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를 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오십 중반 고개를 넘어가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는 노력과 상관없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동경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의 삶을 담은 책 한 권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요.
그런데, 막상 써보려고 하니 너무 어렵네요. 특별한 목적 없이 글을 쓸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잘 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저 다운 글을 쓰기보다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글을 자꾸 쓰려고 해요. 저의 언어와 색깔이 드러나는 투박한 글이 더 맛있고, 더 특별하다는 걸 알지만 자꾸 미사여구를 찾아 헤매고 있지요. 그런 걸 다 걷어내고 여기저기 낱장으로 흩어져 있는 저의 삶을 잘 엮어서 꿰매놓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그래도, 저의 삶이 어떤 책으로 완성될지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너무 초라할 것 같기도 하고, 얼굴 빨개질 정도로 낯부끄러울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더라도 어쩌겠어요. 그게 저인 걸요. 담담히 바라보며 위로해 주고, 괜찮다고 토닥여도 주고, 잘 살았다고 칭찬도 마구마구 해주고 싶어요.
부끄럽지만, 그 일을 위해 한 발자국씩 걸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브런치 작가가 되어 조금씩 글도 발행하고 있고, 매일 글을 쓰며 글 근육도 키우고 있지요. 다시 읽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민망함에 몽땅 휴지통에 버리기도 하지만, 그런 무모한 행동이 쓸 수 있는 힘이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길이란 걸 배워가고 있는 중이에요. 어떤 땐, 첫 문장을 쓰지 못해 며칠을 고민하며 재능을 탓하고 있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이동 중에 잠깐 짬을 내거나 운전하며 녹음을 한 아무 말 대잔치가 불씨가 되는 걸 보고 ‘글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쓰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아프면 아픈 대로, 상처 입어 너덜너덜하면 너덜너덜한 대로 토해내고 보듬어 안는 글을 써서 나누고 싶어요. 좋은 집을 지어주지 못하고 초라하고 낡은 집 밖에 지을 수 없다 해도 제 ‘숨’과 ‘땀’이 배어 있는 저만의 집이기에 자랑스럽고 뿌듯한 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곳에 조촐한 밥상을 차려 놓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많은 책을 읽진 못했지만 책을 읽고 모으는 걸 좋아해요. 하루 종일 틀어박혀 책만 읽다가 엄마한테 쫓겨났던 적도 있어요. 읽을 책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갈증 탓인지 예쁜 옷을 사 입는 것보다 몇 권의 책을 사 나르는 데 더 열심이었죠. 그 욕심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장까지 빼곡히 책이 꽂힌 서재를 갖는 게 꿈이었어요. 책이 좋아서 읽기도 했지만, 허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도 컸었나 봐요.
하지만 이제, ‘쓰려고 읽습니다’란 책의 저자인 이정훈 작가처럼 쓰기 위한 읽기에 매진해야겠어요. 또,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기록하고 영원히 남기는 행위이다."라고 한 하이네만과 "글쓰기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라고 한 에드가 앨런 포의 말처럼 제 마음과 대화하고 내면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필력을 기를 수 있도록 작은 동굴도 만들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