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케이크가 기가 막혀
살아가면서 참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필요에 의해 일부러 할 때도 있고, 선의라는 미명 아래 하얀 거짓말을 할 때도 있지요. 그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걸 보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 어떤 경우든 거짓말보다는 진실해야 된다고 믿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넘도록 밝히지 못한 하얀 거짓말이 하나 있어요.
결혼 후 남편의 첫 생일을 특별하게 기념해 주고 싶었어요. 어떤 감동을 줄지 고민하고 있는데 요리를 잘하는 후배가 약밥 케이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결혼한 지 이제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주부에겐 엄청난 일이라 초콜릿으로 글씨 몇 자 쓰는 거 빼곤 엄두도 못 냈지요. 생일상에 오른 거의 모든 음식도 후배가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그럴싸하게 한상차림을 한 뒤에 보니 아주 근사한 케이크가 되었더라고요.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의 반응,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문제는 깜짝 이벤트를 하고 바로 알려 주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감동적인 선물이었다며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어떻게 감동 파괴를 할 수 있겠어요. 본인을 위한 생일상을 받아 본 것도, 서툴지만 이름이 적힌 케이크를 받은 것도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짠해 잠시 즐기라고 뒀는데, 그게 30년이나 흘렀네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요? 살림에 젬병인 제가 약밥을 못 만든다는 사실을 남편이 너무 잘 안다는 거예요.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약밥을 만들거나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준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무한감동인 걸 보면 참 신기해요. 어쩌면 남편도 제가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 상황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말하는 순간 날아가 버릴 아름다운 추억이란 걸 알기에 입다물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게 사실이라면 남편도 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네요?
며칠 전에도 그 얘기를 꺼내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요.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거짓말이지 않을까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남편의 행복을 위해 이 거짓말만큼은 무덤까지 꼭 가지고 가야 할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