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읽씹’ 안 하면 안 되겠니?!

슬픔

by 윤서A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또는 일을 하다가 스마트폰을 켜면 제일 먼저 부재중 전화가 왔는지, 그리고 카톡과 문자메시지가 새로 온 게 있는지 확인하는 편이다. 워치를 쓰고 나서는 이럴 필요가 좀 줄어들었지만, 영화 관람 중이거나 누군가와 대화에 열중할 때를 제외하곤 수시로 폰을 보는 편이어서 한 시간 내 응답 확률이 꽤 높은 편이다.


그런 나에게 ‘안읽씹’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맞다. 더 정확히는 ‘안읽씹’은 어떤 의도가 있어야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내 안읽씹은 신중하고, 반대로 안읽씹을 당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물론 남녀 모두 통틀어!

나는 ‘더글로리’의 하도영처럼 무응답도 응답이라도 생각하는 쪽이라, 정 싫으면 읽씹을 택한다. 나만 그런 걸까.




내가 카톡이 온 것을 확인하고도 ‘안읽씹’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경우다. 그리고 단톡방은 제외(혼자 엄격).


1. 연락하기 싫은 사람의 카톡(80%)

-호감 없는 이성의 의미 없는 안부 연락, 친분관계를 더는 발전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의 연락, 또는 그리 급하지 않아 보이는 업무상 연락 등 모두 포함이다.


2. 심리전(15%)

-연인과 싸우고 난 뒤 너무 칼답하기 싫어서 자존심 세울 때, 또는 썸 타는 중 괜한 밀당 부려보고 싶어서 답장 늦게 하고 싶을 때, 가까운 사람과 싸우고 나서 ‘난 아직 화났어’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싶을 때 등이다.


3. 바쁘거나, 모르는 사람의 연락(5%)

-기타 범주는 그리 많지 않다. 누가 봐도 잘못 보낸 거 같은 내용과 이름이 떠있거나, 모르는 사람의 이름으로 사진을 보냈다던지의 내용이 떠 있을 때 등이다. 이 경우는 드물다. 또 정말 그날 하루 너무 바빠서 급하지 않은 연락인 것만 확인한 경우도 있겠다.


그럼 이제 시간으로 나눠보자. 그렇다면 내가 안읽씹을 유지하는 시간은? 도대체 언제까지 카톡에 뜬 빨간 숫자를 참을 수 있는가?로 질문의 대체가 가능하다.


1. 9시간(70%)

-평일 업무시간 또는 주말 나들이 상황에서 가능하다. 나도 바쁘기 때문에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이 휙휙 지나가기 때문이다. 한나절 정도. 오전 9시에 온 연락을 퇴근 후쯤 여유롭게 답장할 순 있잖아?


2. 3시간(29.09%)

-심리전의 경우 3시간은 넘기지 않는 편이다. 물론 바빠서 9시간이 될 순 있지만 손절할 것 아닌 다음에야 나도 그렇게 오래 성질부리긴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당일 경우에는 더 빨리 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


3. 하루(0.01%)

-만약 내가 하루 이상 안읽씹 상태라면 그건 위급한 무슨 일이 생겼거나 나에게 손절당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스마트폰이 고장 나고 PC카톡마저 접속이 어려운 정도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읽씹 상태여야 한다.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싫거나 할 말이 없으면 ’ 읽씹‘으로 무응답이라도 반드시 한다. 요즘엔 공감스티커라는 좋은 기능이 생겨서 읽씹도 무안하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저런 확고한 원칙이 있다 보니 반대로 내가 안읽씹 당할 때 기분이 상당히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대화를 이어나가기 싫을 때 주로 반나절 정도 연락을 외면하는 걸 택하다 보니, 상대도 나처럼 대화를 이어가기 싫어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게 그 이유다.

특히 나랑 만날 땐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고, 평소 연락이 잘 되던 사람이 안읽씹 하면 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혹시 내가 뭘 실수했나? 무슨 일이 있나?’

하지만 다음 날 여전히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은 대화창을 보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나랑 이야기하기 싫구나’


그래, 사람의 변덕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냥 무응답으로라도 답할 순 있잖아. 내 카톡의 붉은 숫자 1을 며칠째 내버려 둘 만큼 너무 바빠? 아니면 그 정도로 나랑 이야기하기 싫은 거니? 안읽씹은 너만의 응답 형태인 거니?


가장 화나는 건 먼저 연락 와서 만날 날짜를 잡는다던지 또는 어떤 진행이 필요한 이야기를 한창 하다가 안읽씹 당할 때이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굉장히 걱정할 수밖에 없다. 혹시 내 카톡방이 보관 처리됐고 이 때문에 서로가 알림을 보지 못해 연락이 단절된 건 아닌지 하는 망상과 슬픈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런 사람 중 대다수는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연락이 온다. 그래서 답하면 또 안읽씹이다. (ㅂㄷㅂㄷ)


쓰다 보니 굉장히 화나면서도 짜치는(?) 기분이 든다. 그게 뭐라고 그냥 나도 똑같이 무시하면 되는데 이렇게 기분이 나쁘단 말인가.

그건 내가 안읽씹에 의미를 두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내 기준에서) 내가 외면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슬픈 걸지도. 그리고 이런 슬픈 예감은 대체로 맞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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