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데리고 매일 산책 가는 곳은 집 근처 공원과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주말 아침이면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로컬 마켓과 운전해서 5분이면 닿는 한인마트에서 장을 본다.
은행은 옆 동네에 있는 지점에 가는데 한국말할 줄 아는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멀리 갈 때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 직장에 갈 때다.
밀려드는 이민자로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멋대가리 하나 없는 외곽 도시의 낡은 아파트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1994년에 지어진 낮은 목조 건물 2층 10호.
육각형 모양의 부엌과 가스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지나 제일 안쪽 구석에 있는 골방.
대부분의 시간을 그 방에서 보낸다.
내 세상은 이렇듯 작다.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 살더라도 크게 다를 바 없었을 테다. 내게 필요한 공간이란 책상이 놓인 혼자만의 방, 욕심을 좀 내자면 늙은 개와 걸을 수 있는 공원이나 산책로, 그 정도다.
직장 갈 때를 제외하고는 사는 동네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고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지만 이런 생활 패턴이라면 어느 나라에서 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금보다는 외출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품위유지를 위한 비용도 더 들었을테고 그걸 충당하기 위해 돈도 훨씬 더 벌어야 했을지 모른다.
이곳에서 나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쓴다. 그다지 불편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홀가분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의 생활은 고단함도 있지만 타의적으로나마 삶이 단출해지는 장점이 있다.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가슴이 철렁한다. 어떤 세상은 이처럼 빠르고 거침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데 내 세상은 느리다 못해 고여있다. 슬그머니 불안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저 먹고 자고 일하는 평범하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면서?
꼭 식충이가 된 것 같고 뭔가를 당장 해내야 할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약간 서글퍼진다.
쓸모없이도 정당하고 싶다. 작은 세상에 고여있어도 불안하지 않았으면, 성취도 업적도 없는 삶이 아무렇지 않았으면.
말하자면,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게 자리를 잡고 안정된 뒤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딱 그런 시기였는데 그랬다.
인간이란 어쩜 그리 간사한지. 비로소 원하던 것을 다 손에 넣으니 이제는 고국에 두고 온 것들이 못내 아쉬웠다. 어디에서의 삶이 이득일까 답 없는 계산을 열심히 했었다.
생은 단 한 번도 예측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었고, 뭔가를 상실한 뒤에는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숱한 경험을 통해 이 진실을 몸소 깨우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망각하고 만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간간히 속된 계산을 하고 닥치지도 않은, 실상 닥칠지 닥치지 않을지 알 도리가 없는 미래를 점쳐보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나는 지금 여기 있을 뿐이다. 여기 있었고 가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테고 혹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넓든 좁든, 바쁘게 돌아가든 느리게 돌아가든, 앞서 가든 뒤서가든 사실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땅덩이가 넓은 나라에 살면서도 정작 내가 머무는 곳은 그저 내 작은 세상 속이지 않은가.