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9년 전>
"내가 너 때문에 일 더해야 하냐? 응?"
임신한 게 죄였을 때가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스물셋이었다.
혼전 임신이었다. 남자친구와 사귄 지는 3개월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반려자가 되었다.
평생 함께할 사람을 이렇게 쉽게 골라도 되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재고 따질 줄 모르는 소녀였다. 이미 내 속에서 싹튼 소중한 씨앗이다. 버리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술이나 담배는 원래 하지 않았지만, 몸을 힘들게 했다. 일부러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고, 일부러 야근을 했다. 그렇게 생명이 내게서 떠나가기를 삼일 째 밤새워 울던 날 밤 아랫배에 손을 대고 애원했다.
"미안해, 이런 엄마여서 미안해. 이젠 내가 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거야. 꼭"
젊은 나이였지만 하루종일 서서, 무거운 박스를 옮기는 마트의 일은 쉽지 않았다.
점장님은 나보다 17살이나 많은 분이었는데,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임신한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애써 모른척하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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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점심시간에 우리는 산책을 한다. 팀장님과 담배 피우는 선임분들은 먼저 올라가고 산책할 사람들은 한 바퀴 돌며 성난 배를 잠재운다.
"애 셋을 어떻게 키우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애 둘은 꼭 낳고 싶은데, 서울 살면서 양가부모님 도움 없이는 절대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한 명만 낳으려고요."
"맞아요. 저도 시댁 옆에 살아서 그나마 회사도 다니고, 애 셋이여도 키워지기는 하는 것 같아요. 하하.
K님은 아이 생각 없으세요? 아직 신혼이지만, 아이 낳는 거 추천해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저는 늘 있죠. 어릴 때부터 아이들 너무 좋아해서 꿈이 선생님이었어요."
나는 아직 물질적으로 가진 게 없지만, 아이들 때문에 주말 내내 기가 빨려 폭풍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낳길 잘했다. 큰아이가 9살, 둘째가 4살, 막내가 3살이 되어 조금은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밖에서는 극 E성향이지만, 집에서는 극 I성향으로 이렇게 침대에 앉아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가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아이 셋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인가? 나에게 이렇게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겨주어도 되는 것인가? 난임이 유행이라는데, 세 명 다 한 번에 생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인가?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가도 또 딸 셋이 언니언니! 부르며 서로 싸우다가 잘 노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내가 늙어 죽어 없어져도, 자기네들끼리는 의지하고 살지 않을까. 딸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더 가까워진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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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엇?!?!(여자의 촉감, 아니 엄마의 촉감)"
금요일 퇴근길.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도중 K와 마주쳤다.
"저기, 혹시......??"
"음, 맞아요. 사실 맞아요."
K는 임신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지금 30주, 8개월이라는 것이다.
키도 크고 날씬해서, 겨울이라 니트에 조끼는 누구나 걸쳐 입어 둔해지기에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사실 며칠 전에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으나, 아니면 실례일까 봐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정말 축하해요. 이때껏 말도 못 하고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팀장님 한테만 말씀드렸어요. 저도 늦게 알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올해 진급차수인데, 다음 달에 출산휴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너무 걱정이 많아요."
올해 진급대상자이기 때문에 임신을 알리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혹여 회사사람들을 마주칠까 봐 출퇴근 때 임산부 배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8개월이면 정말 만삭인데, 꽁꽁 싸매고 다녀서 그런지 딸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앞으로만 나와서 그런지 정말 티가 안 난 그.
K의 고민은 어쩌면 내가 다 거쳐왔던 인생이었다.
"네가 15년도 입사인데... 19년도 진급했고, 대리 진작에 진급했어야 했는데 올해 23년인데?"
"아, 팀장님 제가 연차로는 8년이 넘는데, 육아휴직을 3 번써서 4년 6개월을 쉬었지 뭐예요. 하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도 올해가 진급차수다. 대리로 진급하려면, 대리이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난 그렇지가 않다. 선임분들은 연차가 올라가면 당연히 달아야 하는 게 대리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시켜주면 더 열심히 똑 부러지게 일하는 수밖에!
아이 셋을 낳으면서도 이렇게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시댁에서 아이들을 봐주시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지만 '나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내려놨다고나 할까. 육아휴직을 한 번 다녀오면, 다니던 사람도 그만둬서 안보이기도 하고 한동안은 그전의 업무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둘째, 셋째 육아휴직 2년 6개월을 연달아 쉬었을 때는 '과연 내가 사회에 속해져 있는 사람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또다시 돌아갈 마음도 없었다. 온전히 내 정신이 아기에게만 집중이 되기 때문에, 내가 그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2년 6개월을 쉬고 돌아왔을 때는 정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회사에 직원들 대부분이 인원감축으로 자진퇴사를 한 상태였고(우리 남편 포함이다) 나도 매장에서 본사로 오게 되어 정말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도 복직했냐고 연락 왔던 점장님들, 나처럼 본사로 오게 된 매장동료들 등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었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생각보다 나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K에게>
많이 힘들었지요? 금요일 퇴근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대화했던 50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또 함께 위로받게 되었어요. 임신한 건 K님인데, 왜 제가 더 감동적일까요.
엄마가 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 대고 있어요.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며,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생각을 했지라고 생각해보기도 해요. 그러면서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아요. 엄마도 이렇게 나를 키우며, 당신을 어른으로 키웠구나.
저는 철이 들기 싫어요. 아이들과 같이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바보같이 춤을 추기도 해요.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기가 아주 어릴 때는 정말 힘들어요. 그렇지만, 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다른 강도의, 좀 더 심오한 단계의 힘듬이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넘어 어른이 되기까지 아마 쉽지는 않겠죠? 저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믿어요. 그래서 평일에 일하며 겪는 스트레스도 주말에는 더 힘든 육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일터로 돌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하하)
회사랑 K님 집이랑 가까우니, 아기 낳고 정말 힘들 때 연락해요. 잠을 못 자거나,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때, 그냥 외로울 때, 그냥 눈물이 날 때, 아기가 안쓰러울 때 그냥 아무 때나 좋아요. 제가 가서 1일 도우미 해드릴게요. 이건 정말 진심입니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저도 주변에 도움받을 곳이 아무 데도 없었고, 친구도, 친한엄마들도 없었어요. 그러니 친구가 필요하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