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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8. 2024

세미한테 왜 그러셨어요?

그 많은 세미들은 다 어디로?

2024.7. 7. 남의 집에 돋은 수세미(앞쪽이 수세미임)

석,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 그날이 어제는 아닐 것 같다(그 칠월 칠석은 음력으로 7월 7일이니까)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나는 만나러 갔다, 나의 세미를.

장마철이라 텃밭에 떨어진 수세미 씨앗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 맘대로 돋고 있는 요즘, 이번 주에는 잘하면 수세미 꽃도 볼 수 있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세상일은 다 내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텃밭 담 아래로 정성스레 심어 둔 수세미들이(정말 나는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소중한 그것들을 신중하고도 진지하게 하나하나 옮겨 심었었다.)화를 입었다.

어제 기대감을 가지고 친정에 가서 본 현장은 처참했다. 분명히 꽃망울을 맺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수세미들이 청양 고추가 심어진 땅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얼핏 보고 나는 웬일로 느닷없이 여기에서 이렇게 수세미가 잘 크고 있나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땅에 심겨 있는 게 아니라 줄기가 모조리 꺾여서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나뒹군다는 그 표현으로밖에는 그 처참한 현장을 형용할 길이 없었다.

텃밭 담 아래에도 나란히 크고 있어야 할 그 자리는 휑했다. 푹푹 찌는 습도 높은 장마철이지만 나는 시렸다, 마음이, 몹시도.

내가 세미를 얼마나 사랑해 마지않는지 다 알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담?

"귀찮다."

내지는

"나중에 성가시다."

라는 그런 말들로 엄마와 아빠는 나의 소중한 그들을 몽땅 뽑아버리셨다.

다시 한번 나는 손바닥만 한 내 땅조차 없는 설움에 겨워 마음이 쓰라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땅 소유자가 당신들의 의사대로 처분하시겠다는데 그 땅에 아무 지분도 없는 나는 혼자만 속상해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방법도, 이제 와서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재주도 없다.

2024. 7. 7. 생강밭의 이단아

그 와중에 생강밭에서 늦게서야 돋아난 저 익명의 '세미32호'의 운명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리니라.

빈틈을 노려 텃밭에서 맨 가장자리에 해당되는 편인 위치에 부모님 몰래 수세미를 최대한 촘촘히 심었다.

원래는 넝쿨이 뻗어나갈 것을 감안해서 띄엄띄엄 심어야 하는데 지금은 일단 심고 보는 거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2024. 7. 7. 돌틈에 돋은 재주도 좋은 수세미(막 돋은 수세미도 보임)

그래도 속상한 내 마음을 누그러뜨려주는 반가운 장면도 있었다.

텃밭 돌틈 사이에 하나 둘 돋은 수세미가 있었다.

어머, 웬일이니?

딱 저만할 때가 제일 예쁘더라.

사이좋게 돋아난 양 날개, 푸르른 동그란 날개, 그 날개를 보면 나는 그만 날고싶을 지경이다.

마당 곳곳에 잔디 사이에서도 수세미는 종종 발견됐다.

횡재했다.

내가 작년에 수세미 껍질을 벗기던 딱 그 자리다.

올해는 잔디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감감무소식이더니 이제야 얼굴을 내미는구나.

그나마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발견된 나의 세미들이 있어 아주 많이 침울해지려다가 말았다.

수세미도 은근히 생명력이 강하다.

씨만 떨어졌다 하면 거의 여지없이 돋는다.


제발 늦가을까지 뽑히지 않고 무사해야 할 텐데.

어젯밤, 내가 작년에 수확한 천연 수세미를 교체해서 설거지를 하면서 나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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