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이 Nov 14. 2024

서산: 쓰일 수는 있지만, 때로는 모호하고 때로는 아련

에세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 서산: 쓰일 수는 있지만, 때로는 모호하고 때로는 아련한 단어

‘서산’이라는 단어는 왠지 낯선 느낌을 준다. 도시 서산이 아닌 이상, 그저 산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 서산은 드물다. 물론 동산이나 북산도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다. 예를 들어 ‘북산’이라는 말은 거의 <슬램덩크>의 북산고등학교 때문에만 익숙할 뿐이다. 동산이라면 맛동산 과자나 ‘무슨무슨 천국 동산’ 등의 종교 시설을 떠올리기 쉽다. 남산은 서울에 있어 자주 언급되지만, 그 외의 산들은 애매하게 느껴진다.

다만 서산을 쓰다 보면, 어딘가 자연스럽게 ‘일몰’이나 ‘노을’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서산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영화 <변산>이 생각난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과 서정적 분위기가 서산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어서일까. 어쩌면 <변산>을 보고서 영화의 마지막 지점에서 묘지였나 산이었나 모를 그곳에서 주인공들이 바라보던 노을을 떠올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문득 도시 서산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박정민이 연기한 주인공이 김고은과 함께 있던 장면이 떠오르고, 영화 속에 흐르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겹쳐졌다. 노을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 노을이 인상적이었고, 한때 김고은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노을이 오래도록 깔려 있었다. 노을을 발갛고 퍼진 색깔이 사방으로 젖어들었다. 단어의 의미도 사방으로 젖어들었다.      


물론 “서산- 너머의 일몰과 노을을 자주 보았다. 그러면서 컸다.”라고 할 때는 도시 서산보다는 산을 지칭한 것처럼 보였다. 쓰다 보니 그리 되었다. 써놓고 보니, 묘하게 고유의 감성을 가진 것 같은 문장이 되어버린다. 서산이라는 단어에는 한적한 고향의 정취가 스며 있고, 어쩌면 그 안에 감추어진 생각이나 감정이 흩어져 있다. 

‘서산’이란 말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서산'은 원래부터 잘 쓰이지 않았지만, 굳이 쓰이지 않을 이유도 없는 단어였다. 그 정취와 향수는 실체적이지 않지만, 아련하게 남는 것 같다. 가짜 추억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진짜 같은 아릿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면 그 사람 마음속에는 진짜로 있어도 되는 감정인 셈이다. 그렇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이미지들이 생겨났고 지속되었다. 서산은 어딘가 내 마음속에 일렁이며 여운을 남기는 단어다.

그것은 한 가지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고 그저 서서히 퍼져나가는 색깔 같다. 이렇듯 서산이란 단어는 꼭 지형이나 산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정서적 배경을 깔아주는 느낌을 준다. 사방으로 번져가는 붉은 노을, 그 너머에 자리한 것 같은 단어다.

노을을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며시 묻어나는 감정이 있다. 모든 단어가 꼭 특정한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한다기보다는 더 넓고 막연한 애정이나 그리움을 담을 수 있다. 서산에 번져가는 노을처럼 사랑도 그렇게 점점 퍼져나간다.

번진다, 사랑도, 서산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커서: 쓰이는 단어지만 지금 쓰이기는 까다로운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