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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25. 2023

방에 있다(1)

삼행시 콜라주

[목차: 방에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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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5


[소개글]
- 개인적으로는 삼행시 콜라주라고 부릅니다. 이미지를 콜라주할 수도 있듯이(즐겨 쓰는 놀이글의 한 유형), 우연히 잡힌 문구를 운자로 삼아 삼행시를 즉흥적으로 꾸준히 쓰고, 그 삼행시를 모아서 이야기를 뽑아냅니다. 그걸 번호글이라 부르는 지점에 배치합니다. 원래는 삼행시를 모으다 보니 기준이 모호해서, 선명하게 분류화하려는 목적으로 번호글을 배치하였습니다.
- 번호글을 읽으면서 아래 배치된 삼행시의 어떤 표현이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다만 가독성이 별로 좋지 않다고 여겨서, 최종본 형태로는 보류했고, 놀이글 스타일을 번호글에만 적용해서 재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를 쓰게 되었죠. 원래는 삼행시 콜라주였지만, 놀이글을 적용한 그림 소설이 된 것이죠.

- <방에 있다>는 삼행시 콜라주로만 남겨두었고요. 현재 삼행시 콜라주는 새로운 아이디어 착상과 표현을 끌어다 쓰는 마중물 기능을 합니다. 즉 운자, 삼행시, 삼행시 모음, 삼행시로부터 번호글 추출 등등 구체적인 착상과 단계별 진척을 거쳐 글을 만들어가는 빌드업 과정에 주로 활용합니다. 

- 청춘의 시절이 희망으로 가득하기만 한 건 아니다. 모든 순간에는 미련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처럼 함께한 습관도 있기 마련이고.



[1]

습관이란 잠시 잊었다 보면, 조용히 있는 먼지 같은 것. 그리움의 습관도 그랬다. 차라리 라디오 전파처럼 세월 따라 바래지다 귀를 긁는 잡음이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잡음조차 라디오 디제이 목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습관이 생겼고, 모든 순간은 따로 있는 듯 같이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생각하면 아파서 병원에 오래 있어야 했던 그녀가 습관처럼 떠올랐다. 영원히 청춘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은유. 사랑해서 그리운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너무도 그리워 한다는 것을 토대로 진실하게 사랑했던 것으로 짐작하는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사랑은 본질이라기보단 은유가 아니었을까? 진짜 본질은 그리움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나는 그녀를 온전히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자유를 생각할 만큼 성장했었고, 책임을 피하고 싶을 만큼 어렸었다. 

완벽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늘 미련이 생겼다. 미련은 미련을 낳고 기어이 지독한 미련을 낳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있을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내세에선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관한 간절한 방향성만으로는 어떤 그리움이 속한 부재의 영역이 온전히 충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충만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을 오롯이 느낀다는 의미일지, 나로부터 떨어져 해방되는 기분일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순 없어도 아침에 창문을 열고 흩어지는 먼지가 보일 때, 우연히 보고 있던 키에슬롭스키의 <블루>가 오래도록 맑은 햇살 사이로 부옇게 잠깐 일었던 먼지와 함께 기억되었다. 그때 예술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순간 치고는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스무 살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습관

 방- 에는 먼지가 있다.

 부- 러 들여놓은 것도 아닌데

 터- 부로 여겼던 것도 같은데    

 

 치- 우고 치워도 잠시 잊었다 보면, 조용히 있다.

 우- 째 넌 또 있구나. 눈처럼 살포시.

 라- 디오의 익숙한 목소리 곁을 지키는 충직한 잡음처럼.   


      

♬ 바래지는 라디오 전파의 잡음이 되기를

 원- 하옵건대

 하- 찮은 그리움이

 고- 물로 남아 기필코     


 바- 래지는

 라- 디오 전파의 잡음이 되기를.

 고- 고 고 어느 시간인지 모를 어느 장소에서 들려오는 먼 소리, 쏟아지는 비들     


 기- 가 날아오른다.

 도- 시락을 먹던 사람들 화들짝 놀라, 급한 김에 우산을 펴고는 벤치에 펼쳐놓았던 짐을 챙긴다.

 합- 주가 시작되고

 니- 가 들고 있던 작은 휴대용 라디오에선

 다- 들 잊고 있던 선율이 흘러나오고.          



♬ 사랑이 은유처럼

 은- 유는

 하- 찮다, 란 단어를 좋아했다. 편찮다, 란 단어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철- 분이 뒤섞였는데, 좀 많이 섞였던 것일까? 어쩌면 철조각일 수도 있었다.

 도- 려내는 듯한 아픔이 문득 느껴지면,

 의- 료진에게 기대지 않고, 조용히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서


 밤- 새도록 누워서 함께 울고 싶어진다고 했다. 사랑이 은유처럼 편찮았다.
      


♬ 지독한 미련지긋한 신앙 그리고 집요한 응집력

 먼- 저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 믿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죽어보니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먼지처럼 흩날린 것이겠지만,

 지- 독한 미련으로, 지긋한 신앙으로 우리는 지긋지긋할 수도 있을 삶을 그럭저럭 산다. 미련은 그리움을 낳고, 신앙은 당신이 먼저 간 ‘지금보단 조금 나은 어떤’ 세상을 상상하게 해준다.

 가- 련하고 그리운 사람!


 보- 고 싶은 사람,

 이- 생에선 만난 적 없는 사람, 수없이 만난 사람

 는- 누군가의 질시였고 누군가의 사랑이었으며 누군가의 증오였다.     


 아- 직도 가끔 생각나는 건 스무 살 어느 아침, 예술영화를 보겠다며 키에슬롭스키의 <블루>를 틀어놓고 눈물을 흘릴 때였다. 그때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청소해야 한다며 창문을 열었는데, 커튼 사이로 피어오르는 먼지를 보았다. 활기찬 먼지였다. 빛에 반짝이는 그리운 때였다. 난 그런 때로 이루어졌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때를 벗겨내면 난 언젠가 다 떨어져버린 몸의 노폐물들로 이루어진 집요한 응집력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게 물에 다 풀리고 겨우 말라서 풀풀 날리면, 그때 조금은 알고 싶었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침- 침한 눈을 바로 떠보지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건 당연하다.      





-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제목 인용

- 김소연, <먼지가 보이는 아침>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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