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의 언어

나의 눈동자에게

by 아무

어떤 순간은 존재의 환대와 경멸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눈동자의 언어.


그때 나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더듬어 보면 마음 한 켠이 늘 비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인생에서 그런 것이 있기 마련이다.

쉬이 내뱉을 수 없는 마음.

입 밖으로 차마 나오지 못한 말들.

그 마음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빈 마음이다.

그 마음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의 눈은 길을 잃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나의 방황하는 눈동자를 알아봐 준 것이다.
그 눈동자는 정확한 단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압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찰나는 많은 말을 남길 수 없지만 모든 말을 전달해 준다.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마음에 손 하나가 얹어졌다.
방황하던 눈동자가 잠시 눈길을 멈췄었다.


"말을 걸어 주어 고맙습니다."


3초쯤이었을까 혹은 그보다 짧았을까
나의 삶에 눈동자가 머물던 시간
그거면 충분했었나 보다.
그 순간, 그 눈동자는 나의 것이 된다.


그 찰나로 세상에 보이지 않는 띠 하나가 부딪히는 눈동자 사이를 오가며 강한 연대를 만들어냈다.
무음의 언어는 품이 되어 나를 안아 주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마음의 정의를 내리는 것도
어지러운 마음을 치워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해받고 싶었을 뿐.

그 한 번의 알아챔이 나를 살린 것이다.

나의 친절한 눈동자

여전히 나는 그 눈을 듣는다.

어떤 말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입이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때로는 어떤 눈이 알아채고

입이 할 수 없는 말을 때로는 어떤 눈이 말하기도 한다.

입으로 헤아리는 단어의 한계를 넘어서 마음보다 깊은 곳을 울리는 언어가 존재를 보듬어 주기도 한다.

존재의 깊이에 도달해 나를 만지는 말.

눈동자의 언어.

존재에 다가서고 말을 걸어주고 안아주는 단어는 생애 첫음절이 된다.

그렇게 나의 잊지 못할 눈동자가 태어난다.


말을 가진 눈동자의 시선은 마음에 박힌다.

단단하게 붙들린 마음은 묶여있던 밧줄을 끊어내고 잠시 숨을 쉰다.

잊지 못할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소리 내어 울 수 있다.

허락된 눈물은 눈동자가 남긴 선물이다.


오늘 당신의 눈동자는 분명한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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