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에 적합한, 꽤 감상적이고 예민한 기질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는 성향 또한 강했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글쓰기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감도 높은 레이더를 열심히 돌린다 한들 집구석에 틀어박혀서는 새로운 글감을 얻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바깥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고는 직장이 전부였다.
내게 직장이란 발을 딛기가 무섭게 벗어나고 싶은 곳, 지겹고 권태로운 업무가 반복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대상이 들끓는 곳에 불과했다.
어린이 집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아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어린이 집 교사가 됐냐고 묻는다면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일단 아이를 싫어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좋고 싫고를 따져보지 않을 만큼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편으론 어린애 정도 쯤, 하면서 속으로 은근히 얕잡아본 것도 사실이다.
어린이에 대한 무지함은 차치하고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는데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걸 잘하고 잘 못하는지 같은, 스스로에 대한 주제파악이 전혀 안되어 있었다. 직업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었을 뿐 직업의식이나 소명 같은 것을 품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고찰이나 자각 없이 되는대로 인생을 막 살아온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라 할 수 있겠다.
직장 가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아이도 싫었다. 그런데 직업이 어린이 집 교사라니...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을까?
글쓰기를 시작하고 한동안 일상이 그저 반복되고 평범하기만 한 것에 불만을 가졌다.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지 글로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어딘가로 훌쩍 모험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단박에 뜯어고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모험과 탐험을 즐기는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현실에서 생활인으로 사는 이상 일상이 항상 새롭고 흥미진진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기함할 만한 말썽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에너지와 인내심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나는 완전히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아이를 쥐 잡듯 잡아서라도 문제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잠깐동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상황을 단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화면이 켜진 티브이를 아무 목적 없이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와, 이걸 하나하나 글로 쓴다면 책 한 권이 나오겠다."
말은 분명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노다지다.
꼴통짓하는 어린이가 넘쳐나며 하루에도 여러 번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터지는 곳. 이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던가. 실제로 직장에서 나는 전 세계 모든 인종과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의 어린이를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현실판 지옥 같은 직장이야말로 글감이 쏟아지는 노다지였던 것이다. 나는 왜 금광을 눈앞에 두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처음에는 글을 좀 써보려는 것뿐이었다. 3인칭 관찰자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애정의 시작은 관심이라 했던가? 아이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어느 순간 깊은 친밀감이 생겼다. 남 같지 않고 꼭 가족같이 느껴졌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어른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들은 때 묻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숨은 의도 따위는 없고 본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자연스레, 아무 이유 없이 생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큰 변화는 직장에 가기가 싫지 않은 것이다. 내게 있어 이것은 거의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 하는 게 귀찮은 날이 있다. 그럴 때라도 오늘 안 가면 글 못쓴다, 이러면서 벌떡 일어난다. 누가 또 획기적인 사고를 쳐서 글감을 던져주려나, 이런 기대를 안고 출근을 한다. 말썽 부리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지금으로서는 고마울 지경이다. 그놈들이야말로 최상의 글쓰기 소재를 던져준다.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오! 오늘은 쓸거리가 넘쳐나네, 이러면서 넘긴다.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고 투덜대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직장과 아이가 전처럼 싫지 않고 일상이 전처럼 지루하지 않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니지,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었다.
이 변화의 출발점에는 딱 하나가 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는데 글을 좀 써보려고 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