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매환자로도 살아보고 뇌전증 환자로 살아본 결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치매와 뇌전증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일단 나처럼 젊은 나이에 치매가 걸렸다고 하면 대부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위로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위로를 받으면서 마치 내가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주인공이 된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아름답게 병이 들어갈 것이라는 큰 착각을 했다. 그러나 이 환상은 약을 복용한 이후로 처참하게 깨어졌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리고 두번째 경우인 뇌전증은 대부분 사람들이 놀라며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 뇌전증이라는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간질이라는 말을 꼭 덧붙여야 했다. 나처럼 약으로 조절이 잘 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간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히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는 병으로만 생각을 하는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나조차도 나의 병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람들이 나를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가둬버리고 판단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혹시나의 경우를 위하여 학부모들에게 내 병을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간질이라는 말을 덧붙여가며 말이다.
나는 내 병을 알릴 때마다 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한 내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병을 알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무거운 마음들은 상대방한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내 병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내가 숨기는 비밀의 무게가 마음이 무거운 것보다 더 가볍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설화에서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이발사는 비밀을 지키다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대나무 숲으로 가서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치는 장면이 있다. 즉 비밀은 지킨다는 것은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여 결국 병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비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내 팽겨치게 되면 순간은 가벼울지 몰라도 곧 더 무거운 짐을 질수도 있다. 그러니 비밀의 무게를 버텨야할지 내 팽겨쳐야할지는 골똘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 또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지만 이 무게를 충분히 버틸 수 있을만큼 좀 더 자라게 되면 나는 세상으로 이 비밀을 내 팽겨칠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그 순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