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유난히 배가 고팠다. 남자친구가 빵 여러개를 고르는 걸 보다가 나도 샌드위치를 하나 골랐는데, 순간 그가 몸으로 나를 밀쳤다. 회사에서 집으로 데려다주겠다할 때까지만해도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했었다. 왜이래? 라고 묻는데도 그는 힘으로 샌드위치를 뺐더니 계산까지 모두 끝내버렸다.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빵 썰어놓은 쟁반에 손도 못 대게 했다. 너무 황당해서 웃기 시작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너가 내가 너 몸에 신경도 안 쓴다며. 혈당 신경쓰는 것도 모르면서 운동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이라며.
나를 노려보며 그는 끝까지 빵 한 쪼가리 주지 않았다.
전날 그와 나 사이에는 큰 언쟁이 있었는데, 그때 내 헬스 트레이너와 그의 의견이 번번이 다른 게 문제가 됐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상체힘이 약해보인다며 팔 운동을 열심히 하라했고, 트레이너는 하체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정도의 차이였다. 나는 전문가의 말에 따르겠다고 했고, 사랑한다면 무조건 자기 말을 따르라는 그에게 내 몸에 대해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냐고 물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모두 혈당이 높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넌 자꾸 빵 먹으러 가자고 한다고 지적했다. 화를 돋우려고 하는 건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수화기 너머 언성이 높아졌다. 그가 원한을 그리 오래 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는 내게 혈당 관리를 하라고 말하며 빵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 때로부터 일주일 후의 이별은 차라리 순리되로 된 바였다.
그 사람 이후로, 나는 결혼을 왜 못했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그저 웃거나 그냥 결혼에 안 맞는 거 같다고 말하고 만다.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를 오래 좋아하기가 어렵게 생겨먹은 모양이다. 누가 좋아지더라도 대번에 실망하고 심지어는 쉽게 좋아지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감정이 드물게 생기는 만큼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머리로 생각한 정답지가 있었고 그 체크리스트를 넘기는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샌드위치남은 그나마 내가 진지하게 만난 사람이었다. 벌이와 학력과 나이가 모두 비슷했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돈 생기면 모조리 적금에 넣어버리는 나에 비해 재테크에 밝은 것도 멋져 보였다. 베이커리 카페의 냉장고 앞에서 내 손목을 틀어쥐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쩌면 그 남자가 정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그때 이후로도 점점 더 통제적인 행동을 했고, 급기야 몸에 상처를 내는 등 정답과는 멀어졌다. 머리로 한 선택에 내가 속은 꼴이었다.
결혼이 정답일까? 그렇다면 어떤 결혼을 해야할까?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건 마치 대학 입학 원서를 쓰면서 이 과가 정답일까? 묻던 시절 같다. 나는 아직도 가끔 수능을 보는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벌써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이 되어간다고 나보다 훨씬 어린 애들을 붙잡고 하소연하지만 아무도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시험지가 앞에 놓이고 나는 꿈인가보다 하면서도 시계를 보면서 초조하게 시험지를 읽기 시작한다. 꿈에서라도 시험을 안 보는 일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결혼이란 - 전혀 모르지만 -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한 쌍이 만나 함께 꾸려가는 생활의 연속 그런거 아닐까? 아마도 체크리스트 따위로 상대를 판단하고 그런 차원의 문제로는 알기 어려운 깊고 광대한 삶의 결단과 그 결과가 결혼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 오답을 피해오던 습관으로는 자꾸만 살아보기 전에 정답을 미리 알고만 싶다. 그 습관이 오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답을 알고만 싶다. 모범생의 습관은 결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확실하다. 샌드위치남 걸렀을 땐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