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도 (낮)잠 못 이루는 시누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왜 아무도 없어? 언니는 어디 있어?"
"언니 잔다. 조용히 해라."
거실은 텅 비었고 집에는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큰 오빠네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이상했다.
애들은 밖에 나가서 논다고 치더라도 새언니라도 있어야 하는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명절 연휴, 내가 시가에 다녀오고 느지막이 친정에 가면 종종 저런 일이 벌어진다.
"언니 자니까 일어나면 그때 봐라."
엄마는 행여라도 당신의 소중한 맏며느리를 하나밖에 없는 딸이 호들갑을 떨면서 깨울까 봐 미리 당부하셨다. 새언니를 깨울 생각도 하지 말라고.
나도 그런 엄마 앞에서,
"엄마, 내가 왔는데 언니가 자고 있단 말이야? 이젠 일어나야지!"
라는 '정신 나간 소리' 같은 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명절 치르느라 얼마나 고단했을꼬?
항상 다른 며느리들보다 (이상하기도 하고, 이해도 안 되지만, 물론 언니의 의지인지 큰오빠의 고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 새언니는 '그래도' 다른 며느리들보다 더 늦게 머물다 가는 편이다. 맏며느리는 뭔가 좀 더 해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았다. 평소 하는 말만 듣더라도 말이다.
나도 시가에 가면 맏며느리이지만, 아직 시동생이 미혼인 관계로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지만 그런 의무감 같은 건 없는데(굳이 그런 걸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 큰 새언니는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아 보인다.
"언니, 언니도 친정에 가야지. 여태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나도 친정에 왔는데 언니도 친정 가야 할 거 아니야?"
"괜찮아, 아가씨. 더 있어도 돼. 그래도 어머님이랑 내가 좀 더 있어야지."
이렇게 말이다.
"언니가 고생 많이 했다, 상 차리고 설거지한다고. 좀 더 자라고 놔둬라."
안 봐도 다 알겠다.
나 빼고 엄마의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이 다 모이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우리 식구가 도착하지 않을 경우 기본이 13명이고 우리까지 합세하면 소소하게 총 17명이다.
게다가 아빠는 참~ 손님 초대를 좋아하신다.
특히, 명절에 지나가며 인사하는 사람들도 다 붙잡고 상 차리기를 원하신다.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며느리들 고생 좀 그만 시키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엄마도 힘들다고 그렇게 입 아프게 얘기했는데도 말이다.
그 많은 수의 가족들 상을 차리고 치우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손님들, 친적들을 상대하느라 고단하기도 고단했을 것이다.(물론 큰 새언니 혼자서 다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두 며느리들도 같이 하지만) 나라면 그런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불만일 텐데 새언니는 참 무던하기도 하다.(아니, 어쩌면 속으로는 힘들고 넌덜머리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언니 편이 돼서 이렇게 '명절을 쇠는 방식'에 대해 개탄하며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어서 빨리 언니의 시아버지가, 즉 나의 친정 아빠가 하루빨리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시정하시기를 요구할 뿐이다.(물론 새언니는 아무 말 못 하고 나만 줄기차게 주장해 오는 중이다.)
"엄마랑 언니만 있고 다들 어디 갔어?"
"아빠랑 오빠들은 애기들 데리고 할아버지 댁에 인사드리러 가고 우리만 남았다. 언니는 집에서 좀 쉬라고 내가 가지 말라고 했다."
그나마 새언니가 숨을 좀 쉴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생긴 셈이다.
나라면 못한다는 소리가 하루에도 열 번 넘게 나올 텐데 새언니가 정말 고생이 많다.
며느리의 고생을 아니까 엄마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말고 푹 쉬라고 낮잠을 자든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신다.
그나저나 이렇게 오래 자고 있으면 내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데.
"언니가 나 오면 같이 얘기하자고 하더니 오래 자네?"
"좀 기다려 봐라. 이제 일어나겄지."
내가 친정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라 나는 슬슬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낮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나의 경우, 시가에서 낮잠을 잔다는 건 택도 없는 소리고(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집에만 있다. 그래서 내가 혼자 조용히 쉴 공간이 없다. 며느리에게 이 점은 아주 치명적이다. 며느리도 혼자만의 시간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평생 시가에서 사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할밖에. 아마 시가에 가는 많은 며느리들의 고충이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 가족이 친정에 가면 가끔 사위는 '용케도' 방 한 칸을 차지하고 푹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안 맞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새언니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상하게 점점 친정에서 자는 게 편하지만은 않다.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은커녕, 낮잠도 자는 게 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옆에 누워서 이제나저제나 새언니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없었고 그냥 집에 갈까 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새언니가 기상하셨다.
"어머, 아가씨? 언제 왔어?"
"난 어젯밤부터 와 있었지."
"그랬어? 호호호."
"나보고 빨리 와서 얘기하자고 하더니 잠만 자고 있었어?"
"내가 좀 피곤했나 봐."
"나도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언니가 보자고 해서 기다린 거야."
"그래. 아가씨도 피곤하겠다. 가서 고생 많이 했지?"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새언니뿐이야.
며느리 마음 며느리가 안다고 언니는 항상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격하게 공감해 준다.
얼른 집에 가서 널브러져 있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는데, 그날도 뉘 집 올케와 시누이는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수다를 한참이나 떨었다지?"
"아가씨, 더 얘기하면 좋을 텐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면 하자."
그렇게 몇 시간을 얘기하고도 새언니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어허, 이 언니가 만족을 모르시네?나도 집에 가서 좀 쉽시다!"
"그래, 알았어. 다음에 또 봐, 아가씨."
"그래. 언니도 얼른 보따리 싸서 집에 가서 쉬어."
내가 과감히 자르지 않으면 새언니는 아마 밤새 말을 걸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랑 얘기하는 것보다, 동서들이랑 얘기하는 것보다 나랑 얘기하는 게 더 좋다나 뭐라나?
"난 아가씨랑 얘기하는 거 참 좋은데."
"언니, 언니는 왜 언니 생각만 해? 내 생각도 해 줘야지, 안 그래?"
"호호호, 그래. 알았어. 이제 언제 다시 보려나? 너무 아쉽다.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아가씨."
"무슨 연락을 또 해? 하지 마. 나 바빠."
"호호호, 알았어, 아가씨."
내가 하는 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평소 우리는 저런 식의 대화를 잘 한다. 그래서 내가 저렇게 말해도 언니는 그냥 웃어 넘겨버리기 일쑤다.)헤어지며 새언니는 벌써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럴 땐 일단 내빼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