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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이월 Sep 21. 2022

뉴욕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규칙 하나

게으름뱅이의 여행법

    

뉴욕으로 떠나기 전, 뉴욕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규칙 하나를 정했다. 매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서기. 유일한 규칙이었고, 지킬 자신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새벽 6시쯤 일어나 평균적으로 25km를 한 달 동안 걷기도 했으니까. 


뉴욕에 머문 지 2/3가 지나는 지금 그 규칙에 대해서 말하자면, 실패했다.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가 있긴 있다. 이를테면 오전 10시 15분에 미술관 도슨트를 예약해두었는데 그 미술관은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서 굳이 9시에 집을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럼 그 외에는 잘 지켰는가? 솔직히 털어놓는다. 9시에 집을 나서기는커녕, 9시를 넘겨 일어난 적이 여러 번이다. 예정된 업무를 하느라 새벽 5시쯤 잔 날에는 한낮까지 늘어지게 잤다. 하루 3만 보를 걷고 난 다음 날은 푹 쉬어야 했다.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았고, 서둘러서 아침 일찍 나가야 할 만큼 일정이 빠듯하지도 않았다. 


상벌을 정하지 않은 규칙이라, 실패에도 벌은 없고 성공에도 상은 없다. 규칙을 세운 목적은 단 하나.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는 거였다. 매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서기로 한 규칙은, ‘9시’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나서기’에 초점을 둔 규칙이다. 그러니 ‘나서기’를 잘했으면 사실 실패로 보지는 않는다. 


그럼 나는 규칙의 본뜻을 잘 지키며 여행하고 있을까? 창피하니까 대답은 이걸로 대신하겠다. 

“…….”


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으름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으나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는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급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은 명백히 부지런과는 거리가 멀다. 설거지가 귀찮아(요리하는 건 더 귀찮고)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빨래를 널 때야 빨래를 갠다. 인터넷만 된다면 2주는 꼼짝도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낼 자신도 있다. 놀랍게도 여태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2주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은지 확인해보지 못했다. 


뉴욕과 함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게으름을 열렬히 사랑한단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여행 어디로 가?”

“뉴욕이랑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어디야?”

“캐나다. 들어본 적 있어?”

“아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빨간 머리 앤≫ 작가의 고향이야. ≪빨간 머리 앤≫의 배경이 바로 그곳인데, 거기에 초록지붕집을 재현한 곳이 있대.”

“맞아. 넌 앤을 좋아하지.”

“응. 책 주인공 중에서 제일 좋아.”

“≪빨간 머리 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집도 사고, 소품들도 되게 많이 모으더라. 너도 그래?”

“응? 아니.”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앤의 일대기를 세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방의 벽 한쪽을 앤에 대한 소품으로 채운 적도 없었다. 방에 앤이 그려진 패브릭 천이 하나 걸려 있기는 하지만, 앤이 좋아서 패브릭 천을 샀다기보다는 패브릭 천을 사려고 했는데 마침 앤이 그려진 게 있었다. 무언가를 수집하지 못하는 성향인 걸 차치하더라도 무언가를 모으지 않은 만큼 그 대상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은데, 나는 정말 ≪빨간 머리 앤≫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슷한 대화는 뉴욕에서도 이어졌다. 


“한달살이 하시는구나. 좋겠다. 뉴욕에서 공연도 보셨어요?”

“알라딘이랑 해밀턴 봤어요. 슬립노모어도 보려고요.”

“원래 뮤지컬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이 뭐예요?”

“마틸다요.”


그렇지만 내가 ≪마틸다≫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좋아하는가. 엄밀히는 작품 ≪마틸다≫를 좋아한다기보단 뮤지컬 ≪마틸다≫의 넘버인 <When I grow up>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더 명확하다. 


‘좋아한다’의 의미에는 ‘안다’가 포함되어 있다. 첫 두근거림은 앎이 없이도 가능하지만, 두근거림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앎이 없어선 안 된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그 사랑에는 두툼한 앎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앎을 부풀리는 그 과정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자발적인 탐구이기에 훨씬 더 단단하게 응축되었으리라. 


나는 한 번도 게으름에 질려본 적이 없고, 게으름이 무엇인지 알고, 게으름을 피우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므로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건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다른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지 못한 건, 게으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앎을 얻기에는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게으름을 짊어지고서 그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가 않다. 


게으름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게으름을 사랑하는 삶을 살 마음은 없다. 다행히도 때때로 책과 여행은 게으름을 이기곤 한다. 그래서 게으름에서 가장 쉽게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 책을 들고 떠나는 여행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할 일이 많은 도시로 가는 여행은 더더욱이 게으름뱅이에게 좋다. 해야 하는 걸 다 하려면 침대에서 빈둥거릴 시간이 없으니까. 


그러니 뉴욕에서까지 게을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자리에 몇 시간을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고, 책을 읽는 것도 괜찮지만 뷰가 없는 숙소에서는 안 된다. 내가 뉴욕에 있다는 걸 까먹게 되고, 뉴욕에 있다는 걸 자꾸 까먹으면 침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적어도 숙소 맞은편에 있는 카페라도 가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 


이제 뉴욕 여행은 열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까지 포함하면 보름 정도가 남았다. 이쯤에서 다시 규칙을 세운다. 이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매일 집을 나서기. 게으름을 이기고 나서면 여행은 의미가 생기고 ‘나서기’는 곧 낭만이 된다.                





+ 이 글은 뉴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카페에서 썼다. 두 번 헛걸음을 하고서야 드디어 등받이가 없는 의자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열 블록쯤 떨어져 있고 뉴욕에 사는 이들이 좋아하는 카페여서,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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