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고독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꽤 괜찮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친한 친구들도 있고, 사회생활도 그럭저럭 원만하게 하는데 별안간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시기에 나를 외면하거나 떠나가는 것 같을 때.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드는 그런 시점이 있다.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론 오만가지 생각으로 내적 손절을 일삼는 내게 그 감정은 주기적으로 받는 벌처럼 찾아온다.
그럴 땐 우주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걸 태초의 고독이라고 이름 붙였다. 처음 느낀 게 사춘기 시절이니 역사가 꽤 깊다. 1년에 두세 번 느낄 때도 있고 3년 만에 느낄 때도 있다. 느끼는 강도는 얼추 비슷하지만 내가 미리 예견할 수도 없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그저 단 하룻밤. 태초의 고독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곱씹지 않은 채 침대 위에 웅크려 있을 뿐이다. 내가 누운 면적만큼만 내게 허용된 땅이고, 그 외는 닿아선 안 되는 블랙홀이라도 되는 듯 움직이지 않고 그저 고독을 받아들인다. 잠들려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눈을 감거나 뜬 채로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의 궤적들을 따라가 본다. 그러다 어느새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면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지는 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제의 나와 다음 날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예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 강철 멘탈이 무너질 때 내가 더 예민해지고 더 약해져서 그런 고독감을 더 잘 느낀다는 것을. 나는 종종 나와 가까웠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거나, 내가 살면서 형성한-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관을 공격받을 때 멘탈이 무너진다. 경중도 따로 없어서 사소한 일에 무너지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으려 하고, 웬만한 일을 '럭키비키'로 퉁쳐버리는 내 멘탈이 무너지는 그 틈새. 그 틈으로 평소에 의식도 않던 크고 작은 일들이 나를 공격하고, 나는 의욕을 잃어버린 채 동굴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태초의 고독감을 느끼면서 절망하고 끝이 없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론 태초의 고독을 '본격적으로' 느끼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시기 나는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거나 나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는 불안한 정서를 보인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나의 변화를 눈치챈다.
최근에 사내 인사 발령으로 원치 않는 부서로 이동하게 됐다. 이전 부서에서 꽤나 업무적 만족감을 느꼈던 터라 상실감이 컸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내 고집만 세울 수 없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알고 보니 내가 이동한 자리를 강력히 원하던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그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으로 돼있었다. 나도 원하지 않은 자리를 빼앗았다고 하니 참 우습지만.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 주변이 나를 그렇게 '강탈자'로 몰았다. 이따금 그들은 쉽게 내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단지 내가 여기로 이동했다는 이유로. 타인의 의도를 잘 알아차리지만 눈치 없는 척 둔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택한 나는 결국 몇 년 전에 있었던 또 다른 일을 떠올려야 했다.
그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때는 내가 원한 인사이동이었다는 게 다르다. 나는 기뻤지만, 내 후임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옮길 자리로 가고 싶었지만, 내가 있던 자리로 옮겨야 했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험담했다. 그 소리는 오래지 않아 내 귀에까지도 들렸고, 나는 그가 나를 '저까짓게'라고 표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때는 태초의 고독까지 빠지지 않았다. 앞서 밝혔듯 나는 꽤 강한 멘탈을 가졌고, 다른 사람의 험담에 신경 쓰는 게 얼마나 허무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 잘 안다. 내가 부정한 방법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인사 발령일뿐이었다. 운 좋게 내 의견이 관철됐을 뿐. 이 과정에서 원망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인사 담당자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공격들을 나는 철저히 무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러자 갑자기 멘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또다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누군가의 승진 기회를 박탈했다면 할 말이 없겠다. 그런데 이건 그냥 평사원 간 이동일뿐이다. 그리고 정치력 발휘도 엄밀히 그 사람의 능력 아닌지? 수년간 한 조직에 몸담으며 여전히 이방인 취급받는 나란 존재에 회의감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다 정글 같은 이 조직에서 내가 먹이사슬 하위권에 있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상위 포식자라면 저들이 나를 이렇게 대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조직 전체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년에도 그 후에도 매년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내가 옮기는 자리에 따라서 이유 없는 적대감을 마주해야 한다. 그건 건강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싸울 수도 없고, 그저 무시하기엔 속이 상하니 가까운 지인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냥 나를 응원해 주고 나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데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갑자기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특별히 멀어질 이유는 없었는데, 하필 그즈음 연락을 해도 답장이 매우 느렸고, 만나자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확답을 피하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것처럼 보였다. 바쁜 일이 있겠지, 생각했지만 평소의 태도와 너무 달라서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오기가 생겨 더 연락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이즈음 떠나기로 예정된 사람처럼 그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그런데 물어볼 수가 없다. 왜 물어볼 수 없지? 무척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나와 멀어지는지 물어보지 못할 만큼 가까웠던 게 아닌 걸까.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바뀐 업무에 적응하기를 몸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일에 쫓기면서도 이런저런 일을 신경 쓰다 보니 우울감이 나를 서서히 좀먹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잠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잤다. 멘탈이 약해진 그 틈새로 나쁜 생각의 연기가 마구 스며들어 나를 어둡게 물들였다. 업무에 적응하기도 싫고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들었다. 점점 예민해지면서 생각과 망상만 잔뜩 이어가고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백색소음을 좋아해서 집에 오면 TV부터 켜기 바빴던 내가 며칠째 리모컨조차 잡지 않은 사실을 어느 날 깨달았다. 침대 위에 웅크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결국 그렇게 또 한 번 태초의 고독에 떨어졌다.
태초의 고독에 떨어진 다음 날도 상태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럭키비키'라며 긍정적 표현을 일삼았던 내 심연에 사실은 외면하고 회피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후폭풍처럼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쓴다는 걸, 사람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어쩌다 마음을 열었다가 이렇게 멀어지면 몇 배로 상처받게 된다는 걸 나는 잘 알면서도 외면하고 회피한다. 그런 외면이 쌓이고 쌓이다 넘쳐버리면 결국 태초의 고독에 빠지는 거다. 괜찮은 척하는 나를 내 자아가 비웃으며 블랙홀 같은 어둠으로 밀어 넣듯이.
하지만 그런 태초의 고독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건 결국 나와 가족과 친구들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나 한결같이 따뜻하게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그러면 나도 내 의지로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 나온다. 비록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외면하더라도, 나는 내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키워간다고 확신한다. 가끔 무너지는 것도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유다. 한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의욕이 생긴다. 그렇다고 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을 어느 정도 털어낼 정도의 용기는 생기는 것이다. 그럼 마음에 남아있던 일들이 흉터처럼 심연에 새겨지는 것 같다. 그 흉터는 가끔 눈에 보이고 만져지겠지만, 통증을 유발하진 않는다. 나는 그런 흉터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또 한 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