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남자가 좋다. 이런 진심을 솔직히 말하기란 쉽지 않다. 예전에는 12살 연하를 한번 만났다. 다들 그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나는 민망해하며 그 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깐의 그 만남은 내 안에서도 비밀스러운 훈장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어린 남자가 많다. 부장 과장 아저씨가 득시글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부럽다고 말한다. 나는 애들일 뿐이라 말하지만 속으로는 수긍한다.
예전에 만난 그 애와 헤어진 이유는 취업 준비는 안 하고 롤만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애의 싱그러움이 좋았다. 부동산, 급여, 미래, 결혼 그런 것들과 멀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순박하게 굴자 다시 그가 싫어졌다. 그의 싱그러움은 미래없음과 거의 같은 뜻이었다.
어린 남자가 제일 좋을 때는 사심없는 친절을 베풀 때다. 연상녀를 대하는 어린 남자의 친절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덜 위험한 구석이 있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역전 때문이겠지. 나는 이 시간의 끝을 어렴풋이 안다. 이 애는 모른다. 이런 차이일 것이다.
얼마 전 동기의 결혼식에 갔다가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지겨워하던 시절을 공유하고, 이제는 거의 결혼식 뷔페에서만 만난다. 그렇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만나고 싶은데, 만나도 예전이랑은 같지 않아.”
내 말에 조금 더 친한 친구들이 대답했다.
“우리도 그래.”
우리는 관계의 끝을 수십번 보았다. 그러다보면 어느 관계에서나 끝을 느끼게 된다. 어떤 스테이지의 시작은 어떤 스테이지의 끝. 누군가와의 결혼은 누군가와의 우정의 끝인 것만 같다.
나보다 나이 많은 오빠는 나를 결혼식장에 데려갈 수도 있다. 반지를 끼워주며 언제까지나 헌신하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위협이다. 나는 내 세계에 손을 흔들고 오빠의 손을 대신 잡아야 한다.
나는 그럴 용기가 없고, 어린 남자는 그럴 힘이 없다. 그래서 좋고 그래서 깊이 좋아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위협적 성애와 무해한 친애의 줄다리기. 양극을 오가며 남자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