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MBTI가 기분따라 바뀌면

확신의 N이 S에게

by 윤서A

최근 MBTI 검사를 다시 해봤다. 결과는 INFJ로 같았지만, 이번에는 성분을 유심히 분석했다.


내향형과 외향형을 가르는 항목에서는 I 성향이 40%로 예전보다 조금 늘었다. 가끔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나를 떠올리면 '이러다 E가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자리에 있으면 피곤하고 '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걸 보면 아직은 전형적인 I다. 약속이 취소되면 기쁘고, 약속이 연달아 잡히면 괴롭다. 그런데 또 이건 때로 상대적이라, 나는 I 중에서 E가 되기도 하고, E 중에선 파워 I가 되기도 한다. 친한 사람과 모일 땐 소리 지르고 방방 뛰며 텐션이 한없이 올라가서는 I들에게 "너 E 아니야?"라는 의심을 받다가, 어색한 자리에 갈 땐 테이블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돌아온다. 특히 E들의 모임에서는 팔짱을 끼고 그들의 텐션을 그저 관망한다. 최근 E들이 모인 자리에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의 끝없는 매력발산과 회수할 생각 없는 플러팅 향연에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기억이 있다. 그러곤 그때 기빨린 이야기를 I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가 이런 지적을 받았다. "너 지금까지 오디오 한 번도 안 비고 떠든 거 알지. 그때 기빨렸다고 너보다 더 I인 나 만나서 기빨리게 하는 거야?"


감각형과 직관형 중에서는 직관형인 N이 무려 88%였다. 이건 인정.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만약 길가다가 우주선을 발견한다면, 만약에 우주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등등 '만약에'로 시작하는 모든 질문과 망상을 좋아하는 나로선, 머리 감고 샤워할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긴 힘들다. 매일매일 상상하느라 바쁘고 그 망상 속에서 기쁘고 슬펐다가 우울해야 제맛인데(?).


사고형(T)과 감정형(F)은 뜻밖에 F 55-T45로 팽팽했다. 이것도 인정.

얼마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던 중, 미용사가 낮에 있었던 소동을 들려줬다. 어떤 손님이 무작정 와서 환불을 요구하며 소리지르고 난동을 피웠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경찰에 신고 했어요?"라고 묻자 미용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지더니 이렇게 물었다. "고객님 혹시 T세요?"

"너 T야?"라는 말을 들은 건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당장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평소 내가 T 친구들에게 쉽게 "너 T야? 티발 C야?"라고 놀리던 일들을 새삼 반성하기도 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미용사가 덧붙였다. "다른 손님들에게 이 이야기해주니 대체로 너무 놀랐겠다고 하시는데, 차분하게 경찰 신고 했냐고 말씀하셔서요."

나는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나 영화 소설을 읽을 땐 과한 F가 되었다가, 잘 모르는 사람이나 긴박한 상황에 부닥치면 철저한 T가 된다. 특히 싸울 때 나의 T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면서 가까운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는 내 일처럼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거나 기뻐한다. 다들 바쁠 때는 혼자만 너무 태평할 정도로 차분해져서 칭찬과 조롱을 함께 듣기도 하는데, 이건 T와 관련이 있을까?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J는 60%, 즉흥적이고 유연한 P는 40%가 나왔다. 예전에는 J가 90%였을텐데. 최근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게 좀 반영된 듯한 수치다.

여행 계획을 세워도 촘촘하게 짜고, 일정이 틀어질 경우 플랜 B부터 F 정도까지는 세워야 직성인 내가 최근 어찌할 수 없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아무리 계획적으로 살아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일이 틀어질 경우의 스트레스를 미리 받다보니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성에 잘 맞아서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꼼꼼한 성격이면 상관없겠지만, 체질 자체가 한량인 나는 사실 그렇게 꼼꼼하진 못하고 복잡하게 계산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주변에 "나는 이제 P로 살거야"라고 선언하기도 했는데, 이게 또 "P를 만만하게 보지마라"며 무수한 P들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어쨌든 유연하게 행동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럭키비키' 심정으로 대처하다보니 요즘 즐거운 일이 더 많아졌다. 아마 몇 개월 뒤 재검사하면 나는 INFP 또는 INTP가 돼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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