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종훈은 우주의 고향으로 초대받는다. 그래봤자 아파트 놀이터일 뿐이지만. 그곳 미끄럼틀에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주의 고민을 살짝 알게 되고, 우연히 놀이터를 배회하는 아줌마도 알게 된다. 그 사이의 관계를 모르고, 그저 처지가 안 된 아줌마를 불쌍히 여기는데... 그때 그 순간에는 그저 헤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으로만 기억할 뿐, 시간이 흘러 곱씹게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 고향
나는 우주가 건네준 봉지를 들고 모퉁이를 돌았다. 버스정류장엔 아무도 없었다. 놀이터도 텅 비어 있었다. 우주는 놀이터로 나를 이끌었다. 가로등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 오늘 한가했을 놀이터의 모래를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바람이 미세하지만 분명 부드럽게 밀려왔다. 오랜만에 느낀 바람이었다. 놀이터 주변 보도블록에서는 낮과 달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끓어오르던 대기의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금방에라도 바짝 타 들어갈 듯하던 사람과 아파트들이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식지 않은 열기를 잊게 해주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철봉과 미끄럼틀은 아직 미지근했다. 여전히 겨드랑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우주는 멀쩡한지 재빨리 미끄럼틀로 오르는 계단난간을 붙들고는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미끄럼틀 위에서 내려다보는 놀이터 모래는 잔잔했다, 파도 없이.
“여기가 고향이야.”
“고향?”
“전에 말했잖아. 고향. 가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그 고향.”
“그런데 여기 경비원 아저씨한테 눈에 잘 띌 것 같은데.”
“걸리면 다른 고향으로 가면 돼지, 뭐.”
“다른 고향도 있어?”
“제1고향, 제2고향까지. 여기는 원조고향이고. 기회가 되면 다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기야 봐서 뭐하냐? 아지트만 들키는 거지.”
고향이 뭔지도 모르고, 알 수 있어도 모르고 싶은데, 우주는 제멋대로 털어놓고, 이번엔 괜히 털어놓은 듯이 중얼거렸다.
우주의 고향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들이 오면 그들에게 눈치가 보여 심정적으로 쫓겨나게 되는 장소지만 이 더운 밤에 놀이터에 나와 있는 사람은 나와 우주밖에 없었다. 놀이터는 차도와 가까웠지만 나무로 가려져 도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단지 간간이 지나가는 차 소리와 주변의 매미 소리가 들렸는데, 그 정도면 꽤 아늑한 분위기라고 할 만했다.
물론 매미 소리만 뺀다면 더 아늑하겠지만, 여름에 매미 소리를 빼버리는 것도 너무 매정한 처사인 듯하다. 밖에서 지나면서 놀이터를 볼 때와 안에서 길을 바라볼 때 그 느낌이 달랐다.
나는 봉지에서 맥주와 안주를 꺼냈다. 우선 오징어구이의 포장을 뜯어내고 새우깡 봉지도 뜯었다. 캔 맥주의 시원한 기운이 손에 전달됐다. 우주는 봉지를 살짝 들추더니 말했다.
“자갈치, 고래밥, 오징어땅콩. 으이그. 꼭 너 같은 거만 골랐다.”
“우주인, 그 말 무슨 뜻이야?”
기분이 묘하게 불쾌해 따져 물었다.
“아니야. 농담이야. 농담.”
우주는 살짝 웃으며,
“한잔하자.”
캔 맥주를 땄다. 내 것도. 우주의 임기응변에 슬쩍 놀아나주며 나는 맥주를 받아 그녀와 건배했다.
“서로 연락 자주 하자.”
맥주는 과연 시원했다. 시원한 느낌을 뺀다면 쓴맛이었지만 참고 먹을 만했다.
“이런 거 뭐 맛있다고 어른들은 밤낮 먹지?”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대는데 우주는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가방을 뒤졌다. 그러더니 대어를 낚은 듯 멈칫했다. 드디어 말보르 레드를 끌어올린다.
“그래, 참 오래 참았다. 사장형한테 담배냄새 들킬까 봐 극기했는데, 얼른 피워야지.”
“시 꺼.”
나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일격에 격퇴한 우주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게 담배를 빨았다. 연기는 우주의 날숨과 함께 공중으로 천천히 흩날렸다. 우주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제야 살았다는 안도감. 그렇게 두 번을 반복해서 연기를 빨고 내뱉더니 안정이 되었는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넌 담배랑 술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급하게 배웠니?”
“술은 솔직히 나도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담배는 꽤 매력적이야.”
“담배가?”
“응, 담배가.”
“말도 안 돼. 어떻게 담배가.”
“진짜, 진짜, 매력적이라니까.”
“어떻게?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러니까 말하자면, 담배는 열정적인 사람 같아. 불을 붙이면 존재가 불꽃의 정열로 타올라. 빠르든 느리든 일단 담배에 불을 붙이면 피우지 않아도 불꽃이 필터를 향해 달려가지. 살기 위해 죽고 죽기 위해 사는 고독한 장수 같은 거지. 그리고 내 손가락의 의지에 따라 불똥은 장렬히 전사하는 거야. 지독히 뜨거운 불꽃이 반짝 타오르고 나면 짧은 삶의 흔적으로 진한 연기가 남아. 슬프지만 매력적이지 않니?”
“그게 무슨?”
“왜 매력적이잖아?”
우주는 달변 체제를 가동하려는 듯 자세를 다잡았고 눈빛을 내게 집중했다. 아,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말을 비틀어야 했다. 괜히 꿈틀해보고 싶은 지렁이의 심정. 하지만 시간 낭비는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래, 매력적이야. 매력적. 그래도 어차피 죽는 거잖아. 죽으면 다 소용없는 거라고.”
결국 꿈틀댔다.
“아, 글쎄, 그렇다고 담배의 생명이 꺼지는 게 끝이 아니야.”
“그럼 뭐야?”
“담배냄새가 남아. 진한 연기는 냄새를 남겨. 처음엔 향수나 구강청정제, 초콜릿으로 지우고 다녔어. 엄마한테 들키면 큰일 나잖아. 그런데 어느 날엔가 담배를 피우고 공부하려다가 우연히 손가락 사이에 코를 들이밀었는데, 보통 때랑은 참기 어려울 만큼 속이 울렁거리더라. 진짜 토할 뻔했다니까. 헛구역질하고 장난이 아니었지. 그날은 이상하게 비누로 손을 여러 번 씻어도, 구강청정제로 입을 헹구고 초콜릿을 먹고 향수를 뿌려대도 소용이 없었어. 손가락 사이에, 입에, 몸에 숨은 냄새가 빠지질 않더라고. 꼬리 머리를 숨기고 꼭 웅크려서 제대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 같았어. 맞아…… 꼭 그런 느낌이었어. 난 잡으려고 열라 노력하고 말이야.”
“엄마한테 들켰겠네?”
“아니, 안 들켰어. 유심히 오랫동안 느끼지 않으면 맡을 수 없어.”
“그게 어떻게 냄새나는 거냐?”
이때 우주의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우주는 가방을 열어 삐삐를 확인하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야. 난 선명하게 맡을 수 있어. 남들은 못 맡지만. 사실 그 날 전에는 나도 몰랐는데, 냄새가 숨바꼭질한다는 걸 느끼고는 다음부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더라고. 신기하지?”
“응. 근데 그럼 냄새가 계속 안 없어지는 거니?”
“응. 담배 피운 개수만큼 내 몸엔 냄새가 숨어 사는 거야.”
“좀 지저분하다.”
“죽는다. 넌 못 맡는다니까.”
“어디 봐.”
우주는 약이 올랐는지 어깨를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우주에게선 향기가 났다. 담배냄새는 손에 낀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것이었다. 나는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으며 물러서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건 무효라며 나중에 보여주겠노라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곧 말을 이었다.
“어휴, 난 절대 담배 피우지 말아야겠다. 냄새에 치여서 살긴 싫거든. 너도 그만 피워.”
우주는 빙그레 웃으며 담배를 미끄럼틀 밖으로 던졌다. 나는 잠시 담배의 궤적을 좇았다. 놀이터에 마련된 의자에 어느새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얼마 피우지도 않잖아.”
“그래도 냄새가 쌓인다며? 그 많은 불법 체류자를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우주의 말에 답하면서, 의자에 앉은 여인의 시선이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앞을 바라보는 것인지 생각에 잠겨있는 것인지 모호했다.
“맡지 않으면 되지. 오래된 냄새는 맡으려고만 안 하면 지들끼리 숨어서 행복하게 살아. 단지 맡으려고 하다 보면, 벌레같이 기분 나쁘게 생긴 모습으로 우글거리면서 숨어다니는 거야. 냄새를 지우려고 노력하면 엄청나게 진해지고, 더 커져. 차라리 맡는 걸 포기하는 게 낫지.”
매미 소리가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울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자극적으로 들렸다. 벌레가 사방에 숨어서 나와 우주를 노리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맡지 않으려 한다고 안 맡아지냐? 그러지 말고 인제 그만 피워. 그러면 좀 덜할 거야. 응?”
우주는 다시 웃으며 주먹으로 내 어깨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그렇지. 괜히 맡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하나만 더 쌓일 수도 있지. 냄새 위에.”
우주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 넌 역시 좋은 충고쟁이야. 근데 어쩌냐? 이제 금단현상이 나타나거나 끊기를 포기할 때, 아니면 다시 금연을 각오할 때 네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이야, 그럼 이제 나도 멋지고 사려 깊은 사람이란 말이지?”
나는 경박하게 껄껄거리며 다소 진지해진 우주를 배려했다.
다시 우주의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우주는 가방을 열어 삐삐를 확인하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엄마니?”
“응.”
“근데 왜 연락 안 하니?”
“그냥.”
“그냥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오늘 엄마 보기로 한 날인데 그냥 안 봤어. 가끔 엄마를 보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나고 답답해.”
“응?”
“그냥 그렇다고.”
우주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에 물고는 뱉지 않았다.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분명 그녀와 그녀의 엄마 혹은 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지만 가족 일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묻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닌 듯했다.
이때 색다른 중얼거림이 들렸다. 여인은 혼잣말처럼, 하지만 주변 사람이 듣기 싫어도 뚜렷이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중얼댔다.
“연세대, 연세대 앞에서 우리 아들이 죽었어. 독재정권이 내 아들을 죽였어.”
그 소리는 서글프게 들렸다. 떨리는 소리는 조용히 놀이터 전체에 가득 찼다. 가로등의 조명이 여인의 얼굴을 더욱 슬프게 비추는 것 같았다.
“히틀러, 히틀러, 이 나쁜 녀석아. 우리 아들을 죽이고 매일매일 우리 아들을 고문해. 야, 이 천벌을 받은 놈들아. 우리 아들 위해서라도 다 까발리고 다닐 거야.”
순간 진지함이 깨지는 듯했다. 실소가 나올 뻔했다.
“미친 아줌마야. 이 놀이터에 가끔 나타나.”
“아, 어쩐지.”
“얼마 전에 쫓겨난 후로는 한동안 안 나타나더니 또 나타났네.”
우주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인을 바라봤다.
“히틀러가 일본에 원폭 투하했을 때…….”
우주가 중얼거렸다.
“히틀러가 일본에 원폭 투하했을 때 우리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놈들이 알아?”
우주의 말을 받은 것처럼 여인이 중얼거렸다.
“하느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우주가 다시 중얼거렸다.
“하느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여인이 중얼거렸다.
“부처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우주가 받았다.
“부처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여인이 되받았다.
“봤지? 대사도 변하지 않아. 이건 1막이야. 1막.”
“여기서 우리 아들이 죽었어. 우리 아들 성현이는 정치깡패가 아니야. 후레자식들! 이건 모함이라고. (어쩌고저쩌고.)”
여인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가로등 근처 한 곳을 응시했다. 중얼거리는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입 모양이나 간간이 커진 파편 같은 소리로만 여인이 아직도 웅얼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여인은 응시하던 곳에서 시선을 한참 떼지 않았지만 그곳으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이게 2막인데 가끔 저러고 있는 거 보면 무서워.”
“진짤까?”
“뭐가?”
“지금 말한 거 진짤까? 진짜면 너무 불쌍하잖아.”
“모르지. 히틀러, 일본 이런 거야 짜깁기지만 독재정권 때 데모하다가 피해입은 학생 부모일 수도.”
“그럴까?”
“물론 아닐 수도 있지.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가지고 저러는 걸 수도. TV에서 본 걸 수도 있고.”
우주와 나는 놀이터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여인을 지켜봤다. 여인은 이내 아무 소리도 없이 한 곳만을 응시하다가 다시 조용히 앉더니, 옆에 놓인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서 먹었다. 크래커 종류였다.
“오늘은 경비원 아저씨가 안 오네. 아줌마 들어오는 거 못 봤나 보다.”
“들키면 쫓겨나니?”
“전에 비명 지르고 발작하듯이 뒹군 적이 있었는데, 어린아이 키우는 아줌마들이 난리를 쳤어. 앞으로 저 아줌마 들여놓지 말라고. 그래서 아마 경비원 아저씨한테 들키면 쫓겨날 거야. 보통 때는 그냥 조용히 있는데.”
“불쌍하다.”
“응?”
“불쌍하다고. 저 아줌마.”
“그래, 어쨌든 저렇게 된 건 불쌍한 일이야.”
우주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 꿈, 그러니까 진짜 잘 때 꾸는 꿈 말이야.”
“응, 꿈. 왜?”
“자주 꾸는 꿈 있니? 아니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 같은 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있어. 특히 저 아줌마를 보고 있으면 예전에 겪었던 경험이 생생해져.”
“꿈에서?”
우주는 벌써 하나를 다 마셨는지 캔을 우그러뜨리고 새 캔을 땄다.
“꿈에서든, 떠오르는 기억에서든. 얼마 전에 아줌마가 쫓겨나는 장면은 너무 흡사해서 꿈까지 꿨어.”
“흡사하다니? 뭐랑?”
“초등학교 5학년 때 봤던 어떤 아줌마.”
“어떤 아줌마?”
“응,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오래 울던 아줌마. 아주 서글프게 울면서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놓질 않는 거야. 아니다. 처음에는 아빠 앞에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빌듯이 외치다가 아버지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까 나를 붙잡고 늘어지더라고. 아버지가 완력으로 밀쳤는데,”
“완력? 손힘?”
“그래. 손힘, 혹은 주먹심, 팔심 정도.”
나는 첫 캔의 마지막 모금을 마시고, 캔을 우그러뜨리고는 새 캔을 땄다.
“힘없이 나동그라지더라. 흐느끼면서 커졌다가 작아지는 불규칙한 크기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반복하는 거야, 서글프게. 그걸 보고 난 울었어.”
“불쌍해서?”
“아니, 무서워서.”
“무서워서?”
“응, 무서워서.”
맥주를 들이켜고는 오징어 씹으며, 왜 우주는 그때 무서워했을까 궁금했다. 이런 건 물어봐도 될 거라고 판단하고 물어보려는 순간, 내게서 오징어 한 조각을 건네받은 우주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서웠어. 그런데 또 이유를 모른 채 얼마 전에 무서웠어. 바보 같은 엄마가 집을 나갈 때도, 저 아줌마가 놀이터에서 쫓겨날 때도.”
나는 언뜻 세 사건이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우주의 기분이 무거워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화제를 돌리는 편이 나았다.
나는 오징어를 씹으며, 과자를 먹으며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여전히 무엇을 바라본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시선으로 산만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여인도 우리가 앉은 미끄럼틀을 바라보았고 잠시 우주와 나를 응시했다. 나는 움찔해서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여인은 벌써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미끄럼틀 바로 아래까지 걸어온 여인은 우주에게 고등학생이 말하는 투로 말을 건넸다.
“물 좀 줘.”
“맥주밖에 없는데.”
우주도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한테 말하는 식으로 답했다.
“목말라. 물 좀 줘.”
“할 수 없지. 맥주라도 마셔.”
우주는 자신이 마시던 캔을 건네주고는 세 번째 캔을 땄다. 여인은 맥주를 받아 들고 홀짝거리며 걸어가 의자에 다시 앉더니 다시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과자를 집어 먹으며 다시 혼잣말을 쏟아냈다. 과자가 입가에서 날벌레처럼 튀었다.
“연세대, 연세대 앞에서 우리 아들이 죽었어. 독재정권이 내 아들을 죽였어.”
“히틀러가 일본에 원폭 투하했을 때……”
우주가 중얼거렸다.
“히틀러가 일본에 원폭 투하했을 때 우리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놈들이 알아?”
우주의 말을 받은 것처럼 여인이 중얼거렸다.
“하느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우주와 내가 동시에 중얼거렸다.
“하느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여인이 중얼거렸다.
“부처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우주와 내가 여인의 말을 받았다.
“부처님이 천벌을 내릴 거야.”
여인이 되받았다.
“여기서 우리 아들이 죽었어. 우리 아들 정한이는 정치깡패가 아니야. 후레자식들! 이건 모함이라고. (어쩌고저쩌고).”
맥주를 홀짝거리는 나와 우주가 얼굴이 살짝 발그레했다. 날씨가 더워 땀이 몸에서 엉겼지만 나쁘지 않았다. 우주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맥주를 마시며 아줌마를 지켜보았다. 나도 말없이 여인을 지켜보았다. 과자 부스러기가 튀는 게 밝은 빛을 타고 간간이 보였다. 여인은 아랑곳없이 눈을 치켜뜨고 입을 크게 벌리며 훈계하듯 중얼댔다. 그리고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길가에서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갔다. 나뭇잎 사이로, 놀이터 입구로 그들의 기운이 바람이 되어 날아오는 듯했다. 미세한 바람으로 날아와 내 몸을 살짝 간질였다.
나는 시계를 봤다. 11시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다를 떨다가 여인을 관찰하고는 잠시 조용하게 있었을 뿐인데 벌써 놀이터에 있은 지 한 시간을 넘겼다.
“우주야, 11시 40분이다. 이제 그만 가자.”
내가 과자를 처리하는 사이 우주는 내가 먹지 않은 캔 하나까지 깨끗하게 마셨다.
“그래, 가자. 그나저나 너 과자 진짜 잘 먹는다.”
“넌 진짜 술 잘 마신다. 배부르지도 않냐?”
“세 캔이나 마신 거냐?”
우주는 구멍가게에서 샀던 츄파춥스 하나를 나에게 내밀고는 자신의 입에도 하나를 꽂았다.
“네 캔이잖아?”
“한 캔은 아줌마 줬잖아.”
여인은 말하기 지쳤는지 10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봉지에 쓰레기를 담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뭐하니?”
“뭐가?”
우주가 쓰레기통에 봉지를 버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가렵니? 왜 자꾸 긁어?”
“응? 아! 이거. 나 요새 땀띠가 있어서 그런가 봐. 밤만 되면 그러네.”
그러고 보니 간지러운 바람을 느낄 때부터 나도 모르게 몸을 긁었던 것 같다.
“긁지 마, 술 마셔서 더 그런가 보다. 그래도 긁지 마. 긁으면 덧나.”
“알았어.”
나는 우주 말대로 긁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얘기 도중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그때마다 우주는 내 손을 잡으며 제지했다.
“고비만 넘기면 가렵지 않아. 그러니 좀 참아.”
“그러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니?”
“그냥. 우주 백과사전에서.”
우주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하기야 그녀는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기에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너 집으로 갈 거니?”
우주가 사탕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응, 너는? 집에 안 가?”
“긁지 마라니까.”
우주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독서실 가려고. 좀 자고 2시에 봉고 타고 갈 거야.”
“그렇구나. 그래, 그럼.”
나는 긁지 않으려고 신경을 바짝 세우며 우주에게 인사하려 했다.
“치사! 난 환송회까지 했는데 아녀자를 이 위험한 길에 버려둘 거야?”
“아녀자?’
우주와 어울리기 거부한 단어지만, 여하튼,
“알았어, 알았다고. 데려다 줄게.”
사탕을 오물거리며 나도 순순히 우주의 요청에 응했다. 사탕은 처음에 버터 비슷한 맛이 났지만 서서히 초코맛이 드러났다. 우주는 또 내 손을 제지했다.
“고마워. 초코맛 맛있네.”
나는 낮에 왔던 길을 우주와 함께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 요즘 담배냄새 뺄 때 애용하는 거야. 그다음은 구강청정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수. 완벽하지?”
“그럴 거면 안 피우고 말지. 귀찮아서 어떻게 피우냐?”
“그건 그렇고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다. 아쉽다.”
나무의 행렬은 아파트 단지를 두르며 이어졌다. 나무가 드물어지거나 사라지면 동네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이 나무들도, 나무속에 잠복한 게릴라 매미들도, 우주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이 모든 게 아쉬웠다. 우주와 나는 서서히 오르막에 가까워졌다. 고개를 넘으면 독서실이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말은 평소보다 적었고 주변은 어둡고 조용했다. 나는 우주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입안에서 사탕 굴리던 동작을 멈추었고 사탕 막대는 입술선과 반듯한 수직이 되었다. 막대안테나는 독서실까지의 거리를 감지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시간.
우주는 사탕을 오물거리면서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주는 슬며시 팔짱을 끼었다. 나는 우주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분명 우주의 얼굴엔 지중해가 들어찼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나는 잠시 당황했다. 정점에 다다르면 상가건물에서 밝은 빛이 쏟아질 것이었다. 짧은 순간에 규정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기를 반복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해야 한다는 욕구와 책임감이 뒤섞인 채 내 몸을 뒤흔들었다. 사탕을 오물거렸다. 우주도 오물거렸다. 느끼함 뒤에 다가온 초코 맛은 향긋했고 그 느낌을 우주와 내가 한 곳, 한순간에 공유한 것이었다. 나는 이 엄청난, 적어도 나에겐 엄청난 듯한 발견을 고백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엄, 청, 난, 발, 견, 을.’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음절은 기침과 섞여 단단하게 뭉치지 못하게 풀려 나왔다.
“사탕해!”
‘사탕해?’라니! 순간 뜨악해졌다.
우주는 예상 밖의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렸다. 자꾸만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우리는 오르막의 정점에 이르렀다. 상가 쪽은 밝은 편이었고 아파트 쪽은 어두운 편이었다. 우주와 나는 그 정점에 멈추어 섰다.
‘혼자 너무 격했나?’
나는 그만 부끄러워졌다.
“넌 참 좋은 친구야. 나중에 인연이 닿아서 다시 만나면,”
‘다시 만나면?’
나는 생각했다.
“더 좋은 친구 되자.”
우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만 허탈해서 웃음을 머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좀 무안했을 뿐이다. 우주는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 그만 헤어지자. 이사 잘하고 생활 열심히 하고. 나중에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종훈아.”
“그래, 그러자.”
우리는 사탕을 오물거리며 각자의 막대를 삐죽 내민 채 악수했다.
“앗싸! 냄새 묻혔다.”
우주가 갑자기 외치듯 말하며 뒷걸음질치며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엥? 무슨 냄새?”
“담배냄새. 너도 이 냄새에서 이제 자유로울 순 없을 거다.”
우주는 나에게 있는 힘껏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연락 자주 해.”
“응.”
나도 쾌활하게 맞받아쳤다. 우주는 등을 돌려 뛰듯이 내려가더니 곧 독서실이 있는 상가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입안에서 잠시 후 사라질 달콤한 사탕처럼.
나도 뒤돌아 걸으면서 등줄기가 오싹했다.
‘왜 그런 느닷없는 말이 나왔지?’
♬ 귀가
어이가 없었지만 잘 넘겼으니 상관은 없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하지만 ‘진심이야, 널 진심으로 사탕해.’라고 강수를 띄워 오히려 웃게 하는 임기응변을 구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담을 필요조차 없게 된 물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한적했지만 가로등의 쏟아지는 빛은 무더위를 더 무겁게 했다. 매미는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긴 울음을 쉬지 않고 뱉었다. 우리 집이 꽂혀있는 아파트까지 다다르기 위해 길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수많은 아파트를 지나는 동안 매미의 울음은 가로수를 따라 둔중하게 울렸다. 그건 마치 마티 프리드먼의 그렁대는 기타울림 같았다. 무겁게 내려앉다 다시 날카롭게 쏘아대는 울음이 가로등 빛을 타고 사방을 넘나들었다. 마치 내일이면 피를 토하고 죽으리라 다짐한 듯 연주하는 메가데스처럼 매미는 혼신을 다해 울음을 쏟아내는 듯했다. 나는 가방에 꽂아둔 메가데스 CD를 생각했다.
‘근데 CD를 챙겼나?’
갑자기 버거킹에서 음악을 들은 후에 CD를 곽에 넣었는지 헷갈렸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 뭐.’
생각만 해도 무더운 음악이었고 무더운 날씨였다. 놀이터를 지나면서 여인을 찾았지만 여인은 없었다. 의자에는 과자봉지와 맥주 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혹여 누군가 여인이 어질러 놓고 가는 걸 알고 난리 치면 여인만 불쌍해질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결국 놀이터로 가 과자봉지와 맥주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느새 우주 말대로 가려움증이 가라앉은 걸.
나는 다시 걸었다. 집 근처에 가까워지자 우주네 동이 보였다. 휴식터 중간에 설치된 정자 옆 느티나무에 가로등 불빛이 무너지고 있었다. 매미의 울음도 불빛에 교란돼 낮인 양 무덥게 쏟아져 내렸다. 나무든, 빛이든, 소리든 주변 모든 것이 우주네를 볼 가능성을 완강하게 차단했다. 나는 우주가 없는 우주네를 포기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과연 하늘 위에 우주가 있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