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삼각지역 주변의 허름한 식당에서 만났다. Y의 결혼 이후 처음이었고, 내가 먼저 제안한 모임이었다. 그때 나는 이쪽 아닌 저쪽으로 Y가 가버렸다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관계는 굳건하다고 믿고 싶었다. S가 함께 앉아있었다. 닭도리탕이 보글보글 끓었다. Y가 앞접시에 닭다리를 놔주는 동안 S가 왜 이리 매너가 좋냐고 농담을 했다. 잔을 부딪혔다.
나와 S는 Y의 결혼에 대해 덕담을 했다. 신부의 아름다움과 식장의 호사스러움을 칭찬했다. Y가 의기양양해지자 우리의 덕담은 언제부턴가 아양처럼 변해갔다. 진심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으레 그리하듯 가볍게 늘어놓은 칭찬이 그의 어깨를 너무 과도하게 세워놓은걸까. Y는 호텔 결혼식에 쓴 돈, 신부가 최고의 여자인 이유, 그리고 그녀를 얻은 제 능력에 대해 자랑하다가 내게 물었다. “누나는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그러고 산다는 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노닐고 있단 뜻이고, 썩는 도끼자루는 결국 가임력에 대한 비유일 따름이었다. 출산율에 대한 걱정과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떠드는 걸 듣다가 그래서 넌 스무살이랑 결혼했냐고 물었다. 말수가 적어진 Y는 술자리가 끝날 때 즈음에야 조용히 사과했다.
“누난 너무 당당하잖아.”
그 다음주에는 국방부 출장이 있었다. 역시 삼각지역 근처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Y가 했던 말들을 잊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분노를 이겨내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국방부 정문에서 옛 합참 건물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몇 단계나 보안 검사를 받고 개인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겨우 건물 어귀가 보이나 했더니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며 나를 멈춰세웠다. 정복을 입은 직원이 말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나보다 더 높은 단계의 통행증을 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대통령이 용산으로 온 이후에 생겨난 지침이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대로에서 내려와 샛길로 걸었다. 고개를 돌려 직원을 돌아보았다. Y가 다시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Y는 언제나 대로변을 걷는 사람이었다. Y는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았고, 사람을 잘 웃기는 선배들과 놀고 싶어했고, TV에 나오고 싶어서 방송기자가 되었다. 가끔 저녁 시간대에 채널을 돌리다보면 Y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삼각지에서 술을 마신 그 날 Y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잦은 전화가 왔다. 선배 기자, 부장, 취재원, 그리고 국회의원에게서도. Y는 정치부 소속이었다. 평소보다 몇 톤 올라간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나서 누구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취하고서는 연신 씨발 씨발 뭐 같은 세상이라 욕을 했다. 나와 S는 Y를 구경하며 깔깔거렸다.
국회의원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하다가도 일이 힘들어 욕을 하는 그를 불러세우는 건 누구인걸까. Y가 가끔 더 안전한 길, 더 선택받은 길을 가고 싶어할 때 통행증을 발급해주는 건 누구인걸까.
가끔 나는 합참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던 나를 떠올린다. 대로변으로 가고 싶었다. 누군가가 갈 수 없다고 말하자 더 가고 싶었다. 더 넓은 길로 가고 싶고, 그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Y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길이 아니었잖아,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누군가 그 길이 더 좋은 길이라고 정해두었다고 그게 나에게도 나은 길은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그런 식으로 자주 멈춰선다. 길 잃은 듯이, 불안에 떨면서.
몇 주 후 연락해온 Y를 나는 용서했다.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대로변을 걸어야만 하는 그의 불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