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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림 Oct 27. 2024

누가 거울을 만들어서

거울과 우울

 누군가에 의해 사진을 찍히는 것은 매우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다. 당신이 든 카메라에 내가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상을 담아 내고 있는지 나는 알 겨를 없어 무섭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가면 어릴 적에는 아무도 나를 예뻐하지 않았다. 그게 만약 자신일지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도착했다. 친가에서 이사를 축하한다며 하나둘씩 신발장에 신발을 채웠다. 아무리 아빠쪽 사람들이라고 해도 평생을 자라온 외가만큼 편한 사람들이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나와 오빠를 이방인처럼 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는 듯한, 기웃거리는 눈빛으로. 빛에 확장된 검은 눈동자들이 아직까지도 무섭게 기억된다. 오빠는 엄마를 닮아서 흰 피부에(흰 피부를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 당시에는 솔직히 부러웠기 때문에), 커다란 눈,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반면에 나는 낯을 매우 가려서 표정으로도 드러났다. 웃음이라는 게 뭘까? 당시 나에게는 없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표정이 없으면 가끔 웃으면 광대근육이 아팠다. 도망치듯 오빠의 그늘 아래에 숨어서 안방에 들어갔다. 거실에서는 큰 웃음 소리가 들린다. 들어보면 나의 외모에 대해 유머삼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세우고 오라가라고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딸래미 얼굴 함 보자."

나는 눈요깃거리가 된다. 어른들이 오라고 하니까, 거실로 쭈뼛거리며 겨우 얼굴을 내밀었다. 내밈과 동시에 들은 말로는 "참으로 못생겼다." 였다. 어찌 엄마를 한톨도 닮지 않았냐며 외모를 지적하며 웃어댔다. 그런데 그 웃는 사람들 중에 피가 섞인 가족들이 있는 걸 본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 수 있을까? 눈물을 꾹 훔치며 그나마 나의 편일거라는 오빠에게 달려가 숨죽이며 울었다. 아무도 내 편이 아니면 내가 나서서 나를 지켰어야 했는데, 일말의 희망이라는 것이 그때는 있었나보다. 그렇게 1초

 "엄마, 얘 울어요!"

한마디로 순식간에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 나의 기대는 아무때나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다섯살 때부터 알아버렸다. 어른들은 분위기를 먼저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의 안위는 상관없이 사소한 것으로 우는 아이가 됐다. 그래놓고는 아저씨가 미안해로 평생의 속죄를 대신한다. 


나는 십대 전부를 스스로 속죄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하다못해 누가 거울을 만들었지? 누군데 이렇게 얼굴로 미움을 만들어내나. 세상에 거울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비교하지 못했을텐데.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얼굴만을 보고, 그 맺힌 상들이 사랑스러웠을텐데...

 그렇게 첫번째 우울이 만들어 졌다.. 나의 외모에 대한 우울.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채 10년을 보내버린게 지금은 너무나도 안쓰럽고 미안하다. 스스로 나를 부정한다는 것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켜 냈기 때문이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만큼 당시 반에서 가장 화장을 잘했다. 친구들의 화장을 대신 해줄 만큼이나. 그래서 생기부-생활기록부-에는 '치장에 매우 관심이 많으나 학업에 걱정될 정도, 교칙 위반의 정도는 아님'으로 남았다. 그 치장이 뭐라고 생활기록부에 남겨질만큼 꾸며댔는지 성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고 거짓된 자존감이라해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무난하게 보내고 교칙이 엄격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나의 민낯을 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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