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실 건가요?
여섯 일곱살쯤 때였을것 같다. 엄마에게 물었던 것을 또렷히 기억한다.
'엄마, 우린 부자야?'
그 질문에 엄마는, '그런 건 니가 걱정 안해도 돼. 넌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라고 하셨다.
나는 그 질문을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했지만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을 했던 그 때가 경제관념, 가난과 부자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난 내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해 답답했고 그렇게 나의 호기심을 의식적으로 싹을 잘라야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아마 한 번쯤은 같은 질문을 부모님께 했을테지만, 그들도 뾰족하게 다른 답을 얻진 못했을 것 같다. 그 시절엔 우리 부모들은 당신들께서는 못 누리더라도 자식들에겐 가난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돈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상스럽다고 생각하시기까지 했다 (유교 문화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굶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상대적 빈곤을 경험한다.
친구 아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외제차를 타고 등교한다고 고급 외제차를 사자고 조른다고 했다. 친구는 그 말을 하면서 그럴 수 없는 형편임을 아들에게 다소 미안해 하는 표정이다. '지가 벌어서 사서 타고 다니라고 해라.' 라고 냉정하게 말했지만, 아들의 바람대로 해 줄 수 없는 내 친구의 부모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아이가 '엄마, 우린 부자야?'라고 물어볼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답하는가?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해 주면서 경제관념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을까?
'응. 우린 부자야.'
'아니, 우린 가난해.'
단순히 이렇게 대답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이 엄마처럼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세상이: 엄마, 우린 부자야?
엄마: 응. 그런 거 같아.
세상이: 우리가 부자라면 왜 우리반 수호네보다 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차도 작아? 그리고 수호는 장난감도 나보다 많단말야.
엄마: 세상아, 큰 아파트에 살고, 큰 차를 타고, 장난감이 많다고 부자는 아니야.
세상이: 왜 아니야?
엄마: 엄마가 세상이한테 용돈을 만원을 주고, 세상이 동생 우주에게 용돈을 오천원을 줬어. 그럼 누가 더 부자야?
세상이: 내가 더 부자야!
엄마: 근데 우주가 오천원으로 장난감을 사버렸어. 이제 우주는 돈이 없어.
그럼 누가 더 부자야? 장난감이 있는 우주야, 아니면 만원이 있는 세상이야?
세상이: 내가 더 부자야!
엄마: 맞았어. 그럼 만원이 있는 세상이는 오천원짜리 장난감이 있는 우주보다 얼만큼 돈이 더 있는 거야?
세상이: 응. 오천원!
엄마: 왜?
세상이: 우주 장난감이 오천원이고 내가 만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만원에서 오천원을 빼면 오천원.
엄마: 그런데 우주 장난감은 이미 갖고 놀아서 이미 헌 것이 되었잖아. 가게 가서 똑같은 새 걸로 사면 오천원이지만 우주가 갖고 놀던 것은 헌 것이라 새것 처럼 오천원을 받을 수 있을까?
세상이: 몰라.
엄마: 세상이라면 오천원을 갖고 헌 거 살래, 아니면 새걸 살래?
세상이: 새 거 살거야.
엄마: 맞아. 사람들은 새 장난감을 살 거야. 그러니 우주의 헌 장난감은 오천원보다 더 싸게 팔아야 팔릴거야. 그렇지?
세상이: 응.
엄마: 그럼 얼마에 팔아야 우주의 헌 장난감이 팔릴까?
세상이: 몰라.
엄마: 세상이가 한 번 팔아봐.
세상이는 그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우주의 헌 장난감을 4천에 팔았다.
엄마: 자, 우주의 헌 장난감은 4천원짜리가 된거야. 이제 세상이는 우주보다 얼마나 더 부자야?
세상이: 6천원.
엄마: 맞았어. 처음에는 5천원 차이였는데 우주가 장난감을 사 버려서 차이가 더 커졌어.
이제 장난감이 많다고 왜 부자가 아닌지 알겠니?
세상이: 그럼 우리가 수호네보다 더 부자야?
엄마: 수호네가 얼마나 부자인지 정확히 알 순 없어. 세상이가 돼지 저금통에 얼마나 모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처럼 수호네도 돈이 얼마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거든. 그건 나만의 비밀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호네나 다른 누구네하고 얼마나 돈이 많은가 비교할 필요도 없어. 어떤 사람은 돈이 있는 것 보다 장난감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돈을 갖고 있는 게 그 사람에게 더 중요 할 수 있으니까. 그치만 엄만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해.
세상이: 왜?
엄마: 우리 집은 매일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고, 따뜻한 집이 있고, 일년에 한 번은 가족 모두 여행도 가고 재밌잖아.
세상이: 그건 다른 집도 다 하는 거잖아.
엄마: 그래? 그럼 다른 집들도 다 부자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국가에서 조사를 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들이 한달에 3백 2십만원을 번대. 그런데 우리 집은 엄마랑 아빠랑 모두 회사에 가서 돈을 버니까 그것보다 더 많이 벌거든? 그러니까 우리 집은 중간 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세상이: 그럼 우린 아주 부자야?
엄마: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자는 아니야.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이 아프면 회사에 나갈 수 없잖아. 그럼 돈을 못 버니까 우리 집 돈이 더 적어지겠지? 또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니까 병원비가 필요하고. 또 세상이랑 우주가 크면 공부를 계속하는데 돈이 필요해. 엄마, 아빤, 이런 걸 준비하는 것이 큰 아파트나 큰 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세상이가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으는 것처럼 엄마 아빠도 따로 저금을 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