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Nov 18. 2023

눈을 싣고 가는 차

 차를 굳이 밖에 주차한 건 슈크림 8박스를 냉장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날씨라 일교차가 심했고 집 베란다에 두는 것보다 여러모로 간편할 거 같았다. 마지막이길 바라는 주말 출근, 지긋지긋한 300만 원을 8명에게 차근차근 쓰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부분 부분 하얀 눈이 소복했다. 간간이 눈송이가 내렸지만 쌓인 건 오랜만이라 괜히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조용히 수건을 챙겨 내려갔다. 강아지가 깝죽거리며 냄새를 맡는 동안 앞 유리를 수건으로 훑었는데 서리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시골에선 어떻게 했더라.’

 플라스틱 끌 같은 도구로 서리를 제거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해보겠다고 떼를 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최대한 비슷한 걸 찾아내 눈을 긁어냈고 아무렴 수건보다야 나았다. 밖에는 눈을 싣고 달리는 차가 몇 없었다. 엔진 열기에 금방 녹은 것 같기도 하고, 부산 전체에 눈이 내리진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출근은 9시까지였고 어제 먹지 못한 크랜베리 샌드위치가 있길래 따뜻한 라테와 먹으려고 차를 세웠다. 카페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고 나 다음으로 한 청년과 중년이 종종걸음으로 카페에 도착했다.

 “뭐 마실래?”

 “저는 따뜻한 라테요.”

 “뭐 이상한 걸 마시노.”

 이상한 거라니. 제법 추운 날 마시기 좋은 음료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모른다고 괴상한 취급을 받아버린 라테 대신에 내가 좀 발끈하고 싶었다. 청년이 안쓰러워 보였다.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시선 둘 곳이 없어 메뉴판을 보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내 차로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 차 위에 실린 눈이 신기한 듯했다. 아저씨는 눈을 작게 뭉쳐 청년에게 보여주며 경사면을 가리켰다. 그러곤 그 경사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던 때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 동네 토박이처럼 보였고 청년은 일을 배우는 중인지 뭔지 썩 가깝지는 않아도 서먹해 보이진 않았다. 그 모습에서 영락없는 20대 청년 둘이 보였다. 아저씨는 청년이 몰고 온 냉동 탑차를 향해 눈덩이를 던졌고 눈덩이는 탑차에 흔적을 남긴 채 흩어졌다.

 “따뜻한 라테 두 잔 주세요.”

 주짓수 도장의 아저씨들이 생각났다. 괄목할만한 나이 차에도 여전히 장사 같은 힘을 발휘하는 40-50대와 대비되는 나 그리고 몇몇 30대를 보며 우리의 차이가 뭘까 싶었다. 나는 출퇴근에 허덕인다. 주짓수 도장에 오는 것부터가 도전이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힘들지도 않은지, 30분 스파링 후에도 젊은 애가 기운이 없다며 애정 섞인 장난도 치는데 기력이 넘쳐 보인다.

 라테를 이상한 음료로 치부하지만 결국 한 잔 마시고 마는 아저씨와 랩의 아저씨들은 어딘지 모르게 얄밉지만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까지 싫지는 않다. 사회 어딘가가 자꾸 뻥뻥 뚫리는 구멍에 관한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음에도 확실히 주변에는 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아저씨들이 든든했고, 이유 없이 싫기만 했던 노화의 실루엣은 생각했던 것만큼 해괴하지 않았다. 그건 자못 포근한 달항아리 같은 모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