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있다.
가을이 온다.
새벽녘 공기가 차다.
나는 이 차가움을,
코끝에 닿는 공기의 차가운 냄새를,
섬세하게 스치는 차가운 감촉을 사랑한다.
밤새 차분하게 내려앉은 가을은 오래된 다정한 연인처럼 나를 깨운다.
가을이 온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그리움이 소란스럽지 않게 온다.
들뜬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스치는 바람에 가볍게 손을 얹는다.
나는 가을이 오지 않을까 두려웠다.
최근 몇 년간의 여름은 나에게 인격과도 같았다.
무자비한 독재자처럼 일상을 파고들었던 그 여름은 물러갈 기미도 없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느껴진 여름 앞에 무력함을 느끼며 가을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슬퍼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가을이 오고 있다.
그 눈물겨운 날들에 새벽녘 선선한 날씨를 온전히 누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맹렬했던 더위를 뚫고 힘겹게 찾아온 가을이 쉽게 달아날까 나는 큰 소리도 내지 못한다.
조용히 가을과 마주하며
가을 공기를,
가을 냄새를,
가을바람을,
가을을 느낀다.
이 차분한 독대는 이별을 위한 것이다.
가을은 잠시 머물 것이다.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겨울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니 가을이 손짓할 때 나는 그 앞에 앉아야 한다.
만남과 이별이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에 진행된다.
하늘을 찌를듯한 무더위도 기세를 꺾고 지나갔다.
이 차분하고 가녀린 가을이 오래 머물리 없다.
그러니 가을은 오면서 간다.
나는 가을을 오래 기억해야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여름도, 붙잡고 싶은 가을도 때가 되면 물러선다.
이것은 인생의 위로일까, 서글픔일까
다가오는 가을과 이별할 준비를 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음을 담담히 깨닫는다.
나도 그렇게 가고 있겠구나.
여름처럼 영원할 듯이 서 있어도 때가 되면 비켜서야 한다.
나는 여름이었다가 가을로 가야 한다.
나는 감히 이 거대한 순리를 거스를 수 없다.
가을은 이별을 이야기해서 쓸쓸한 계절인 걸까?
여름을 거두고 단풍을 가져오는 것도 헤어짐의 인사이다.
앙상한 가지 위에 겨울을 데려오는 것도 헤어짐의 인사이다.
사라지고 있는 것들.
가을은 삶의 정면을 보여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머물지 않겠노라.
가을의 선포는 아름답고 잔인하다.
나도 당신을 따라가리라.
이별 앞에서 나는 질척여본다.
붙잡히지 않겠지만, 나도 잡으려 하지 않고 따라간다.
가을이 바람처럼 온다.
가을은 스치고 지나간다.
나도 가을을 잠시 스친다.
우리는 서로 스치며 잠시 사랑하고
길게 이별한다.
그럼에도 오늘은,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