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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Feb 11. 2024

60살까지만 할 거야

내 엄마랑은 다르게 살고 싶다.

"아이고.. 허리야!"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일이 저녁 9시에 끝났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


내 나이 26살 새댁이었을 때, 며느리 시절에는 시댁에서 전 부치고 장만하느라 종일 종종 거렸는데..."나 때는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작년 9월에 결혼한 아들의 부인인 나의 며느리는 명절 하루 전날인데 전화 한 통도 없다. 그냥 내일 시어머니 댁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집도 좁고 음식장만 한다고 와서 있으면 식사 챙기고 하는 일들이 더 번거로울 것 같아서 젊은이들 편하게 해 준다고 남편이 아들 내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단다. 내 며느리인데 남편은 당신 어머니 즐거울 일만 생각한 것일까. 손주 며느리가 얼마나 예쁘겠는가. 나도 동의한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오락가락이다. 


'내가 당한 명절 살이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각성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상황이 다르다.

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남편도 거들어 주고 아들도 거들어 주고 딸도 거들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나를 거들지 않았다. 큰 딸은 시험이 있다고 내려오지 않았고 막내는 방에서 자느라 나오지 않는다.

 

"나는 며느리한테 내가 하던 것을 그대로 물림 하지 않을 것이고, 명절 연휴에는 가족여행을 가고 싶어요. 어차피 차례 지내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라도 어머님은 아주버님댁에서 잠깐 모시고 있으면 안 되나요?"라고 남편한테 이야기했는데 남편은 서운했던 것 같다. 함께 여행 다니기엔 어머님이 연로하신 때문이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어디를 간다는 생각을 아예 못한다.

보통 때 같으면 함께 만도 한데 모른 척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만 만지작 거리다 어머님 댁으로 간다. 부쳐놓은 몇 가지 들고 어머니 점심 챙기러 건너가는 것이다. 우리 집은 102동, 어머님은 104동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남편은 효자이고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북적대고 시끌시끌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 그렇지 않은 편이고 어머님께도 살뜰한 며느리도 못된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며느리다. 남편은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원하는 것은 뭐든지 우선적으로 챙긴다. 만약에 손주 며늘에게도 나한테 했던 것처럼 "이래라저래라"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으셨다. 


남편에게 먼저 "내 며느리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건데 어머님이 무슨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선포를 했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오늘 나를 엿 먹인 거 같다.

'어디 혼자 할 테면 해봐라. 당신도 며느리면서 며느리한테 당해봐라.' 이런 걸까. 씁쓸하다.


호박전, 소고기 전, 동태 전, 버섯 전, 동그랑땡, 야채 전, 잡채, 시금치나물, 콩나물, 숙주나물, 고사리나물, 갈비찜을 마무리했다. 시댁으로 보낼 것이랑 내일 친정식구들 점심에 먹을 것이랑 나눠서 음식을 정리하면 보통 명절전야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가지 일이 더 남았다. 

아들내외가 명절선물이라고 보내준 전복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전복 20 미를 손질하느라 저녁나절 내내 싱크대 앞에서 전복과 씨름했다. 한숨을 몇 번이나 토했는지 모른다. 버터구이 좋아하는 막내딸, 친정엄마를 위해 전복죽을 끓이겠다는 일념으로 전복에 최대한 집중을 했다. 나의 다리와 발바닥은 퉁퉁 붓고 종아리에서는 경련이 일어났다. 


내일 친정머머니가 5년 만에 요양원에서 외출을 나오신다. 새배 오는 친정동생 가족들과 어머니를 위해 전복죽을 끓이려고 한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이후로 명절이면 누나라고 우리 집에서 모여 저녁을 먹는다. 이번 설에는 아침을 시댁에 가서 상차림하고, 점심은 집에서 차림을 해야 한다. 엄마가 11시부터 4시까지 외출 허락을 받아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명절이라고 가족들이 모여서 먹고 안부 전하는 거 좋다. 그런데 꼭 명절에만 이렇게 모두 만나야 하는 걸까. 평상시에 만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차례 지내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황금연휴에는 가족 여행을 가는 것으로 하고 싶다. 


누구를 위한 명절연휴란 말인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기도했다. 

'주님, 오늘 음식준비를 하면서 가족의 건강을 위하는 기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함께 음식을 먹을 식구들을 생각하며 육신의 고달픔으로 힘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천사머리띠를 했다. 앞머리가 길어서 일하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 덕분인지 예전보다는 마음이 차분했다. 혼자 일을 하면서도 툴툴 거리는 마음이 덜했다. 

손은 뒤집개를 잡고 프라이팬 위를 휘둘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언제까지 내가 이걸 할까, 내일 며느리 얼굴 보고 해야 할 말을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들로 핑퐁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일을 했다. 


60살까지만 전 부칠 거다. 그 이후는 다음 세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할 것이다. 명절이면 여행 떠나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가족을 위한답시고 한 사람의 희생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한 하루다. 맛있게 먹어주면 감사하다. 건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날까지만 하자. 그때가 언제일까.


"60살까지만 할 거야. 얘들아! " 

연차 없이 쓸 수 있는 휴가를 이렇게 힘든 노동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

"시간이 되고 형편이 되어서 너희들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안된다면 엄마라도 여행을 갈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너무 이기적인 엄마일까!

나의 엄마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멋진 식사와 풍경을 상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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