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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05. 2024

6월 7일, 재량휴업보다 더 무서운 것

내겐 너무 무서운 '부사'

2024. 6. 4.

< 사진 임자 = 글임자 >


"7일에 하루 쉴까?"

"애들도 그날 쉬는데. 재량휴업이래. 어디 가려고 생각해 둔 데 있어?"

"아니, 그냥 아무 데나 가지 뭐."

"뭘 또 아무데나야? 이왕이면 미리 계획하고 가면 좋지. 날마다 닥쳐서 급히 정하더라."

"괜찮아. 애들이랑 어디 놀러 갔다 오자."

"내일모레가 7일인데 벌써 말하는 거야?"

"당신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지금 무슨 예약이나 되겠어? 남들은 진작 했을 텐데? 우리 오라고 하는 데가 있을까? 생각 있었으면 진작 말할 것이지."

"이제 알아보면 되지."

"또 옛날처럼 휴게소에서 잠자고 싶어?"

"아무튼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그 생각이란 것을 한 두 달 전에 미리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왕 여행 가려고 마음먹었다면 말이다.

남들은 연휴 되기 전에 최소 한 두 달 전에 미리미리 준비한다는데(물론 소문으로만 들었다. 우린 거의 닥쳐서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아니 우리가 아니라 정확히는 '그 양반'은 좀 그런 편이다.) 7일이면 내일모렌데 벌써 계획을 세우려고 하시다니, 부지런도 하셔라.


"얘들아, 아빠가 너희도 학교 안 간다고 어디 여행 가자는데 어때?'

"아빠, 제발 집에 좀 있읍시다."

"그래, 아빠. 그냥 집에 있자."

올봄에 좀 무리해서(정말 저 양반이 왜 저러시나 싶게, 이게 말로만 듣던 이별 여행은 아닌가 싶게) 매주 어딘가로 향했던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은 원성이 잦았다.

물론 갔다 와서는,

"정말 즐거웠어.'

라는 말로 태도를 180도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

"더 더워지면 너희 엄마도 힘들어서 지금 가야 돼. 이젠 진짜 며칠 안 남았어."

걸핏하면 나는 무기로 삼으신다.

하지만 또 틀린 말은 아니니 잠자코 있을 수밖에.

"그래, 얘들아, 아빠 바빠지면 너희가 여행 가고 싶어도 못 가. 아빠가 가자고 할 때 가야 돼."

나까지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아이들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나저나 정말 내일모레가 7일인데 이렇게 빨리 중대발표를 해버리면 어쩌느냔 말이다, 내 말은.

"지금 사무실에서 금요일에 필수요원만 남기고 다들 하루씩 휴가 내라는 분위긴데."

"자기가 필수요원이잖아. 제일 힘없으니까 남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튼 쉬라고 할 때 쉬어야지."

"근데 다들 그날 쉬겠다고 하면 어떡해? 그래도 한 명은 남아야지. 그리고 다 금요일에 쉬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안되면 난 월요일에 쉬려고."

"뭐?"

"다들 쉬는 분위기이니까 나도 쉬어야지."

"근데 월요일은 애들 학교 가야 하는데? 그럼 체험학습 신청해야 하는데. 그것도 미리 신청해 놔야지 닥쳐서 내면 안된단 말이야."

"괜찮아. 전날 내도 돼."

"그건 본인 생각이시고."

학교에서는 최소한 체험학습 가기 일주일 전에는 신청서를 내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학교에서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인데, 그 양반은 그렇지 않다. 하루 전이든 이틀 전이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어쩜 사람이 본인 생각만 할까? 학교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좀 그렇게 해야지. 그러니까 내 말은 계획이란 걸 미리미리 좀 세우라 그 말이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까 걸핏하면 하루 이틀 전에 눈치 보며(괜히 나 혼자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느라 입장이 난처할 때가 종종 있다. 하긴 그런 걸 언제 한 번이라도 해 봤어야지. 학교 돌아가는 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이, 아니 학교에서 근무도 해 본 사람이지만 어설프게 아는 척하면서(내 눈엔 세상 어설픈 사람처럼 보였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식이다. 모르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이왕이면 금요일에 쉬면 애들도 어차피 학교 안 가니까 그날이 좋을 것 같은데."

"월요일에 쉬어도 나는 좋지. 월요일에 어디 가도 되고."

"애들 학교 가지 말라고 하고?"

"애들 학교 가면 그럼 당신이랑 둘이 나가면 되지."

보자 보자 하니까 또 이 양반이 선을 넘으신다.

말이면 다인줄 아는 양반, 어디서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시는 거지?

나랑 둘이?

누구 맘대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가긴 나랑 어딜 가?"

"왜? 나랑 같이 나가자."

"하여튼 진짜 이기적이야. 본인 생각만 하고. 옛날에 내가 나가자고 할 때는 죽어도 안 나가더니, 이제 내가 같이 다니기 싫다니까 걸핏하면 같이 나가자고 하네."

"우리 둘이 나가서 놀고 오자."

"우리라고 하지 마. 난 싫어. 혼자 있고 싶어."

"그러지 말고."

그러지 말긴, 그러는 댁이나 그러지 마슈.

"그냥 혼자 쉬어. 요즘 피곤하다며? 푹 쉬어. 난 할 일도 많으니까 나 알아서 할게."


옛날에는 호환, 마마, 호랑이, 불법 비디오테이프가 가장 무서웠다고 하지만, 단언컨대 6월에 갑자기 휴가를 낸 그 양반과 외출이라도 하게 될까 봐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본인 생각만 하는지, 남 생각도 해 줘야지.

적어도 나는, 부부가 자녀도 동반하지 않고 대놓고 '단둘이' 외출하는 일은 '최소한 징역감'이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기로소니 그런 것도 모를까 봐?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쳐서는 아니 된다.

근래에 그 양반에게서 들은 가장 무서운 말, '같이'라는 부사,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따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부사는 차라리 '따로'였다.

그 양반이 만에 하나 월요일에 쉬겠다고 하면, 만약에 그런다면,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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