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Part2 (48~52F)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2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27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48~52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창작 노트: 번호글의 유형 변화
번호글 간의 삼행시뿐 아니라, 번호글 역시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숙고할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저 삼행시를 선별하는 이유를 인용 문장으로 엮어서, 직접 말하지 말고, 보여준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제목이나 세로글, 또는 일부 문구를 되도록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했다. 그것을 통해서 인용된 삼행시를 뽑아야 할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번호글을 길게 쓰기도 어렵고, 서걱거리는 느낌도 강했다. 그럼에도 삼행시를 무게중심으로 둔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서 번호글마다 인용 문장으로 구성하다가 이음매가 너무 튄다고 느끼면, 해당 삼행시의 제목을 흐름에 맞게 바꾸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그 제목과 연계될 수 있도록 내용을 개작하려고도 했다. 그런 경우는 드물었지만. 때로는 좋은 제목을 지닌 삼행시를 여러 번호글 인용 재료로 활용했다. 그런 식으로 번호글의 분량은 적게 잡되,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삼행시와의 관계성을 명료화하는 정도로만 유지하려고 했다. 오히려 삼행시 간의 흐름을 잡아주기 위해 중간에 다른 스타일로 정보를 보강하는 식으로 해서, 독자가 삼행시 구성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콜라주 형식이라 모든 삼행시의 뜻과 방향이 온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에, 사실상 이벤트적인 시도 이상을 하기는 어려운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는 번호글을 확장하는 방식을 취했다. 삼행시의 문구를 인용하기는 하되 간접 인용하거나, 인식의 마중물로 쓰면서 시작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삼행시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다음 삼행시에서 다음 표지를 읽어서 번호글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즉 다음 삼행시에서 주인공이 죽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다루든가 그 주인공의 부재를 다루어야 했다. 콜라주의 제한된 규칙을 둔 셈이다.
그리고 산문 스타일, 혹은 1인칭 화자의 소설 형식을 염두에 둔다. 단순히 제목이나 세로글을 잇다 보면, 단순한 산문 기술에 머무는 정도인데, 번호글분량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경우 조금 더 조직적인 진술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삼행시편을 뚫어지게 보다 보면, 처음엔 안 보이던 틈새의 이야기가 스며 나왔고, 바둑돌을 하나씩 늘려가듯 이야기의 포석을 깔다 보면, 그 이야기의 세가 형성되었다. 그 길을 따라서 글의 몸집을 키우고 밀도를 잡아내려고 했다. 수시로 삼행시편의 포석을 살피면서 그에 호응하면서도 뻗어가는 이야기를 번호글로 감당했다. 상상의 흐름은 제한된 규칙에 사로잡히되, 옭아 매이는 수준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자체로 충분히 괜찮아서 여전히 그것으로 남겨두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약간 더 번호글에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여러 형식으로 번호글을 쓸 수 있지만, 전형성을 부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펑크록 하면 떠올리는 전형성이 있듯이, 번호글 하면 떠올리는 전형성을 제안해 보고 싶었다. 전형성은 진부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충분히 익숙하게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으로 알려져 안정성을 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래된 모든 장르는 이런 것에 기반하여 실험과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확립되지 못한 채 실험으로만 가득하면 그 시도는 좌초한다고 여겼다. 그런 이유로, 조금은 단순화하려 번호글을 연상할 만한 스타일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다른 스타일로 나아가더라도 번호글 하면 떠올리는 스타일에 어떤 것이 적합할지 고민했다. 이때 평서형의 진중한 성향으로 뽑히는 스타일로서 1인칭 화자의 사소설 형식은 어쩐지 삼행시의 문체와 분위기가 구별되지 않고 섞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을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약간은 다른 색채로 번호글의 존재감을 알리면 좋겠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그래서 고려하여 도입한 설정이 구어체 설정이다. 사실 놀이글을 진행할 때 경어체 등의 구어체가 나은지 평서형의 설정이 나은지 고민하곤 했다. 그러다 번호글로 고민하는 시점에 이르면, 구어체로 할 경우 삼행시의 평서형 문체와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구어체 쪽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구어체를 활용하려고 할 때는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했다. 단순히 평서형 문장을 구어체로 바꾸면 되는 것일까 검토했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실 그때 번호글로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주장도 하고 싶었다. 되도록 많은 형식을 수용하기를 원했다. 여러 형식으로 할 만한 그릇이되, 하나의 분명한 전형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점에서 가급적 하나로만 최대의 이야기와 스타일을 품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구어체라는 전제를 둔 것이었다. 그런 장르가 뭐가 있을까 싶었다. 참조할 만한 장르로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내레이션도, 인터뷰이의 말도 모두 구어체였다. 참조 대상이 있다는 건 시민 참여의 글쓰기를 고려하던 입장에서는 장점이었다. 무언가를 연상할 때 디딤돌이 되어주는 형식의 존재만으로도 난이도는 내려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투와 경험을 직접 취재하여 인터뷰하고 그것을 정리하거나, 그것을 토대로 말하는 과정을 창작하는 것도 가능해지니, 형식적인 면에서 에세이처럼 무형식성이 강해지고 글쓰기 접근도가 높아질 것처럼 느꼈다.
다만, 다큐멘터리 형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삼행시편과 부조화를 이루는 요소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삼행시 콜라주 안에서 번호글로 적절히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추려서 정리했다. 내레이션과 인터뷰이의 말은 다르게 움직이므로, 번호글에서 동시에 적기보다는 따로 쪼갤 필요가 있었다. 또 인물끼리도 대본 형식으로 동시에 적기보다는 구별하기 쉽게 번호글 단위로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검토했다. 기존 기사에서 흔히 보는 인터뷰 기사처럼 작성자의 질문을 넣지 않으면 좀 더 단순화해서 삼행시편과의 양자 구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각 인물의 말에 집중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과 피드백을 주느라 소모적인 분량 역시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사실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생각했을 리는 없죠. (웃음) 처음에는 구어체가 좋겠다고 그냥 생각했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흉내낸 것이죠. 그리고 나중에 그럴 듯하게 이유를 만들어서 정리한 것이라 봐야죠. 창작 노트요. 처음에는 그냥 저질렀다가 나중에 그럴 듯한 필연적 당위성을 발견한 거예요. (웃음)”
이를 ‘다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이라 칭했다. 가상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모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이라 해야겠지만, 형식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니 좀 더 보편적인 표현을 빌린다. 그러한 형식에서 주로 적용하는 구어체를 활용해 소설적 상상을 펼쳐내려고 했다. 소설로 서사를 구축하여 보여주기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말하기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말을 인터뷰로 따라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흉내 내기 쉽다고 보았다. 마치 <사건 추적> 같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 자신이 진술하는 것이 각자의 인식에 갇힌다는 점, 수용자로서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보를 다루어야 하는지도 고찰할 수 있는 스타일처럼 보였다.
이러한 효과는 주장하는 글, 이론으로 충돌하는 글에서 더 도드라진다. 인물 간의 주장을 위의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특정한 주장을 고집한다기보다는 해당 쟁점의 주장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에 유용하다. 물론 특정한 방향성을 띨 수도 있지만, 거리두기 방식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이때 인물은 구어체를 통해 자신의 지적 수준을 드러내면서, 어디까지 인지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볼 수도 있다. 전문가의 이론이라기보다는 비전문가의 증언이나 몽상으로 국한할 수도 있었다. 단순 경험자의 증언은 비전문적 요소를 말로 풀어낼 때가 많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이론적으로 정교해지는 걸 피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소소한 설정을 하여서 어떤 의견을 그 인물로 카테고리화하여 쉬이 묶이지 않을 여러 관점을 묶는다면, ‘그 인물의 관점’이란 표현으로 그 복합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좋아하면서도 모순적으로 공산주의를 긍정하는 사람의’ 관점으로도 말할 수도 있다. 논리적인 글에서 명료하게 갈리는 부분도 실제론 그러지 않은데, 그럴 경우 보통 인물로 소설적 상황을 만들어 둘러 가야 하는데, 주장하는 번호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복잡한 행동을 통해서 여러 해석을 낳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명료하게 주장함으로써 그 불균질성을 일관되게 그 인물의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었다. 시민에겐 그런 비평 기능이 필요했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