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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15. 2024

신발 신은 노인

놀이글: 원피스 & 콜라주

※ 콜라주 재료
[원피스]신은 발로부터도 온다
[원피스]낡은 신발은 끈이 풀린 채
[원피스]신발도 주인을 닮는지
[원피스 콜라주]오래된 신발과 시간의 부채
[원피스 콜라주]신발짝처럼 걷는 인생
[원피스 콜라주]어른이 된다는 것
[원피스 콜라주]어긋난 사랑의 흔적들





노인은 나이가 들어, 자신의 일기를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노인회관에서 일기 쓰는 강좌를 들은 뒤부터 아무것이라도 생각나는 것을 회고하듯 적어내려갔고,





그러다 보니, 일기를 다시 읽고 또 읽는 것은 자신의 옛 순간을 복기하고 곱씹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처럼,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잔혹한 기억처럼 무수한 삶의 실수가 적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어차피





어차피 죽을 때가 되어서 그저 담배 연기처럼 흩어질 회한이었지만, 때때로





여전히 진하게 아쉽고, 아련해지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신은 하늘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발로부터도 오듯이, 자랑할 것이 없는 채로도, 살다 보니, 꾹 눌린 발바닥의 압박감처럼, 그만큼의 무게로 와닿는 기억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무게만큼 신은 발이 되어 우리에게 가장 낮게 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자랑할 것 하나 없는 그도 사랑한다는 신을 생각하다가





죽으면 그냥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가도





그저 노인은 신을 신은 채 의자에 앉아 아무 공책에나 적기 시작했던, 그리하여 일기장이라 부르는 공책을 뒤적였습니다.





거기에는 낡은 신을 신고 만났던 사랑도 있었고, 마음 아픈 채로 남아 여전히 희미한 채로 마음 아픈 자식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지 않았다면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란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이제 중년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으로





자신의 오래 전 사진을 찾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바쁜 세월을 어쨌든 살았지요. 죽은 아이를 뒤로 두고, 아이를 찾으려 다니느라 직장을 나와 사업을 하였음에도 사람 찾는 사업을 감당하지 못해 돈을 날리고는





일용직으로 일하며 전국을 떠돌며 아이를 찾고, 빚쟁이를 피해 유랑하기도 하였습니다.





눈이 쌓인 어느 날에나 잠깐 집에 머물다 다시 떠났습니다.





결국 아내와도 이혼을 하였습니다.





어떤 슬픔은 둘을 견고하게 한다지만, 어떤 슬픔은 둘을 갈라서게도 하였습니다.





어떤 슬픔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각자의 슬픔은 짊어지기도 버겁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원히 함께하자던 서약은





예상치 못한 길에서 틀어지고 말았지요. 둘은 점점 소원해지고,





각자로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낡은 신발은 오래도록 낡았고, 이제는 오른쪽 신발의 뒷굽 바깥쪽이 유독 닳아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신지 않은 채 신발장에 보관한 신발이었습니다. 물론 양쪽 다 뒷굽이 닳아있었지만, 오른쪽 뒷굽은 바깥쪽이 조금 더 마모된 채였죠. 굽을 교체하기 위하여 신발을 맡겨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고,





그때 이후로 비가 오는 날이거나 오래 걸은 날이면 오른쪽 발목이 아파서, 절뚝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종종 앉아서 발목을 주무르며 쉬곤 했습니다. 신발도 주인을 닮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 쪽인가 온전치 못한 채 절뚝거렸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는 기억속으로만 박제되었으므로, 자꾸만 그것을 기록한 일기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함께 말할 사람을 이제는 찾을 수 없으므로.





이런 때에 노인은 엉뚱하게도 오래 전 동창회에 왔던 '전교1등 1순위'라던 동창이 떠올랐습니다. 녹록지 않은 세파를 견디며 많이 위축되어 보이던 그를 불현듯 기억하는 건 그때 그 친구의 지친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런 표정에서 통하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고, 짓궂은 말이지만 위안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나만큼이나 슬픈 사람이 있다는 것, 또 그를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를 잊어도 상관없으면서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제 누가 먼저 죽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에 이르러,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신은 은밀히 숨어서 징검다리 건너듯 호흡의 행간에 머물 듯 머물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발신지는 없음에도 은근히 보이는 첫 단어, "당신, 아내, 내 아이의 엄마인 너의 그림자"로 눈가가 촉촉해지고, 그럴 때면 노인은 풀밭에서 번져오는 냄새만으로 어찌 비 올 것을 알았는지. 그냥 앞마당의 채소를 흐르는 물에 씻고 난 뒤 변기를 청소하였습니다. 색 바랜 누런색이 들러붙어 '된 것'이라곤 대체 무엇인지 그런 것도 된 것이라 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채로 그래도 살아왔던 순간을 일기장에 쓰는 것으로 '되었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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