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사랑의 흔적들

원피스 & 콜라주 with ChatGPT-10%

by 희원이
※ 세부 구상안을 토대로 ChatGPT를 활용하여 연출하였습니다.
[원피스]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의 버릇
[원피스]신발과 양말
[원피스]현관에서부터 보이는 아버지의 신발
[원피스]빈센트의 풍경
[원피스]피곤에 절은 빈센트와 마중 나온 너
[원피스]옷과 신발을 오래 곁에 두다 보니
[원피스]조금 큰 신발을 끈으로 꽉 조이고





#1

어릴 적 그의 기억 속에는 늘 아버지의 신발이 현관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도박장에서 돌아오거나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올 때면, 현관에 무심히 놓인 아버지의 신발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신발은 언제나 폭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아버지의 신발이 보이는 순간, 집 안은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였고, 남자는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노름과 술로 집안을 망쳐놓곤 했다. 남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엄마를 힘들게 할 때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한 번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사라질 때까지 숨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맞서 싸우다 마당에 내팽개쳐지던 날, 남자는 침대 밑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버지의 분노가 휘몰아치는 그 순간, 어머니는 울면서도 남자를 안아주며 "괜찮아"라고 억지로 웃어주었다. 그날의 잔상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으므로,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도 엇비슷한 줄 알았다. 술상을 차려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엄마가 무어라 한마디를 하였는데, 갑자기 격노한 아버지가 엄마가 몸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엄마는 힘겹게 뭐라고 소리치려다가 불발된 목소리처럼 잦아들었다. 곧이어 형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한 겹 두꺼운 장벽에 가로막힌 듯했다. 그것은 소파 쿠션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두 소리가 잦아들자 빈센트는 극도로 공포에 휩싸여선 본능적으로 입을 막고는 거실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낮은 데서부터 위를 보아야 하는 시점이었다.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제한된 틀 안에서 의자가 하나 보였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모든 것을 상심한 듯 흐느껴 울었다. 그러면서 “영식아! 영식아 이 놈, 어디 있니?”라고 되뇌었다.

그러더니 울음이 잦아들었고, 더는 남자를 찾지 않았다. 몇 분쯤 뒤였을까, 그는 천장 쪽에 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위쪽을 향해 발꿈치를 들었다.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듯하더니, 튼튼하다 싶었는지 허리띠를 풀고는 둥글게 만들더니 허리띠를 위로 올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남자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웠다. 눈을 감고 있을 때 와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처음으로 아래쪽 광경이 눈에 보였는데, 의자는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신발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끼익끼익 하며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에 맞춰 꺼졌던 불이 자동센서 감지 때문인지 자꾸만 다시 켜졌다. 노란 불빛이 깜빡였고 어둠으로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모든 게 툭 하고 빠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2

남자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절대 폭력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 그런 다짐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족을 돌보고자 했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늘 가족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옷과 신발에 돈을 쓰는 것은 늘 뒷전이었다. 몇 년 동안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고, 낡아 빠진 옷 몇 벌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의 삶은 늘 그렇게 소박하고 검소했다. 자신을 꾸미는 것보다는 현실을 버티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도 가끔은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친구가 좋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했을 때, 남자는 처음에는 주저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고, 낡아빠진 신발과 옷을 보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결국 그는 결심하고 나갔다. 그녀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술에 취해버렸고, 어쩔 수 없이 그녀 집까지 바래다주어야 했다. 그녀는 유학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었는지, 집에 들어가면서도 신발을 신은 채 침대에 누워버렸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당황했지만, 그녀의 신발을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상황을 복기하고는 그의 행동을 어색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 뒤로 그녀와 남자는 자주 만났다.

남자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그에게 다가왔고, 그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마다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의 만남 속에서 그는 오래된 상처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순간에도 가끔씩 과거의 어두운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그녀는 그의 그런 모습을 눈치 챈 것인지 이해하는 것인지, 별다른 것을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의 곁에 있었다. 그건 어쩌면 그녀의 성격이자 버릇인지도 몰랐다. 말하기 전까지는 알려 하지 않지만, 들을 준비는 되어 있다는 표정을 짓는 것.



#3

어느 날 그녀가 많이 아팠다. 전날 저녁부터 연락이 없어 걱정하던 남자는 아침에 그녀의 집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리되지 않은 거실과 환기가 안 된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방으로 들어가니, 그녀는 겨우 눈을 뜨며 남자를 알아봤다.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일어서려 했지만,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탁자에는 약국에서 지어온 약봉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마시다 만 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병원부터 가자.”

남자는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열이 너무 올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그녀를 들쳐 업고 현관으로 나섰다. 신발을 신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옆에 놓인 슬리퍼를 급히 신었다. 그는 그녀를 업고 가까운 병원까지 걸어갔고, 병원에 도착할 때쯤 온몸이 땀과 피로로 축축해졌다. 그녀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링거를 맞으며 안정을 취했다.

그동안 남자는 그녀를 위해 죽이라도 사다 데워 주려고 근처 슈퍼마켓에 들렀다. 진열된 죽을 고르려던 순간, 그제야 자신의 슬리퍼 사이로 빼꼼 내민 양말의 발가락 끝자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그는 머쓱해졌고, 슬그머니 발가락을 구멍에서 빼내어 양말 아래로 밀어 넣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남자가 머쓱해하며 그녀에게 죽을 내밀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 발가락. 신발 때문에 미처 몰랐구나."

그녀의 가벼운 농담에 남자는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색한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해 작은 위로를 건네며 그 상황을 넘어섰다. 힘든 날들 속에서도, 그런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그들에게는 소중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4

남자는 그녀와 함께하며, 동거를 시작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적어도 그에게는 서로의 트라우마와 함께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그의 아픔을 이해했고, 그의 과거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그의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한, 남자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고, 건실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맞춰준 약간 큰 신발처럼, 그는 조금씩 자신을 조정하고 삶의 자리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조금 큰 치수를 사주셨다. "발 크니까 조금 큰 걸로 사자"며 신발을 맞춰주던 순간의 따스함이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런 기억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생겼다. 매일이 힘겹고 어려운 일상 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이 있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남자는 여전히 피곤에 지쳐 있었지만, 그녀와의 만남 속에서 조금씩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해갔다. 피곤한 하루가 끝나면, 그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오늘도 잘 버텼다, 내일도 그렇게 하자."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피곤하고 힘든 날들이 이어지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것이다. 가난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는 희망이 되었다. 그들이 함께 나아가는 길은 아직 멀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발걸음은 서로를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어딘가, 그들의 작은 집 안에는 오래된 신발과 새로운 양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5

저녁 공기는 어느새 선선해지고 있었다. 퇴근길에 접어든 사람들 사이로 남자는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내려앉는 거리에서 그녀의 모습은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늘 그렇듯이 그녀는 약속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에 절은 몸이었지만, 남자는 그녀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피로를 숨긴 채 어깨를 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이할 때마다, 남자는 잠시나마 모든 피로를 잊었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오랜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 같았다. 그는 그 미소를 지키고 싶었다.

둘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길은 짧았지만, 또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길이 너무 길다고 느껴진 것은 그가 여전히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두운 기억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나란히 걷는 이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종종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 떠올랐다.

남자는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딘가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모습과 닮았고, 또 다른 이는 아버지가 도박판에서 지고 돌아오던 밤의 침울한 얼굴과 닮아 있었다. 그런 얼굴들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는 마치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 느꼈던 차가운 바람, 숨 막히던 공기, 그리고 아버지의 발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신발 소리가 들리면, 그날의 공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현관에 놓인 신발, 그 신발 위로 떨어지던 눈물과 피의 흔적, 그리고 그 속에서 움츠러든 어머니와 자신. 짧은 걸음을 걷는 이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가 왜 갑자기 그렇게 숨을 깊게 내쉬는지 알 듯 모를 듯했지만, 자기 때문에 버거운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를 느낀 듯 살짝 손을 그의 손에 더 꼭 붙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그에게 현재로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염려와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정했다.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지금 그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과거의 그림자가 아직도 자신을 잡아끄는 듯했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하는 이 길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마음이 조금은 넉넉해졌다.



#6. 에필로그

발 크기가 어정쩡하기도 하였지만, 항상 무엇을 하더라도 조금 넉넉히 사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클 것을 대비하여 조금 큰 수치로 옷을 맞추어주듯이 신발도 맞추어주었다. 끈으로 꽉 조여 묶으면 그럭저럭 신을 만할큼만 큰 사이즈로 신발을 골랐다. 그렇게 신는 게 편해지고 나서는 줄곧 약간 큰 사이즈로 신발을 신게 되었는데, 발은 그때 이후로 전혀 커지지 않았다. 발가락이 신발 끝에 닿지 않는 그 느낌만큼이나 이제는 영영 가닿지 못할 어린 시절 추억이 그 공간에 들어차는 것 같았다.

"영식아, 나가서 아버지 밭일 좀 도우려무나!"

발가락 끝이 무의식적으로 아릿했다.

"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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