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신기하게도 오이지가 먹고 싶은 것이다. 불 앞에서 요리하기 꺼려지는 무더운 날이 이어지면 어느 순간 오이지의 짭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떠올랐다.
이 현상은 나이 마흔에 접어든 이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오이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요즘 먹고 싶은 음식이란 하나같이 비슷하다. 들기름에 지진 씻은 묵은지라든가 쿰쿰한 전라도식 고들빼기김치, 된장에 무친 시래기나물 같은 것이다. 어쩌다 할매 입맛이 되어버렸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가라는 서글픈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서 오이지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한국에 갔을 때 엄마가 담근 오이지를 싸들고 오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오이지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은 낮다. 일단 무게 때문에 가져오는데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일 년에 한 번 가기 때문에 오이지를 때맞춰 공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두 번째는 한인 마트에서 사다 먹는 것이다. 반찬 파는 매대에 가면 오이지를 서너 개씩 포장해 판다. 다만 매번 있지는 않아서 어느 날은 사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기도 한다. 맛도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다. 염도가 높아 물에 오래도록 담가 짠기를 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이 본연의 향도 빠져나가 맛이 영 맹탕이다.
세 번째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오이지를 사 오는 것이다. 보통 그런 농장에서는 조선 오이, 깻잎, 얼갈이배추 같은 한국 채소를 파는데 어떤 곳은 오이지까지 담가 판다. 맛이 어떤지는 모른다. 아직 먹어본 적이 없다.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오이지 파는 농장의 주소를 알아둔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사러 간 적은 없다. 일부러 다른 도시에 있는 농장까지 찾아가기란 귀찮기 그지없어서 한번 사러 가야지 하면서도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는 것이다.
엄마는 철이 되면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지를 담는 날이면 곧고 길이가 일정한 오이가 빽빽이 들어있는 커다란 망이 부엌 한가운데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엄마는 오이 한 접은 너무 많아 반접만 사 왔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한 접이나 반접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량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반접이라고 사온 오이의 양도 무척 많아 보여서 도대체 한 접은 몇 개쯤 될까 머릿속으로 가늠해 볼 뿐이었다. 엄마는 수십 개에 이르는 오이를 물에 씻은 뒤 물기를 일일이 행주로 닦아 커다란 들통에 차곡차곡 쌓았다. 소금물을 끓여다가 그 위에 붓고 오이가 떠오르지 않게 누름돌로 꾹 눌러 놓았다. 며칠이 지나면 초록빛 오이는 노랗게 변하고 표면이 쪼글쪼글해졌다. 엄마는 그것을 꺼내다가 빨갛게 무쳐 식탁 위에 내놓았다. 갓 무친 오이지에서는 고소한 참기름향이 났다.
고국에서 봤던 오이지 담기는 꼭 김장이나 장 담그기처럼 살림고수나 돼야 할 수 있어 보였다.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 김치 정도는 직접 담가먹게 되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 포기 정도의 막김치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자취생 비스무리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나 같은 하꼬에게 오이지까지 만들기는 영 무리라고 여긴 것이다. 실제로 우리 집 냉장고는 항시 포화상태였고 김치냉장고도 없기 때문에 만약 만들기에 성공하더라도 대용량의 저장 음식을 보관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숨이 턱턱 막히게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7월, 며칠 전부터 오이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난 몇 주간 한인마트에 들러 포장된 오이지를 사려고 두어 번 시도했지만 매번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유튜브 알고리즘에 지퍼백에 소량으로 오이지 담그는 영상이 떴다.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오이지가 먹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 딱히 인터넷에 검색해 보거나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 오이지를 향한 강한 욕구가 끝내 이 동영상을 눈 앞에 갖다 놓은 것일까?책에서 읽은 끌어당김의 법칙은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영상에 따르면 지퍼백만 있으면 오이 서너 개만으로도 오이지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당장 시도해 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잉글리시 큐컴버(English cucumber)라고 해서 팔뚝만큼이나 굵은 오이를 먹는다. 적당한 길이의 얄팍하고 단단한 오이지용 오이는 없는 것이다. 대신 피클을 만드는 미니 오이가 있다. 길이만 짧을 뿐 어차피 절임용 오이이니 그것을 써보기로 했다.
방법은 이래도 되나 싶게 간단하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 오이를 지퍼백에 넣고 소금과 설탕과 식초를 비율대로 넣어 조물조물해 준 뒤 그대로 실온에 둔다. 오다가다 한 번씩 지퍼백을 뒤집어서 오이가 골고루 절여지게 해 주면 끝이다.
실제로 단 이틀 만에 오이는 완벽히 절여졌다. 육안으로 봤을 때 전통 방식으로 담은 오이지와 때깔이 비슷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과연 맛까지 똑같을까 의심스러웠다. 소금물을 끓여 붓는 방식과 다르게 이 지퍼백 오이지에는 설탕과 식초가 들어간다. 왠지 오이지보다는 서양식 피클에 가까운 맛이 날 듯싶었다.
쫑쫑 썰어서 물기를 꽉 짠 뒤 다진 파마늘과 고춧가루, 설탕, 참기름에 무쳐 맛을 봤다. 엄마가 담가준 오이지와 맛이 같았다.
해외에 살면서 희열을 느낄 때는 이런 때다. 현지의 재료로 한국의 맛을, 훨씬 간소화된 조리법으로 정식 요리의 맛을 구현해 내는 데 성공할 때다. 과연 그 맛이 날까 싶은데 여지없이 맛이 나면 정말이지 마음속 깊숙이 환희가 차오른다.
유튜브에서 음식을 훨씬 쉽고 간편하게 만드는 영상을 볼 때마다 세상에는 영리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다. 이민살이 오래 한 사람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이국의 식재료를 귀신같이 찾아내고 오븐이나 인스턴트 팟 같은 서양식 조리도구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개발한다. 정보를 널리 공유해주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 덕분에 나처럼 게을러 빠진 조무래기의 고단한 타국살이가 그나마 살 만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