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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Oct 27. 2024

듀오 헤븐 (2)

단편소설

듀오 헤븐 (2)



   내 생각에 어른이란 물러설 때와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무모하지 않고, 동시에 비겁하지도 않다. 물러선다는 말은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 큰 전진을 위해 한발 뒤로 물러서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세계적인 포커 선수 애니 듀크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스토리텔링 공연인 모스에서 좋은 패를 들고서도 한발 물러서야 할 때에 관해 이야기했다. 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상금이 걸린 승부, 당장 손안에 든 무척 괜찮은 패, 의중을 알 수 없는 상대방의 공격적인 올인 선언, 그 모든 게 애니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애니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15초의 짧은 시간마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오빠가 가르쳐 준 상대방의 몸짓을 읽는 방법을 기억해 내곤 그 판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판부터 차례차례 이기며 우승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이 우승한 뒤에, 애니는 가장 기억에 남는 패가 마지막 승부에서 이긴 패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영원처럼 길게 고심한 뒤에 힘들게 버려야 했던 그 중간 승부처의 10번 카드 두 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고백했다. 애니가 그 순간에 상대방의 올인을 수용했더라면, 판돈을 전부 잃어버리고 더는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애니는 가끔 앞으로 나갈 때가 아니라 한발 물러설 때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런 통찰을 얻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본 애니 듀크는 평범하지만, 좋은 인상을 가졌고 별다른 꾸밈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의 수수한 모습은 세계 최고의 포커 선수라는 카리스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이웃집의 젊은 아줌마처럼 보였다. 그런 편한 모습이 내게는 오히려 더 진솔하게 여겨졌다. 호감이 갔다. 나는 유튜브를 보면서 사색에 잠겼다. 이런 여자라면, 나의 결혼 상대로 괜찮겠다고. 무엇보다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여자니까 말이다. 내 경우 짧게 끝나버린 몇 번의 연애 경험을 통해 도무지 물러설 줄 모르는 성격의 여자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정보회사가 제공한 수많은 여자의 프로필과 사진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나도 모르게 애니 듀크와 비슷한 인상을 지닌 여자들을 고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조해선이란 이름을 지닌 여자가 쓴 프로필을 읽게 되었다.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취미란에다 ‘포커’라고 쓴 것이 눈에 띄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애니 듀크가 자신의 포커 승부 스토리를 들려주는 동영상을 본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때인지라,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결혼정보회사에 제공하는 자신의 프로필에다 한국 사람이라면 흔히 도박으로만 여기는 ‘포커’를 당당하게 기재한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나는 그녀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약간 각이 진 턱과 단발머리가 이상하게도 잘 어울려 보였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은 희미한 입가의 미소와 함께 어딘지 모르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않을 유형 같았다. 나는 조해선의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읽기 시작했다. 나이는 스물아홉, 대학교에서 전공은 화학공학과였다. 직장에서 하는 일은 연구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밖에 딱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비고란에 유기 녹차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자신의 이상형은 ‘팀 버튼’와 ‘에단 호크’라고 적혀 있었다. 팀 버튼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에단 호크라면 나도 괜찮은 배우라고 인정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취미가 포커라는 것 이외에 그다지 끌리는 건 없는 여자였다. 그래도 나는 조해선을 내가 만나보길 희망하는 명단에 올렸다. 커플 매니저는 며칠 뒤에 조해선 씨와 미팅이 잡혔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화번호와 미팅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약속 당일까지 따로 연락하지 않는 게 일종의 매너라고 안내했다. 미팅 날짜 이전에 전화 연락을 시도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 하루 전날에 느닷없이 문자 메시지가 왔다. 조해선이 보낸 문자였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자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서 약속 시각과 장소를 변경하고 싶다는 거였다. 커플 매니저가 삼가라고 일러준 충고를 조해선이라는 여자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오히려 더 커졌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하여 토요일 오후에 미래에 나의 배우자가 될지도 모르는 여자가 알려준 새로운 약속 장소, 바로 그 음산한 카페 듀오 헤븐(Duo Heaven)에 나가게 된 것이다. 




(계속) 내일 다음편이 이어집니다.


대문 출처 : 움베르토 보초니, <거리의 힘들>과 <동시적 시각들>에 대한 연필 습작.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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