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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대 Mar 30. 2023

퇴사 회고

하나의 미션과 99개의 다른 일

조직과 개인의 성장

매번 그렇듯 조직에서 떠나고 나서야 스스로의 작고 초라한 모습이 보이고, 부족한 부분과 성장해야 할 방향이 또렷이 드러난다.


조직에서의 성공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조직에서의 성공은 잘 짜인 각본과 맞물리는 톱니바퀴 속에서 나도 부서지지 않고 잘 견뎌냈다 정도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개인의 견딤을 감히 '정도'라고 표현하기에 아득히 깊어 충분한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혹자는 조직 내 개인의 역할이 작지 않음을 강조할 것이며, 어쩌면 특출 난 개인의 성공은 조직과 무관하다 말할지 모른다. 물론 나도 스타트업에서는 개인의 역할과 성공이 조직 내외로 큰 임팩트를 주고 잔잔한 수면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문화와 팀원들, 정책적 기조와 지원으로 힘껏 물살을 타고 있는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기에 개인도 함께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다. 조직에 속해 있는 한 개인 혼자만의 성공은 단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취약점을 찾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불안정과 안정의 순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나 역시 그런 탓에 조직이 편하고, 조직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에 툭 떨어졌을 때 위험을 느끼고 생존 방법을 찾는다. 또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더 큰 조직을 이끄는 힘이 생길 것이다.


커리어는 주식시장처럼 사이클을 순환하지만 우상단에 무게중심만 잡고 있다면 결국 상승한다. 그러니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에 무게를 잡고,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면 된다.


기술보다는 도메인이 먼저

B2B 현장에서 AI 수요는 주로 제조, 의료, 광고, 마케팅 같은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대게 공급단가가 높은 이미지 분류나 자연어 처리 쪽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원천기술은 우리가 개발했지만 결과물인 제품은 수요처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갓 출범한 기술회사가 이러한 도메인까지 걸치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AI서비스는 도메인 사이드에서 아이디어가 발생하고, 이런 기술회사에 구현을 맡기는 구조다.


그래서 더더욱 Domain First는 중요하다. 나는 언제나 기술이 먼저라는 입장에 몸서리치며 반대한다. 카카오, 네이버, SK, 신한금융 등 자체 도메인 비즈니스가 있는 기업에서 AI 랩을 구성하고, 자생적인 시너지를 얻는 사례를 생각해 보면 Domain First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많은 창업기업들이 이름만 다른 SI 회사로 전락하는 이유가 기술력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단기적 매출을 위해 외주 작업을 하나 둘 맡다 보면 회사 고유의 방향과 목적성을 잃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사업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는 거창한 SaaS지만 실체는 외주 납품 서비스인 경우가 대다수다. 시리즈 A 이상 밟아온 국내 유명 AI 스타트업을 포함해 정말 많은 AI 업체들이 그렇다.


하나의 미션과 99개의 다른 일

이번 회사에 합류했던 것은 회사의 미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전공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부전공으로 경제를 배운 덕에 금융 시장과 시계열 데이터, 그리고 계량 분석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기반 핀테크 혁신이라는 회사의 미션은 정말 가슴 뛰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모든 회사가 그렇듯 미션이 비즈니스 운영에 최우선이 될 수 없고, 현실적으로 99개의 다른 일이 더 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션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99개의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하나의 미션은 흔들리지 않아야만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듯 모두가 한 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션은 도메인으로부터 나온다. 창의적이고, 감성적이고, 가슴 뛰는 문장은 그간 겪어온 현장과 경험에서 나온다. 도메인은 함부로 넘나들기도, 단기간 우위를 갖추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아하고 곧은 미션은 단단한 도메인이 지탱하고, 그것을 믿고 비즈니스는 나아간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사가 주력하는 비즈니스 도메인이 바뀌게 되었고, 미션도 흔들렸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시야가 흐려졌다고 느껴졌을 때 마음을 다잡고자 퇴사하게 되었다.


관심 있는 도메인 하나와 자신 있는 기술 분야 하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수적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성장하고, 조직을 성장시킬 동력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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