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남의 집 김치라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우리는 김장을 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그날 엄마의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항상 둘째 새언니네 친정에서 먼저 김장을 하시고 우리 친정으로 보내주신다. 거기엔 항상 내 몫도 있고 말이다.
둘째 새언니 입장에서는 친정도 가깝고 시가도 가까운 편이다. 새언니가 양쪽 집 중간쯤에 사는 셈이 돼서 언제나 시가에 왔다가 친정에 갔다가 바쁘다. 우리 쪽에서 새로운 맛난 음식이 생기면 언니네 친정에 보내고 언니네 친정에서도 자꾸 음식을 보내 주신다. 어쩔 땐 양가 어머니들이 서로 나눠 먹기 위해 작정을 하시고(?) 대량으로 구매를 한 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이바지 음식을 서로 주고받는 것도 아닌데 일 년 내내 끊이질 않는다. 물론 중간에서 반사적 이익을 톡톡히 누리는 이는 단연 나다.
새언니의 친정에서는 항상 우리 몫까지 더 챙겨 주시기 때문에 황송하기 그지없다.
반찬, 과일, 떡, 생선 등등 아무튼 뭐만 생겼다 하면 새언니가 우리 친정에 가져다 나르는 덕분에 나까지 호강하고 산다.
올해 김장 김치도 새언니네 친정표로 처음으로 맛보았다. 친정은 토요일에 하기로 했고 시가는 다음 주 일요일쯤 하신다고 하셨다.
"엄마, 또 새언니네 김장 많이 하셨어?"
"600 포기 했다더라."
"뭐? 그렇게 많이?"
말이 600포기지, 무슨 김치 공장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무슨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하셨담?
"그렇게 많이 어떻게 김장하셨을까? 새언니 몸살 났겠네."
"새언니는 안 한단다. 심부름만 하제."
"그래도 심부름하는 것도 일이지. 한두 포기도 아니고 600 포기나 되면 심부름하는 것도 힘들겠네. 몸살 나지 왜 안 나겠어. 근데 새언니도 김장 안 하면 누가 그 많은 걸 다 해?"
"이웃에서 같이 하제. 동네에서 다 같이 와서."
생각해 보니 새언니네 친정은 항상 그 정도의 양을 했던 것 같긴 하다.
점점 그 양이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영문을 몰랐을 때는 거의 충격적이었다.
새언니네 친정은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자식은 새언니뿐이라 어디 나눠 줄 자식이 더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다 어디에 쓰시려고 그렇게 하시나 싶었다.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새언니네 친정보다 더 많은 김장을 하는 집은 여태 보지 못했다. 가끔 이맘때 영상을 보다 보면 사찰이나 큰 단체 같은 곳에서 수 백 포기씩 김장을 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내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근데 엄마, 그렇게 많이 김장하셔서 다 뭐 하려고 그러시지? 어차피 언니네 부모님 두 분밖에 안 계시고 가져다 먹을 사람은 새 언니네밖에 없을 거 아니야?"
"다 여기저기 나눠주려고 그런단다. 성당에도 주고 동네에 혼자 사는 양반들 김치도 담가준다고 그렇게 많이 한다더라."
"아, 그래? 작년에도 다 나눠 주시더니 올해도 그러시네."
새언니가 직접적으로 내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나도 엄마에게 들은 소리가 있다.
새언니의 친정은 평소에도 성당에서 봉사도 많이 하시고 혼자 계신 어르신들을 챙기신다고 했다. 특히 김장철이 다가오면 이웃과 나누기 위해 그렇게 어마어마한 김치를 담그신다는 거다.
듣고만 있어도 내 삭신이 쑤시는 느낌이다.
우린 거기에 비하면 아주 약소한 거였네, 생각해 보니.
올해 엄마는 100 포기를 예고하셨으니까 말이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하겠지?
사돈 사이라도 계산(?)은 확실히 해야겠지?
계산이라고 하기엔 좀 뭐 하지만 아무튼 사람이 양심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나도 뭔가 보답할 것을 준비했다.
항상 우리 가족을 잘 챙겨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종종 수제청을 만들어 드리곤 한다.
지난번에는 레몬청과 자몽청을 드렸고 이번엔 날씨도 쌀쌀해졌으니 생강레몬청을 준비했다.
새언니에게도 김치를 받아 온 그날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인사치레하긴 했지만 말로만 끝내기엔 살짝 서운했다.
새언니에게 뭔가를 줄 때면 항상 새언니의 친정 생각이 나서 언제나 두 배로 준비를 한다.
언니네도 언니네 친정 부모님도 모두 따뜻하고 건강한 겨울을 나길 바라며 안 깨지게 조심히 배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