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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Oct 07. 2024

임신 극초기 해외출장 다녀온 썰

임신 확인 직후 13시간 비행

신선배아 이식 8일 차, 병원에 방문해서 임신반응검사를 했다. 아침 일찍 내원해 채혈을 하고 출근을 했다. 


병원 방문 전에 일부러 집에서 임신테스트기는 해보지 않았다. 단호박 한 줄이 나올까 봐 무섭기도 했고, 그냥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정확하게 임신을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피검사 결과는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출근을 해서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 날은 점심 약속이 없어서 자리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저장해 둔 병원 번호가 뜨면서 전화가 울리고, 나는 토끼처럼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루이제 님, 임신반응검사 결과 양성입니다."


"정말요!!!!!?????"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임신이라니!


사실 담당 선생님은 7월 이식을 권하지 않으셨다. 난소를 채취하자마자 하는 신선배아 이식은 난소와 자궁에 무리가 된 상태에서 곧바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배아이식 당일까지도 한 달 쉰 다음에 냉동배아 이식을 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나는 그냥 진행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임신메이트인 남편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곧바로 알려주고 싶었지만 전화보다는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필 그날 남편은 야근이어서 서로 얼굴을 못 보고 잠들어야 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말없이 선물박스를 건네주었다. 



남편은 상자를 열자마자 놀람의 눈물을 보이더니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 집은 꼭두새벽부터 눈물바다가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기 며칠 전, 아빠가 예쁜 송아지(암소인지 수소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마리를 끌어안는 태몽을 꾸었다고 했다. 눈이 너무 예쁘고 송아지가 너무나 깨끗해서 아빠는 꿈에서 깨어서도 한참 그 눈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작은 신고식을 마쳤다. 이 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임신 확인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었다. 첫 피검사 결과 통보와 동시에 병원에서는 다음 피검사를 안내했다. 


"피검사 수치가 100을 넘어야 안정권인데, 루이제 님은 지금 100 이상이에요. 이틀 뒤에 내원하셔서 피검사 수치가 더블링(2배 이상으로 증가) 되는지 확인하셔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틀 뒤 오전에 해외출장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일 가서 확인해도 될까요? 제가 이틀 뒤부터 해외출장이라서..."


병원으로부터 다음날 최대한 늦은 시간에 와서 피검사를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문제는 다음날도 해외출장 전날이라 업무상 준비할 것이 많아 조퇴를 못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병원에 가려면 늦어도 3시에는 회사에서 조퇴를 해야 했다)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점심시간에 방문해서 피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점심 약속을 미루고, 병원에 방문해서 또 채혈을 했다. 다행히 두 번째 피검사 결과도 안정권이었다. 


"임신반응 피검사 224.81으로 수치 괜찮아요. 약 유지하시고 출장 이후 바로 내원해 주세요."


첫 피검사 후 이틀 후에 더블링을 확인해야 안정권인데,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더블링에 성공한 것이다. 모든 게 다행이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이나 해외출장을 가야 했고, 비행기를 13시간(돌아올 땐 15시간)은 타야 했다. 임신 극초기에 출장을 떠나야 하는 게 걱정이 되긴 했으나 중요한 출장이었으니 갑자기 취소할 수는 없었다. 


같이 출장 가는 멤버에게만 조용히 임신 사실을 공유했고 공식 업무 일정 외 비공식 저녁 일정(회식) 등에는 되도록 참여하지 않고 쉬는 쪽으로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출장팀 모두가 나를 잘 배려해 주었고 나는 2019년 이후 5년 만에 방문한 미국 땅에서 업무시간 외 잠만 내리 자는 업적을 이루게 된다. 


시차 적응 때문인지, 임신 초기의 피곤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밤 8시만 되면 잠이 쏟아졌고 다음날 조식 시간이 될 때까지 거의 11시간씩 잠을 잤다. 다행히 현지에서는 아직 입덧이 시작되지는 않아서 가리는 것 없이 먹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라면을 먹는데 첫 입에 약간 울렁거리는 증상이 있었던 걸 보니 시작될 기미가 조금씩 보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입덧 기간 내내 라면처럼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나는 음식은 못 먹었다.)



출장 중엔 임신테스트기를 챙겨가서 매일매일 두 줄이 진해지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른바 '역전 현상'(대조선보다 시약선이 진해지는 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왼쪽 줄(시약선)이 오른쪽 줄(대조선)보다 더 진해질 쯤이면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귀국하기 전에 마지막 테스트에서 이 역전 현상까지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었다. 


귀국 후 임신 5주 차에 병원에 가서 마침내 아기집을 보았고 임신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나는 이제 정식으로 임신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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