.

 양- 피지에 톡 하고 노랗고 빨간

 이- 물질이 떨어지고


 사- 사로운 감정을 숨기고 전혀

 랑- 만적이지 않은

 스- 레빠처럼

 러- 저분한 느낌 그대로, 흰

 운- 동화에 튄 게 없는지 살핀다. 튄 게 있으면 비록


 고- 질고질해도 그럭저럭 닦아내곤, 어쨌든

 양- 호한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 질적인 것을 품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어서.     


     

♬ 눈사람을 만들던 날

 눈- 사람을

 이- 틀 동안 만들었다. 만든 뒤 부수고 다시 만든 뒤 부수었다. 그러고는 하나를 그냥 놓아두었다.    

 

 가- 장자리에 자리 잡은 눈사람은 마당과 집 모두를 차지한 채로 여유롭게 마당 가장자리에 서서 자기의 전 재산을 구경하는, 이를테면 창조주를 관망하는 진짜 주인 같았다.

 장- 독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오랜 관록마저 묻어난다. 겨우 세 시간밖에 안된 녀석의 눈빛 치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먼- 지를 책장에서 닦아내며, 검어진 물티슈를 보다가, 밖의 눈사람을 보았다.

 저- 눈사람, 언젠가 본 적이 있었을까? 문득 우리는 이미 만난 사이였고, 그걸 모른 채로, 아직 만나지도 못한 우리를 만난 사이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그를 쌓아올렸을 때, 비로소 우리의 운명을 완성하게 될 것이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붓- 다는 기억에서조차 아련할 만큼 먼 곳으로 밀려나 있고,

 는- 개가 어울리는 계절도 아니다.

 다- 미는 거실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졸린 표정으로 하품하며, 발바닥을 핥으며.         


 

♬ 나의 착한 고양이네가 예뻐하는 고양이

 사- 소한 일로

 랑- 랑하게 소리 높였더니

 니- 는 왜 만날 그러는데?

 를- 꼬투리나 잡을 줄 알고,     


 뽑- 삐가 그런다고 알아듣나?

 고- 양이 이름이었다.     


 나- 의 착한 고양이.

 니- 가 예뻐하는 고양이.


 반- 고양이. 오른쪽 눈과 왼쪽 눈 색깔이

 대- 른 고양이.

 쪽- 집게 과외 선생처럼, 맛있는 수제 간식만 쏙쏙


 이- 쑤시개처럼 발톱으로 골라내는 고양이.

 가- 르릉, 언제 그랬냐는 듯


 욱- 기고도 뻔뻔하게 그냥

 신- 난 고양이.

 거- 리를 바라보며

 리- 순간 길고양이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르는, 어쩌면 정확히 몰라도 되는, 나의

 고- 양이지만 네게는 조곤조곤 혼나주는 고양이. “안 돼” 고양이.        


  

♬ 오렌지동산엔 해바라기와 튤립이 있고 

 오- 뚜기 햇반을

 렌- 지에 2분 돌렸다.

 지- 에스25시에서 샀는데, 사실 예전엔 엘지25시였던 지에스25시에서 씨제이 햇반을 사려고 했는데 하필


 동- 이 났다고 했다. 포켓몬 빵도 아니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엔- 간해서는 밥을 먹어야 했다. 오뚜기를 집어든 여자는 

    

 해- 물탕을 해먹고 싶었지만 해물탕을 해먹기 귀찮아 해물탕 1인분 포장 제품을 샀다.

 바- 블 먹을 때는 얼큰한 국물이 들어와야 했고,

 라- 면 국물은 너무 자주 먹었다.

 기- 빨리는 일을 하고 난 뒤에는 밥 대신 간단한 요깃거리를 차려놓곤

 와- 인을 한 잔 하면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또는


 튤- 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란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놓고 눈에 걸린 문장을 중얼거리듯 읽어보곤 하였다.

 립- 술엔 와인 향이 묻어 있고

 이- 슬 맺힌 문장이     


 있- 지도 않은

 고- 리움에 젖어들게 했다. 마치 오래도록 사랑하였던 사람처럼.          



♬ 둥굴레찻잔과 프라이팬 

 침- 을 꼴깍 삼켰다.

 입- 맛을 다셨다.

 자- 랑할 것은 없지만

 가- 지무침은 잘했다. 가지무침은 밥상에 오를 일도 많지 않은 반찬. 편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안 먹을 수도 있었다.


 있- 는 반찬으로는 어쩐지 부족하다면서 장을 보다 우연히 눈에 띈 가지를 집었을 뿐이다.

 다- 들 그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집는 품목도 있지 않나?

 면- 종류는 그냥 버릇처럼 한두 개씩 집어 카트에 넣기 마련이고.


 둥- 근 해가 뜨면 우선 어제 쓴

 굴- (글)부터 살폈다.

 레- 디오를 틀고 특정하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

 찻- 잔에 커피를 따랐다.

 잔- 향이 오래 머무는 느낌이 좋았다. 

    

 내- 일은 내일하라고 있는 것이라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오전도 있기 마련이다.

 려- 유는 여백을 만들고 여백엔 아무것도 채우지 않을 때 비로소 여백이 되므로

 놓- 고 싶은 부담감을 잠시 머리 한 구석에

 고- 립시키곤, 그냥 느슨하게     


 프- 러졌다.

 라- 만 그런가?

 이- 도시에선 모두 바빠서, 심지어

 팬- 들조차 팬질하느라 바빠서

 을- 고 싶을 때마저 놓친다.        


  

♬ 우주적인 안녕

 우- 주적인 안녕, 이란 시집에는 해설이 실려 있지 않다. 해설을 읽지 않기에 해설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지만, 해설이 없으니, 해설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세상엔 상관없어도 되는 일이 흔하다. 흔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괜찮든 괜찮지 않든 우주는 팽창하고

 주- 님은 일하신다.

 적- 적한 어느 오후, 광대한 우주의 소음을 들을 수 없는 나의 하찮은 능력에 감사한다.

 인- 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것에 감사한다.    

 

 안- 죽고 살 수 있게 하는 모든 무관심에 감사한다.

 녕- 영 우주는 첫 사랑처럼 남아버린 이름이다. 광포한 속도로 팽창하면서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 같아서 안심한 채로, 때때로 밤하늘 별을 보며 놀라는,          



♬ 욕조에서 달까지 한없이 좋은

 기- 록을 위해

 계- 측을 했다.


 욕- 조에서 달까지는

 심- 원한 거리만큼이나 안락한 깊이가 있을 것 같아서

 은- 연 중 기다리던 거리였다.    

 

 어- 쩌면

 쩔- 대적인 아픔도 달빛에 젖어 무뎌지고


 수- 없이 되뇌던 후회의 순간도 애초에


 없- 었던 것처럼 멀어지니

 나- 는 듯이 걷는 사람은     


 봐- 보처럼 즐겁게 웃을 것이므로, 그 길 한없이 좋아라.





- 하재연, <우주적인 안녕>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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