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 가기엔 아직 어린 나이 아니야?" "먼저 자연임신 시도부터 충분히 해봐도 늦지 않잖아?"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임신에 조급한 마음을 갖는지 의아해했다. 양가 부모님도 왜 벌써 난임병원에 가냐고 했고, 특히 친정엄마는 난임시술로 내 몸이 상할까 봐 걱정부터 했다. 공식 노산 나이(만 35세)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 나이 33살은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의 계획적인 성향 때문이다. 임신을 처음 결심한 건 33살 5월 무렵이었다. 임신을 하기로 한 번 결정하자 마치 프로젝트처럼 꼭 완수해야 하는 무언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보지 못하자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임신 시도의 데드라인을 '33살 연내'까지로 잡았다.
하지만 데드라인을 다 채우지 못하고 11월에 난임병원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미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던 친구의 조언 때문이었다. "난임병원에 간다고 바로 난임시술을 하는 건 아니야. 검사 과정부터 실제 시술에 들어가기까지 꽤 많이 걸려. 결심했으면 최대한 일찍 가는 걸 추천해."라고 친구는 말했다. 나는 시도한 지 정확히 6개월째 되는 11월에 임테기 한 줄을 보자마자 진료를 예약했다.
난임병원 초진 팁
1. 초진은 무조건 생리 2~3일 차에 내원해야 한다.
- 호르몬 검사 때문이다.
- 생리를 시작했으면 바로 병원 예약을 알아본다.
2. 초진 예약이 가능한지는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르므로 직접 확인한다.
- 내가 다닌 병원은 초진은 예약이 불가능해서 워크인을 해야 했다.
3. 집과 직장과의 거리 및 동선, 오전/야간 진료 여부 등을 확인한다.
- 나는 출근이 빠른 직장인이므로 9시 전에 진료가 가능한병원만 다닐 수 있었다.
- 7시 반 병원 오픈런을 했을 때, 회사에 9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는 병원을 택했다.
그렇게 33살 후반부터 난임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정말 친구 말대로 병원에 간다고 바로 시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검사 결과 우리는 두 쪽 다 문제가 없는 '원인불명의 난임'이었다. 아직 나이에 여유가 있으니 자연임신 시도부터 해보자는 선생님의 권고로 배란기에 배란 초음파를 보며 자연임신 시도를 했고, 그것이 한 3개월 실패하자 과배란 약을 복용하며 시도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착상을 방해하는 위치에 폴립이 있다고 했고, 중간에 폴립 제거 수술을 한 차례 받느라 한 주기를 쉬기도 했다. 그렇게 12월부터 4월까지 5개월을 보내게 된다.
이 시기에는 꽤 우울하기도 했다.임신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정자와 난자는 도대체만나긴 하는 걸까? 난관에서 수정란이 만들어지긴 하는 걸까? 그게 자궁 내막까지 어떻게 흘러오는 거지? 나는 수정이 문제일까 착상이 문제일까? 어느 단계에서 진도가안 나가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부에서 난임시술 지원을 늘렸다지만 자비 부담도 꽤 많았다. 난소기능검사와 초음파 검사, 나팔관 조영술 등 난임검사에 드는 각종 비용는 정부지원이 되지 않는데다가(다행히 올해 4월 1일부터 난임검사비도 일부 지원을 시작한 것 같다), 병원을 갈 때마다 드는 부대비용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수정, 시험관 비용도 정부지원금으로 전부 커버되지는 않는다.
나에 비해 주변 친구들은 쉽게 임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방에 성공했다느니, 계획도 없이 덜컥 생겼다느니,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왜 나는 '한 방에' '덜컥'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봤자 나보다 몇 년 어린 친구들이라 나이 차이는 크지 않은데도, 내가 자연임신하기엔 나이가 많은가 하는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5월부터 난임시술의 본격 첫 단계인 인공수정에 들어갔다. 사실 인공수정의 일반적인 임신 성공률은 기대만큼 높지 않다. 선생님께서는 인공수정 1차에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6쌍 중 1쌍 정도니 낮지 않다고 했지만, 나에게 1/6은 꽤 낮은 적중률이라고 느껴졌다.친구는 인공수정은 자연임신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1번 정도 해보고 안 되면 바로 시험관으로 넘어갈 것을 추천했다.
인공수정 결과는 실패였다. 정자를 병원에서 선생님이 넣어준다는 것만 다를 뿐 확실히 자연임신 시도와의 차이를 못 느꼈다. 과배란 주사를 배에 맞아야 하므로 어차피 고생하는 건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이나 비슷했다. 그렇게 다음 달에 생리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시험관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러 병원에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은 난소가 자극되어 부었다고 (흔한 일이라면서) 이번 주기는 한 텀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한 달을 허무하게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회사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6월에는 쉬는 김에 신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술 약속도 잡고, 제주 출장에서도 먹고 싶은 술을 양껏 마셨다. 난임시술 과정 중엔 평소에 즐겨하던 것들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된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술을 못 마시는 게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다. 과배란 주사를 맞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약물 때문에 조심스럽고, 시술 이후에는 임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술을 끊어야 하므로.
하지만 6월엔 난소과자극증후군 덕분에(?) 신나게 마시고 놀았다. 돌아보니 이 달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유일한 휴식기였다...
다행히 난소는 금방 회복되어 7월에는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었다. 시험관에도 신선배아와 동결배아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신선배아 이식을 하기로 했다. 시험관은 주사의 종류도 훨씬 더 많고 복잡했다. 각각의 주사마다 주사법도 달라서 어려웠다. 한 번은 회사 화장실에서 주사를 놓다가 실패해서 멘붕에 빠져 30분 동안 못 나온 적도 있었다... 그 뒤로는 주사법 동영상을 보면서 아침마다 집에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주사를 맞았다.
7월에는 여름휴가 일정도 있었으니 시술 후에 푹 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7월 첫째 주 토요일에 난자 채취를 했는데 다행히 꽤 많은 수(16개)가 나왔다. 난자와 정자 모두 상태가 좋았는지 수정란도 14개나 만들어졌다. 그중 신선배아(5일 배양 배아)를 이식했고, 나머지 수정란 중 상태가 좋은 배아 7개(5일 배아 6개, 6일 배아 1개)를 동결하게 된다.
시술 후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엔 착상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추어탕을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사실 이식 후엔 몸에 좋다는 것들을 가능하면 계속 먹었다. 흑염소도 먹었는데(윽...) 내 인생에서 다신 흑염소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식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엔 과속방지턱을 넘는 것도 조심스러워 시속 10km 정도의 속도로 의전 운전 하듯이 넘어야만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험관 1차를 마치고 이제 남은 건 일주일 뒤 임신 확인 검사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