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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9. 2024

사랑하려면 사랑할 수밖에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몇이나 있을까. 마음이라는 것도 살아보니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호르몬 농간에 울기도 했다 웃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게 마음이다. '생각'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금세 그 생각을 접는다. 이미 기울어져버린 편견 속에서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게 있기는 할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내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커지지 않기에.

 같은 6학년인데 올해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궁합이라는 게 있다면 나와 우리 반 사이의 궁합은 최악인 듯싶다. 다행인 것은 우리 반 학생들은 나만큼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건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반 애들이 선생님 엄청 좋아하던데요?"

 그 한마디가 뭐라고 난 한결 가벼워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 여쭤보니 우리 반 학생들이 내려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내용이 그렇다고 하셨다. 보건 선생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길, 수업 중에 내가 학생들 앞에서 춤을 춘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그걸 회상하며 꺄르르 웃어댔단다.

 장점이 많은 학생들이다. 공부나 손재주도 있고 여태 가르쳤던 반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밝고 명랑한 학생이 많아 게임할 때나 무리 지어 놀 때 쫑긋 들으면 화기애애하다. 활기찬 학생 중 제일은 재훈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학생인데 귀엽기로 말할 거 같으면 그것 또한 단연 1등이다.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데 1분 이상 소리를 내지 않으면 병이라도 걸리는 사람처럼 강박스럽다. 그래서 귀엽다. 혼이 난 뒤에도 기죽지 않고 끊임없이 떠들며 애교를 떠는 게 꼭 강아지 같다. 우리 반 학생이 대체로 그렇다.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으면.

 문제는 단점이 장점을 가린다는 것이다. 입이 거칠다. 표현이 서툴다. 당연히 말이 많으니 상성이 안 맞는 장점과 단점이다. 화기애애 잘 가다가도 크게 삐끗하는 말실수 연발이라 매일 혼나고 매번 잔소리다. 그게 꼭 친구를 향한 막말은 아니고 앞에 서 있는 어른을 무시하는 행실도 서슴지 않아 진이 빠진다.

 그러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반을 지켜보았다. 매주 화요일 6교시는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시간이라 학기 초부터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렸는데 3월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도서관에서 큰소리가 자주 오갔다. 귀속말이나 소곤거리는 게 아니라 쉬는 시간처럼 얘기를 나누는 학생들에게 분마다 초마다 조용히 하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 노력이 오늘에서야 발현된 걸까. 쥐 죽은 듯 조용하진 않았어도 3월에 비해 많이 양호해졌다. 그 모습이 뭉클했다.

 자아도취에 빠지진 않겠다. 내 실력이나 내 가르침의 결과는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다만 우리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달이 지날수록 체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돌이켜 보면 자기 멋대로였던 학생들이었는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순간이 점차 늘었고 나 또한 그들의 반응이나 언어에 익숙해져 여유롭게 반응하는 기술이 늘었다. 우리의 성장이 이다지도 기쁘다니. 아직 갈 길이 머나 희망이 보인다. 올해는 영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미워하지는 말자 다짐했는데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파도를 타고 해안가에 다다르면 보드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바닷속으로 폴짝 뛰어들 땐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특히 썰물 때 조심해야 한다. 깊을 거라 생각하고 뛰어내렸는데 생각보다 얕아 관절에 무리가 가면 다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몇 시간 서핑에 심취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물이 차오른다. 조심스럽게 뛰어들었다가 푹 잠기는 일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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