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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딱서니가 맏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시누이짓의 시작

by 글임자
2025. 8. 3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 할머니 여기 새도 키워요? 새장도 있네요?"


어머?

새라니?

새장이라니?

이게 다 무슨 소린고?

그건 새장이 아니라 생선 말리는 거라고요, 이 철딱서니 아가씨야!


할머니도, 나도, 그리고 어떻게든 장남의 첫(번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처음으로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온) 여자친구를 보기도 전에 나에게 시누이짓 같은 건 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엄마마저도 그녀의 느닷없는 말에 어리둥절하다 못해 어이없기까지 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새언니 말로는 그날 눈이 엄청 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날씨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에게 했던 그 많은 말들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마당에 생선을 말리는 그물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하필이면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었고 파란 그물로 촘촘하게 짜인 네모난 그 물건을 보고 새언니는 자그마치 '새장'씩이나 떠올렸던 것이다. 엄마는 어쩌면 그녀의 방문을 대비해, 그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그 안에 흔해빠진 멸치라도 몇 마리 집어넣어 놨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새장은 무슨 새장! 생선 말리는 거제!"

할머니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대꾸하셨다.

"어머, 그래요? 아, 여기다 생선을 말리는 거구나. 꼭 새장 같이 생겼네요. 전 집에서 새를 키우시는 줄 알았어요."

새언니는 그 물건이 자신이 짐작했던 그 용도의 물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자 자못 아쉬워하는 눈치였다.(고 나만 혼자 넘겨짚었다.)

닭을 키우고 소를 키우는 것까지도 벅찬 마당에 새라니? 느닷없이? 몰라도 너무 모르네, 이 아가씨가. 그 당시 시골집에서 새를 키운다는 집은 없었다. 집집마다 소나 닭, 개를 키우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그것이 새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그 안에 새들 들여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너무나 당연한 말 아닌가?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러니 새는 새장에, 생선은 생선 그물망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차라리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도시에서 온 그녀는 어쩌면 한 번도 집에서 생선을 말리는 풍경을 보지 못하고 자랐을 수도 있다. 내가 평생 그렇게 생긴 것은 당연히 생선 말리는 용도로만 생각하는 것처럼. 아마도 내가 도시 남자 친구를 사귀었고 그의 집에 새장이 있었다면 새언니처럼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어머, 어머님, 집에서 생선을 다 말리시나 보네요!"

이렇게 말이다.

한 번만 상대 입장이 되어 보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닌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우리는 그저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나야 항상 할머니나 엄마가 생선을 사서 직접 손질하고 말리는 풍경을 익숙하게 보아 왔으므로 집에서 그런 간단한(?) 일을 하는 것쯤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터였지만 새언니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그러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만 해도 이미 잘 손질된 생선을 그저 먹을 줄만 알지 직접 손질해서 말리는 번거로운 과정은 피하고 싶으니까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는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일을 벌이곤 한다.)

"그럼 생선을 집에서 말리지 어디서 말리냐?"

평생 모든 걸 집에서 해결하셨던 할머니는 손주의 여자친구가 하는 말에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한마디 보태셨다.

"할머님, 저 할머님께 이쁘게 보이려고 치마 입고 왔어요. 호호호."

그녀는 거침없이 말하며 할머니의 두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한겨울이었다.

치마를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물론 내 기준에서만이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내복을 위아래로 입고, 이듬해 5월은 되어야 그것들을 벗고 지냈던 꽃다운(물론 이것도 내 기준에서만이다.) 여대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니, 정말 그런 마음에 그리 입고 왔더라도 저렇게까지 애교스럽게 할머니 앞에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돈을 주면서 하라고 해도 나는 못할 것이다.(라고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 금액이 얼마인지에 따라 눈 한번 질끈 감고 고려해 봄 직도 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만큼 나는 무뚝뚝한 성격이다.)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는 시골 사람들인 우리 입장에서는 좀체 받아들이기 힘든 패션이었다.(이 또한 내 기준에서만 말이다, 물론.) 긴 바지 안에 내복을 입어도 모자랄 판에 치마라니!

한겨울에 과감한 치마 하며, 저 상냥하고도 애교스러운 말투, 게다가 나도 잘 안 주물러드리는 할머니 다리를 처음 만난 그날 당장 주물러 드리는 저 넉살! 난 도저히 그녀처럼 행동할 수 없는데, 지금껏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성격의 소유자가 우리 집에 오신 것이다.

엄마도 무뚝뚝한 편이고, 나도 그런 편인데(세상에 나처럼 애교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던 그 양반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도대체 그 양반은 얼마나 애교스러운 여자들과 사귀었단 말인가!), 내 주위에서도 결코 본 적 없는 캐릭터의 등장에 우리 집 세 여자, 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또 잠시 당황스러웠다.(생각해 보니 할머니도 우리와 비슷한 성격이셨다.) 다짜고짜 애교스럽게 행동하는 새언니를 보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도시 사람은 다들 저런가?

다들 저렇게 상냥하고 애교스러운가?


세상에는,

놀랍게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한겨울에 치마를 입고 남자친구 집에 첫인사를 가서 처음 보는 할머니 앞에서 애교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도시 아가씨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언제였던가.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거다.

한 번 우리 집에 온 새언니는 그 후로도 몇 번 왔던 것 같다.

"가서 깻잎이나 뜯어 와라."

할머니가 내게 소일거리를 주셨다.

"깻잎이요? 어머, 집에 깻잎도 있어요?"

새언니는 나를 따라나서며 말했다.

집 근처 텃밭에서 깻잎과 부추가 자라고 있었다.

"너무 신기해요. 깻잎을 집에서 키우는 거 처음 봐요. 아, 깻잎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신기하네요."

아마도 그녀는 남자친구 집에 체험학습을 온 줄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닭을 보고도, 소를 보고도, 연신 감탄하며 세상을 막 알아가는 어린아이마냥 신이 나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이미 스무 살도 넘은 성인이다.) 우리 집의 모든 시골 살림이 그저 신기하다는 투였다.

"할머님, 밖에 나가면 깻잎이 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가서 바로 따서 먹을 수도 있고, 진짜 신기해요."

"시골이니까 그러제!"

할머니는 시큰둥하게 답하셨다.

"정말 시골은 다 신기하네요. 필요한 건 직접 심어서 키워서 먹을 수도 있고. 그쵸, 할머님?"

"그럼 시골에 살면서 다 키워서 먹지 사서 먹냐? 땅 놔두고?"

"그래도 진짜 신기해요. 호호호."

"너는 당연한 소리를 다 한다."

"어머, 상추도 있네요, 할머님? 진짜 신기해요. 시골에는 다 있네요."

할머니는 혀만 끌끌 차셨던 것 같다.

나도 속으로는 쯧쯧, 하고 있었다.

도시 사람이라 그런가?

우린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그녀는 그저 다 새롭고 신기하다고 했다.

아니 이 아가씨가 왜 이러실까?

배울 만큼 배운 아가씨가, 자그마치 대학생이면서, 알 만큼 알 텐데, 고작(?) 그런 일로 저렇게 흥분하며 신기해하다니!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다. 도시 아이들은 벼가 나무에서 자란다고 알고 있다고.(그러나 그게 그냥 근거도 없는 우스개 소리인지 정말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새언니의 반응을 보면 어쩌면 아무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던 새언니에게 남자친구의 시골집은 모든 면에서 신세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좀,

그러니까,

철이 없는 거 아닌가?

당시 거의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던 사이였으므로 나는 오지랖 넓게도 별 걱정을 다 했다.

"엄마, 저 언니 진짜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네. 그러요, 안 그러요?"

"저 정도는 괜찮하구만, 어째 그러냐?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너는 벌써부터 시누짓 할라고 그러냐?"

엄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는 벌써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일단 딸과는 전혀 반대의 성격인 것이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맞다.

그녀는 참 순수했다.

새언니는 여전히 순수한 사람이다.


언니,

이제 새장이랑 생선 그물망 정도는 구분하지?


...서...설마?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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